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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앙성 산문 17화

무엇이 이끌었을까?

YOLO

by 시준

놀 곳, 갈 곳, 먹을 곳 많고 가까운 곳에 병원이 있고 대중교통 체계도 잘 갖춰진 도시, 그중에서도 특별시에서 살다가 시골에 정착하니 여러 후배, 친구, 가끔은 나이 지긋한 선배들께서 묻는 질문이다.


‘그곳에 사는 게 무엇이 좋은가?’


이 질문엔 ‘뭔가 불편하고 답답한 구석이 많을 것인데?’ 하는 애정 어린 우려와 의문이 포함되어 있다.

한잔씩 주거니 받거니 하며 나누는 대화 속에 배어있는 나에 대한 걱정을 느낄 수 있다. 추운 겨울의 적적하고 심심한 일상과 한여름 뙤약볕에 밭고랑에서 풀과 씨름하는 모습으로 시골에서의 생활을 연상하신다.

직장에서 가까이 지냈던 분들은 ‘평생 바쁘게 회사 일만 하던 사람이 시골의 따분함과 새로운 고생을 어떻게 견디는가’ 하는 염려하는 마음으로 묻기도 한다.

물론 가끔은 그분들 스스로 그려보던 상상 속의 안빈낙도(安貧樂道)를 부러워하는 분들도 있기는 하다.


왜 시골로 옮겨 사는가? 다시 말해, 무엇이 이렇게 이끌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여러 버전이 있을 수밖에 없다. 묻는 상황의 맥락에 맞춰 다른 답변을 하게 된다. 서로 다른 답변은 모순되는 부분도 있지만 모두 사실이고 맞다는 게 아이러니(irony)다.


별나거나 화려한 인생을 살았노라고 하기엔 턱도 없는 평범한 엔지니어가 퇴직 후 시골에 들어박혀 사는 것이 화제가 될 수는 없겠지만, 친한 친구들 모임에서도 멀리서 달려와 참석한 나를 치하? 하며 매번 인사치레의 같은 질문과 의견이 반복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얘기가 좀 깊어지면, 폭등하는 도시의 아파트 값에 비교하며 경제적인 면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바보짓인 ‘산골에 땅을 사서 집 지은 결정’이 후회스럽지는 않은가? 하는 마음 시린 질문이 나오기도 한다. 맞아, 땅 산 돈과 집 지은 돈으로 도시 변두리에라도 적당한 아파트를 한 채 사두었다면 노후에 돈 걱정은 조금 덜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도시 부동산 난동은 나는 생각도 못한 사회 경제적 변화이니 어쩔 것 인가.


귀촌, 즉 시골 전원생활의 좋은 점과 불편한 점에 대해 나의 관점을 일반화해서 회사에서 어떤 사안을 정리하여 브리핑하듯 1,2,3.. 번호를 붙여가며 나열하기엔 적절하지 않다. 그것은 전원에서의 한적하고 단순한 생활을 염두에 두고 나름 차근차근 준비하였고 그러는 동안에 별다른 노력 없이 여러 행운도 뒤따랐기 때문이다. 다만 묻는 이들께 한 가지는 분명하게 말해왔다.

전원생활을 하고 싶다 하는 마음의 밑바닥에는 무엇보다,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 아닌가? (You Only Live Once, YOLO!)*1 하는 인생철학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신혼 때부터 아파트에서 거주하기 시작하여 계속 아파트에서 아파트로 이사해서 살아온 8번째 아파트를 떠나 살고 싶은 계획을 구체화했던 것은, 너무 먼 미래를 너무 일찍 상상한 탓으로 돌린다. 은퇴를 논하기엔 이른 나이에 한 생각이지만, 살면서 이따금 사고(事故)를 치는 근원인, 자칭 ‘합리적 이상 주의자의 사고(思考) 성향‘ 탓이라고 변명하는 것이 낫겠다.

나와 친구들은 동란 후 베이비붐 시대에 태어나 아버지가 되고 할아버지가 되어가는 세대이다. 우리 다음 세대 도시의 아이들은 대부분 태어나면서부터 내내 ‘아파트’에서 커가면서 특색 없는 도시의 마당 없는 제집과 다를 바 없는 규격의 할아버지 댁, 그리고 외가에 가서 제집에서 노는 것과 비슷한 시간을 보내고 할아버지 사는 집과 똑같은 제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을 반복한다. 좁은 도시의 땅에서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상황이긴 하지만, 우리는 그럴 수밖에 없는 주거 환경을 앞장서서 만들어온 세대이기도 하다.


내 어릴 적 외가와 친가의 시골집에 가서 누리면서 쌓였던 온갖 즐거운 추억과 짜릿한 모험의 선물이 뉴 밀레니엄 이후의 애들에겐 없다는 것에 왠지 미안하고 마음이 허전했다.

그래서 나의 미래의 손주들에게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보러 아파트로 오게 하지 않겠다는 소박한, 그러나 현실 속에서는 매우 럭셔리한 소망을 갖게 된 것이 뉴 밀레니엄 무렵이고 내 나이 사십 대 중반에 접어드는 때였다. 돌이켜보면 미래를 너무 낙관하던 때였고 손주를 떠올리기엔 너무 이른 시기였다.


살다 보면, 안 좋은 점 열 가지보다 하고 싶은 마음 한 가지에 더 끌리면 결국 하게 되는 것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전원생활 아닐까? - 하지 말아야 할 이유 열 가지보다 해야 할 이유 한 가지에 더 끌린다는 것은 분명 편향적이고 불합리하다. 그래도 그 한 가지의 가치에 진심으로 끌려 그것을 선택했다면 어쩔 수 없다. – 이것은 논리를 넘어선 욜로이고 AI(인공지능)가 아닌 한 자연인간의 지능으로 세상을 보는 관점이자 인생철학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그런 선택은 의외로 많고 선택 후의 감정은 후회와 수긍과 만족 중의 하나가 된다. 누군가 물어봐 준다면, 내 경우는 그래도 내 스타일의 제법 만족스러운 선택이라고 말하고 싶다.


매사에 이성적이더라도 어쩌면 자신이 처한 상황에 감사하는 마음이 가득할 때나 왠지 불안할 때 느닷없는 결정을 할 수도 있다고 본다.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에서 처음 겪는 일이면 더욱.

그래도 지나 놓고 보면 대개는 제법 쓸만한 결정이었다고 미소 짓지 않았던가.*2




*1 그레이트풀 데드(Grateful Dead)의 드럼 연주자 미키 하트 (Mickey Hart)는 ‘욜로’라는 단어를 대중적으로 사용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1990년대 초 그는 캘리포니아 소노마에 있는 목장에 '욜로 목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왜냐하면,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목장 구매가 말도 안 되는 결정이었지만, ‘뭔 어때, 한 번 사는 인생인데 (You Only Live Once)’라는 생각으로 구매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

결국, 미키 하트의 목장이 뜻하는 ‘욜로’는 헌신에서 벗어나라는 메시지가 아니라, 헌신 안으로 뛰어들라는 메시지를 담게 됐다. 한번 사는 인생이니 깊이 파고드는 것이 낫다. – (p205 Dedicated: The case for commitment in an Age of Infinite Browsing by Pete davis)

*2 제법 쓸만한 결정이었다고 미소를 짓고픈 나의 '집짓기'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고 싶은 이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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