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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가 익기까지

사과 과수원 찬가

by 시준 Dec 31. 2024

 한 해가 또 꽉 찼다. 대문 앞 과수원 사과나무의 밑동이 한해만큼 더 굵어져 있는 것을 본다. 오며 가며 날마다 봐도 항상 그대로 인 것 같지만 문득 바라보면 굵어져 있다. 사람도 나무도 세월이 흐르는 것을 함께 보는 것이다.

묘목을 심을 때부터 보았고 대문을 드나들 때마다 보아 온 사과나무들이어서 마치 내가 심어 기른 것 같다. 이제는 밑동의 직경이 거의 20센티는 되어 생산성 절정기의 성목이 되었다. 부지런한 농원 주인장의 노고로 입추 무렵이면 주렁주렁 달린 풋사과가 주먹만 해지고 가지는 점점 더 쳐진다. 덕분에 내 집 대문 앞 풍경은 가을과 함께 점점 더 풍요로워진다.


봄날 분홍빛이 옅게 감도는 사과꽃봉오리에 반하게 된다. 수줍은 듯 분홍빛 봉오리는 꽃잎이 펴지면서 하얗게 핀다. 밤이면 온 동네가 달빛아래 은은히 하얀 모시베를 펼쳐 놓은 듯하다.

서당개도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하얀 꽃이 맺은 빨간 사과를 베어 물 수 있을 때까지 지켜봐 온지 벌써 열손가락이 부족하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보여주는 마법이 이젠 눈에 익어 하얀 꽃잎이 붙은 가지에 빠알간 사과가 주렁주렁한 풍경을 보는 경지에 이르렀다. 대문 넘어 사과밭은 겨울부터 가을까지 세월이 지나가는 풍광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찬기운 아직 쌩쌩한 겨울 어느 날 늘어선 사과나무 밑동 주위로 동그라미를 그리듯 검은색 가축분 퇴비를 푸짐하게 뿌려주는 농원장님의 모습을 본다. 부지런도 하시지 하면서 나의 일기에 내일처럼 메모한다.   퇴비가 뿌려진 위로 눈이 내렸다 쌓이고 녹기를 반복한다.

잔설이 녹기 전에 어느덧 사과나무를 둘러싸고 민들레, 꽃다지, 지칭개, 냉이, 개망초 등등의 땅에 납작 엎드려 겨울을 나는 풀들이 푸릇푸릇 피어나며 봄이 오는 것을 알린다.


봄이 되기 전 나무들이 움을 틀 무렵, 2월의 추위 속에서 한 무리의 무장한 사내들이 과수원용 사다리를 들고 농원 한쪽 끝에 진입한다. 사다리를 옮기면서 올라타서 샥,착,샷,착 전동 전지가위 소리 경쾌하게 사과나무 가지를 능숙하게 쳐내면서 다음 나무. 다음 나무로 부지런히 이동한다. 과수원의 전사들인 이 가지치기 기술자들의 손에 올해의 사과가 맺힐 가지들이 정해지고 사과나무 가지가 뻗어 나갈 방향도 정해지는 셈이다.


바야흐로 봄볕이 가득 찬 사월, 하얀 사과 꽃이 가느다란 가지마다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벌이 몇 마리씩 날기 시작하면 사과 밭은 소란스러워진다. 과원용 알루미늄제 사다리마다 올라선 대여섯 명 아주머니들이 부지런히 하얀 꽃을 훑어 내며 전진한다. 아주머니 일꾼들과 함께 이동하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어느 나라 노래인지 알 수 없는 노랫말을 일행들 모두 흥얼거린다. 역시 알아들을 수 없는 높은 소리로 시시덕거리며 두 손은 연신 가지에 줄줄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흰 꽃을 훑어내고 있다.


‘올해는 어디에서 들 왔나? 대체 어느 나라 노래일까?’

마침 읽던 책이 지루해질 참에 궁금증이 도진다. ‘베트남 노랜가?’  스카프로 머리를 감싼 아주머니들 쪽으로 어슬렁 다가가 물어본다.

“어디서 들 왔소?”   

멋진 중년 사내의 낯선 출현에 까르륵 웃음소리와 함께 유창한 한국말로 합창하듯 대꾸한다.

“태국이요”

아주머니 그룹과 좀 떨어져서 일 감독을 겸해서 사과꽃을 미진하게 훑어 낸 가지들을 찾아 추가로 꽃을 떨어내며 아줌마 일꾼들의 작업을 점검하던 주인장이 나를 보고 반가워한다.

수년 전에 이장을 했어도 호칭은 (농)원장님 보다는 아직도 이장님이다.


“좀 시끄럽제이?”

“이장님, 고생하시네요~. 시끄럽긴요~ 아줌마들이 일을 즐겁게 해야지요~”

“열명 보내 달라고 몇 날을 사정했는디 여섯 명만 보내주네 참. 사람 없어 난리구만”


이런저런 사유로 외국인 노동자 수급이 안되어 손 많이 필요한 봄에 인력난이 극심하다고 탄식하신다. 이 사람들은 재작년에 들어와서 작년에 못 돌아가고 올해까지 돈 버는 재미에 단단히 붙들려 있다며

“이 사람들 없으믄 농사 못 지어” 하신다.

“일당은 얼마씩 줘요?”  조용히 물어본다.

“응~ 올핸 팔만원에 간식 두 차례 여. 즈그 나라 대학 교수보다 많이 번다고들 하데”  

“작년엔 베트남 아줌마들이 베트남 노래를 흥얼거리더구먼 올해는 태국 노래네요?”

“시끄럽긴 마찬가지여~” 가까이에서 보니 라디오가 아니고 카세트테이프를 듣고 있었다.

“이 아짐씨들도 일을 잘 하구만~ 오일은 써야 하는디 삼일밖에 안 된다고 하니 갑갑허네~”


동네마다 사과 꽃은 일시에 피어나고, 꿀벌 군단이 본격적으로 몰려오기 전에 열매 맺을 꽃만 놔두고 대부분의 꽃은 따줘야 하는데 손은 부족하고 농원장의 마음만 급하다.   

꿀벌의 노고 없이 열매는 없다. 꽃을 줄여줘야 가지에 적당하게 열매 맺을 확률이 높아진다. 꿀벌이 드나들 꽃을 줄여주느라 태국 여인네들이 먼 곳까지 와서 수고하고 꿀벌은 적당히 남은 꽃에 파묻혀 알뜰이 꿀을 빤다.    

내년엔 더 귀 해질 일꾼들이 어느 나라 노래를 흥얼거리게 될까? 은근히 궁금하다.


꿀벌의 웅웅 거리는 중저음의 날개 짓 소리가 잦아드는 봄날의 나른함과 함께 사과나무 아래엔 온갖 들풀이 솟아나고, 샛노란 민들레는 이미 지천에 피어나 사과나무 아래를 노랗게 밝히고 있다. 민들레는 노란 꽃을 피웠는가 싶으면 어느새 둥근 솜털 씨앗을 맺고 있다.  그 솜털이 내려앉은 곳마다 민들레는 피어난다.


봄비가 내리고 초여름의 신록이 온 산야를 덮을 때면 모든 풀들은 정강이 높이로 자라 있다. 고라니가 사과나무 새잎순을 뜯어먹는 것은 애교로 봐준다. 풀이 자라 그 속에 고라니가 웅크려 둥지를 틀어도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면 서로가 놀라서 곤란하다.

이때 어김없이 예초기를 맨 예초맨들이 한바탕 과수원 나무 사이사이를 요란한 엔진음과 함께 누비며 쓸고 간다.   얼굴에 복면까지 쓰고 온몸을 무장한 이 날렵한 사내들은 또 어디서 왔을까 궁금하다. 멀리서 봐도 한국 청년들은 아니다.


사과꽃자리에 작은 열매가 매실만한 크기로 맺힐 때부터 자주식 분무 기계가 요란한 엔진소리를 내며 약뿌리는 광경을 수시로 이른 아침마다 듣고 보게 된다.  

‘약을 치지 않으면 과수원의 사과를 먹을 수 없다.’ 시골생활 몇 년에 별수 없이 받아들인 팩트이다.  사과 꽃을 딸 때부터 익은 사과를 따기까지 열몇 번은 쳐야 한다든가? 아무튼 맹렬히 호시탐탐 과일 열매를 노리는 온갖 해충들과 인간의 싸움은 끝이 없다. 싸우는 무기는 오직 농약인데, 보름 안에 생분해되는 농약만 허가하니 인체에 해는 없다고는 하지만 바라보는 마음은 어쩔 수 없이 찜찜하다.


여름 장마가 시작될 즈음이면 사과 알이 제법 굵어진다. 우리 집 대문 앞의 찔레장미 붉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때이다. 붉은 장미꽃이 만개할 때 멀리서 보면 소방차 한 대가 집 앞에 항상 대기하고 서있는 것처럼 보인다.


장마가 지나가고 무더위가 한창일 때 저 혼자 떨어져 우리 집 대문 앞으로 또르르 굴러와 멈추는 풋사과 알들이 자고 나면 아침마다 두어 개씩 보인다.

처서가 지나면서 사과가 불그레 물들고 단맛도 베이기 시작하면 악착스레 몰려드는 물까치 떼를 쫓는 일이 일과에 추가된다. 제발 사과 하나를 정해서 그것만 제대로 진득하게 파먹어주면 오죽 좋으련만, 떼로 몰려다니는 새들은 꼭 맛있게 보이는 크고 이쁜 알 만 골라서 방정맞게 한입씩만 찍어 먹는다. 푸른빛 도는 멋진 날개를 펴고 달려드는 물까치 떼는 온 동네의 욕받이이자 날아다니는 깡패들이다.


사과 따는 날엔 일꾼아주머니들이 올 때는 드물다. 주인장이 가족 한두 명과 함께 몸소 여러 날에 걸쳐 천천히 수확한다.

운 좋게 풍년인데 추석도 늦어 익은 사과를 딴 후에 추석명절이 오는 해면 모두들 얼굴이 밝다. 봄날 한 가지에 피어난 삼사백 개 꽃 중에서 열개정도 사과가 달렸으니 귀한 열매다. 사과가 그냥 익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 사 드실 때 값을 따질 생각을 하지 않을 것 같다.


과수원장을 졸라 우리 집 대문 앞 사과나무 두 그루를 내 것으로 봄에 미리 사던 때가 있었다. 내 집에 놀러 오는 지인들에게 내 사과나무에서 사과를 몇 알씩 직접 따가시도록 권했다. 사과라는 물체보다 잘 익은 사과를 직접 뚝 따보는 즐거운 액션의 느낌과 추억을 가져가게 하고 싶었다.


사과 따는 가을날이면 일 년 내내 일 도와준 적 없는 나를 불러 사과를 주신다. 물까치가 한입 쪼아 놓은 것부터 이런저런 사유로 상처가 난 것, 따기 직전 낙과까지 몇 바구니가 된다. 그러면 한 해가 거의 간다.

이 즈음이면 매번 자연스레 내 마음은 반성 모드의 베짱이가 된다. 사과나무는 부지런히 사과를 맺고 익혔는데, 나는 올해 무엇을 했나? 파아란 하늘 쳐다보며 공허한 자유를 느끼다 문득 미소 지을 수밖에 없다.

즐기는 자가 주인이지 않겠는가? 봄에 분홍빛 부끄럽게 베인 사과꽃부터 가을에 잘 익어 빠알간 사과알들을 오며 가며 내 두 눈이 흐뭇하게 즐기지 않았던가. 대문 앞 사과과수원의 정서적  주인은 결국 나였다는 얘기다.  

지금 찬바람 속 앙상한 가지 속에 움틀 때를 기다리는 무수한 꽃눈이 봄을 약속한다.


天行健 君子以自强不息 (천행건 군자이자강부식)

하늘의 움직임은 건강하니 군자는 쉬지 않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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