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지의 깡패들
몇 년 잡초에 시달려 보니 영지 내 독한 놈 중에 단연 깡패 같은 놈은 억새풀과 쇠뜨기이다. 이놈들을 고발하듯 하소연하는 메모를 정리해 본다.
억새- 집을 짓고 밭을 성토하느라 돈을 주고 멀리서 가져다 부은 흙 속에 억새 뿌리 조각이 섞여왔을 것 같다. 개울가 밭 귀퉁이 반평정도에서 솟아나던 억새를 우습게 보고 놔두었다. 가을바람에 하늘거리는 억새의 하얀 꽃꼬리를 즐기는 마음도 약간은 있었다.
장마에 대비한 개울 옹벽 공사를 하면서 그 근처 땅을 굴착기를 동원하여 깊숙하게 한바탕 뒤집게 되었는데, 공사를 마치고 땅을 고르면서 잘게 조각난 억새 뿌리가 사방팔방으로 퍼졌던 모양이다. 영지 한쪽 귀퉁이의 골목 건달이던 억새가 장마가 지나고 해가 바뀌자 어느새 전국구 조폭으로 성장하였고, 이제 영주로서 억새와의 전쟁을 언제 선포할지 영지의 년간 예산과 시간을 따져야 할 지경이 되었다.
‘발본색원(拔本塞源) 타령’을 외치지만 사실 대책이 없다. 부디 불량한 놈은 보이는 대로 조기에 선도를 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지만 해마다 세력을 넓혀가는 억새구역을 바라보며 궁리만 했다. 결국 어느 해 5월 억새 잎이 두어 뼘 높이로 파란 잎을 내밀었을 때 이웃 프로농부의 가르침대로 이사디아민염에 바스타를 섞어서 억새 잎에 일일이 고무장갑 낀 손으로 발라주었더니 효과가 있었다.
어느 정도는 놈들을 소탕한 듯했다. 그런데 웬걸, 다음 해 죽지 않고 남아있던 억새뿌리가 곳곳에 새순을 내밀었다. 보는 대로 땅에 삽을 박고 뿌리를 파내 보지만 역부족이다. 억새는 땅속뿌리가 대나무 같아서 내 손으로 뽑을 힘도 없지만 힘이 있어도 뽑히지 않는다. 다가오는 봄에 얼마나 더 왕성하게 솟아 나올지 두렵다.
쇠뜨기, 이놈은 억새와 전연 딴판으로 나의 심기를 어지럽힌다. 땅속뿌리의 왕성한 영양생식은 억새를 닮았지만 줄기도 뿌리도 너무나 연약하다. 조금만 힘주어 뽑으려 하면 메밀국수 가닥처럼 그냥 똑 끊어지니 뽑을 수도 다 파낼 수도 없다. 억새와 대비되는 이유로 소탕할 방법이 영 마땅치 않다. 작은 뿌리 한토막이라도 땅속에 남기면 틀림없이 순을 내어 솟구치고 무시하면 어느새 밭이 점령당해 있다.
미워하는 마음과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하루 날을 잡아서 쇠뜨기 밭의 가장 무성해 보이는 구역의 쇠뜨기 무리를 끝까지 파보기로 했다. 요리조리 가지뿌리를 내가며 사방으로 뻗은 뿌리줄기가 파내도 파내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어마어마한 고고학적 유물이라도 발굴하는 양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작업이었다. 쇠뜨기풀의 검은 뿌리가 끊어지지 않도록 흙밭에 엎드려 작은 꽃삽으로 조심스럽게 흙을 파내고 털었다. 결국 밭이랑 하나를 온통 파헤쳐서 뿌리의 끝을 보고야 말았다.
장장 2미터가 넘게 땅속으로 뻗어나간 쇠뜨기 뿌리를 캐내고 뿌듯해하던 꼴이라니 누가 보면 뻘짓도 참 진지하게 하셨다고 했겠다. (그런데 이 꼴을 지켜본 분이 있었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묘하게 전의를 불태우게 하고 심지어 경건한 무아지경의 발굴 탐사 작업을 경험한 셈이다.
잡초와의 끝 모를 싸움에 지쳐서 집 주변 이동 통로라도 풀에서 해방시킬 요량으로 보도블록을 깔았더니 블록 사이 틈새로 집요하고 줄기차게 비집고 나오는 것도 쇠뜨기이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사라지게 한 히로시마 피폭지역에 처음 솟아 나온 게 쇠뜨기였다고 한다. 원자폭탄에도 꿋꿋하게 견디는 것을 증명해 보인 놈을 삽과 호미로 발본색원할 수는 없는 노릇 - 차라리 잡초 목록에서 빼서 재배 작물로 신분 등급을 바꿔주고 싶다.
봄날 갑자기 맨 땅 위에 쑥 내민 뱀대가리처럼 생긴 연갈색 생식줄기포자부터 초록으로 싱싱한 쇠뜨기 풀과 뿌리 모두 약이 된다며 한때 약용식물로 각광을 받을 때도 있었지 않은가.
암치료부터 미용 효과까지 인간의 신체 여기저기에 두루 좋은 약효가 풍부하다는 솔깃한 연구 문헌도 있나 본데, 놔두면 대책 없이 왕성하게 퍼지는 것을 보았기에 문헌을 찾아보기도 싫고 일단 무섭기도 하다.
억새, 쇠뜨기처럼 다루기 힘든 깡패 같지는 않지만 꽃을 보고 반했다가 감당 못할 번식력에 놀라 잡초로 처분한 풀들이 있다.
즉 이쁘다고 너그럽게 대하면 곤란해지는 녀석들을 소개한다.
그중에 나와 첫 번째로 사연 있는 넝쿨 풀이 ‘박주가리’이다. – 이놈과 처음 조우한 첫해, 펜스 위로 뻗어나가 제법 귀티 나게 도톰한 이쁜 꽃을 피워주고 가을이면 목화솜 같은 씨앗을 가득 품은 열매를 맺는 박주가리 넝쿨의 독특한 고전미에 매료되었다. 식물에 대한 박애정신이 충만하던 때였다. 씨앗을 가득 품은 젖먹이 손만 한 표주박이 갈라진 듯 벌어진 열매를 바람이 건드리자 공중으로 일제히 날아올라 퍼지는 하얀 깃털 씨앗들이 햇살 속에 황홀했다. (표제의 배경 사진)
바람결에 풀풀 날려 퍼져나간 박주가리 씨앗들이 고공에서 낙하한 게릴라 부대처럼 영지 곳곳에 내려앉았다. 해가 바뀌고 느닷없는 곳곳에서 일제히 솟아 나온 굵직한 싹들이 어느 순간 땅 위에 있는 모든 것들을 타고 감아 오르는 것에 기겁했다.
‘이제부터는 허락 없이 뻗어가면 자네도 잡초로 다루겠네’ 한지가 십 년이 되었다. 어린싹이 넝쿨이 되기 전에 보는 대로 뽑아내도 여전히 사방에서 박주가리 싹이 솟아 나와 제멋대로 감고 올라간다.
제비꽃- 밭 가장자리에 피어난 이 보라색 작은 꽃을 보고 처음엔 당연히 ‘화초’로 모셨다. 여기저기 아무 곳에나 산만하게 피어난 녀석들을 한 곳에 모아서 심어주는 정성까지 보여주었다. 그런데도 발 밑을 둘러보면 어느새 온통 제비꽃이다. 잔디밭에도 제비꽃이 즐비하다. 제비꽃은 뿌리도 깊다. 봄과 여름의 어느 언저리에서 이 제비꽃이 잡초로 격하되어 김매는 호미날에 뿌리가 뽑히는 대상이 됐는지는 모르겠다. 자네도 이제 잡초 대접을 서운해 말게 하면서도 쪼끔 미안한 마음이 한편에 있다.
애기똥풀 – 봄이면 화사하게 노오란 꽃을 피워내고 잎마저 화초스러운 풀이 담장 옆에 무더기로 피어날 때 사진을 찍어두며 반가워했다. 줄기를 꺾으면 배어 나오는 노오란 진물이 과연 그 이름 ‘똥풀’이 직관적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귀여운 생각이 더해진다. 애기똥풀~ 애들 갓난아기 때 강황가루에 물 탄 듯한 노란 똥을 흐뭇해하며 치워보지 않은 부모가 있으랴. 퇴직한 중년들에겐 앞으로 다가올 아장아장 ‘손주 똥풀’로 살가울 것이다.
오월이 가고 여름이 되면 애기똥풀이 똥오줌 가릴 나이가 훌쩍 지난 녀석들의 똥처럼 느껴질 때가 온다. 그러고 한 이년 지나니 심지 않아도 버르장머리 없이 먼저 터 잡는 놈이라 내 눈엔 당연히 잡초가 되었고 꽃이면 망초까지 귀여워하는 아내와의 분쟁거리가 되었다.
사위 질빵 – 처음엔 사철나무 울타리를 타고 기어올라 하얀 꽃을 피웠다. 두고 볼만하다 싶어서 그대로 두었더니 다음 해엔 박주가리와 더불어 나무란 나무는 다 타고 오른다.
넝쿨장미를 넝쿨 넝쿨 타고 올라 하얀 꽃을 풍성하게 피워내어 붉은 찔레장미꽃 무더기와 제법 어울렸다. 딸기 위에 아이스크림을 발라놓은 것 같아 그대로 두었다.
그런데 이 녀석도 덩굴과 잎사귀가 너무나 왕성하게 뻗고 무성해서 문제다. 장미 넝쿨을 덮어 나가나 싶은데 어느새 장미가 파묻혀있다. 장미 잔가지 사이를 감고 타오른 사위질빵 넝쿨만 뽑아내려 조금만 힘을 줘서 당기면 그냥 힘없이 중간이 뚝 끊긴다. 그렇다고 장미 가시를 일일이 헤쳐 이 질빵 줄기만 걷어 내기는 너무나 성가시고 또 가시에 긁혀 위험하다. 꽃 보자고 피 보기는 싫다.
다른 나무 괴롭히지 않고 지들만 어울려 풍성한 하얀 꽃을 피워내면 정원의 주인공이 얼마든지 될 덩굴 꽃이다. 으아리 사촌 아닌가.
쌍떡잎식물 미나리아재비목 미나리아재비과 으아리 속의 덩굴식물이라고 하는데, 어째서 사위 질빵이라는 묘한 이름을 얻었는지는 믿거나 말거나 인터넷에 잘 나와있다. 아무튼 질빵은 지게의 어깨 끈이다.
사위의 어깨와 허리 안전을 위한 장모의 지극한 사위 사랑을 놀리는 사연을 읽었지만 좀 억지스럽다. 대개의 들꽃 이름이 알고 보면 억지스럽기는 하다.
물봉선 – 한여름이 지나가는 9월 초 어느 날이면 개울가 감나무 그늘 속에 진달래빛 혓바닥을 내보이며 나를 쳐다보는 녀석들이 있다. ‘물봉선’이다. 왠지 잘 속는 순한 인상에 연약해 보이는 이름을 받았다. 무릎높이에서 붉은 보랏빛 꽃을 한꺼번에 달고 일제히 보아 달라는 모습에 조만간 멋지게 찍어줄 게 하고 지나쳤다가 며칠 후 생각이 나서 가보니 이미 꽃이 힘없이 지고 있었다. 왠지 허망하여 찬찬히 살펴보니 꽃과는 달리 잎과 줄기가 왕성하게 뻗어 사람이 지나갈 수 없게 근처를 온통 뒤덮고 있다. 꽃이름도 순하고 꽃 하나하나 다 예쁘지만 그대로 둘 수는 없어 어쩔 수 없이 잡초로 분류하게 됐다. - 좀 미안해도 지금은 잡초.
열린 마음으로 찬찬히 들여다보면 다 이쁜 들꽃이지만 순전히 귀찮다고 잡초로 취급하기로 한 게으른 심보를 변명한 글이 줄줄이 길어졌다. 마냥 귀찮은, 이름 그대로 잡초가 영지 초보 농부의 주요 작업 대상이다 보니 감정도 좀 실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