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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훈 Nov 30. 2023

평범함을 잃다

 그냥 그렇다. 옷을 굳이 뭐가 이쁘고 뭐가 어울리고를 찾냐, 그냥 아무거나 적당한 거 있는 거 짚어서 입는 거지. 머리를 굳이 뭐가 이쁘고 뭐가 어울리고를 찾냐, 그냥 아무렇게 적당히 깔끔하게 잘라서 다니는 거지. 뭘 굳이 어디가 맛있니 어디가 예쁘니를 알아가면서 밥집을 가고 카페를 가냐, 그냥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근처에 아무 식당에 가서 먹는 거고 커피를 마시고 싶으면 주변에 아무 카페에 들어가서 마시는 거지. 뭐가 그렇게 특별해야 하는가. 매일매일 친구들과 똑같은 일상을 보냈다. 늘 가던 카페를 가고 늘 가는 밥집을 가고 매일같이 피시방을 가고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놀았다. 그러다 갑자기 하나 둘 연애를 시작하데. 갑자기 인스타에서 홍보하던 예쁜 카페들에 다녀오는 사진이 올라오기 시작하고 쓸데없이 비싸고 과한 음식이라 싫어하며 '그 돈으로 든든하게 국밥이나 제육을 먹지.' 하던 놈들이 웬 양식당을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취미였던 게임은 많이 하지 못하고 간혹 피시방에 오더라도 몇 시간 하지 못하고 이내 돌아가버리더라. 도중에도 계속 연락이 와서 답장하고 집중 못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이내 그런 게 귀찮다고, 힘들다고 말하며 자유로움이 없다 말하는 모습이 불쌍했다. 그러면서 전화가 오자마자 목소리를 가다듬고 웃으면서 뛰쳐나가 받는 모습이라니. 저런 게 연애라면 안 하는 게 낫지.


 그렇게 연애를 하던 친구가 이별을 하고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푸념을 늘여놓으며 후회하던 친구의 모습에 궁금한 것이 생겼다. 정말 시비를 걸려는 의도가 아니라 순수한 의문.

"그렇게 좋아하면서 왜 헤어졌냐." 좋아했던 모습이 너무 많았기에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모난 부분이 유난히 튀었다며 고작 그것들을 참아내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해서 계속 부딪히기만 했단다. 또다시 나오는 순수한 의문.

"그렇게 후회하면서 왜 안 잡냐." 잡을 용기도 없을뿐더러 그런 말을 하기엔 양심에 가책이 느껴진다며 헤어진 후에 그렇게 지질하게 기억되고 싶지는 않아서 그냥 놓아주고 싶단다. 그리고 막상 잡으려고 하면 결국 안 좋았던 일들이 많았기에 헤어진 건데 똑같은 일을 되풀이할 것 같아서 그냥 서로 안 맞거니 하면서 헤어지는 거라고. 연애도 안 해본 애가 사랑을 알겠냐며 빨리 잔이나 치라는 둥 회피한다. 오히려 헤어진 김에 더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면서 자기가 더 잘난 사람인 걸 보여주겠다며 잘 헤어진 거라고 정신승리하는 모습. 이번에도 의문이 들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뒤돌아서 욕하는 추악함이 연애인가?'


 시간이 지나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러다 이별한 친구가 외로워서 못 참겠다며 나를 끌고 가 강제로 헌팅을 시도했고 우습게도 성공했다. 아니 이게 왜 되는 거지? 싶었는데 어찌 됐건 기왕 이렇게 된 거 재밌게라도 놀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자리에 앉는 순간, 나는 후회했다. 평소에 머리를 대충 자르고 대충 말린 채로 돌아다니는 나를, 옷은 그냥 편한 데로 아무거나 주워 입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나를 원망했다. 괜히 화장실로 달려가 머리를 만지작 거리고 상의를 하의에 넣은 게 나은지 뺀 게 나은지 열 번도 넘게 넣었다 뺐다 거렸다.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으며 인사를 건넸다. 평소였으면 아무렇지 않게 안녕하세요-하거나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목만 끄덕이겠지만 눈이 마주치자 알 수 없는 웃음이 새어 나와 자연스럽게 웃으며 눈을 맞춘 체 인사를 건넸다. 나조차 이런 내가 낯설었다. 그냥 탕 하나만 시켜놓고 소주만 계속해서 세 병씩, 네 병씩 까던 놈이었는데 괜히 안주도 하나 둘 더 시켰다. 정신없이 지나간 탓에 어떻게 얘기하고 웃었는지 울었는지 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 찰나에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워 번호를 달라고 부탁했다. 난생처음 부탁한 이 어색한 말을 하기 위해서 말도 안 되는 용기가 필요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초심자의 행운일까, 다행히 받아낸 연락처는 내 보물이 됐다.


 바꾸기 시작했다. 옷 잘 입는 사람들 영상을 보고 따라 사고 얼굴형 별로 어울리는 머리를 알아내고 염색도 고민해 보고 처음으로 펌을 했다. 양껏 꾸미고 준비한 뒤에 개봉한 기대작인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고 성공했다. 생전 안 해본 영화예약과 식당예약도 하고 친구한테 향수도 뜯어서 뿌리고 나갔다. 이 모든 노력에 대한 보상은 그녀의 '오늘 옷 예쁘다.' 한 마디에 충분했다. 영화도 보고 예약한 식당에서 스테이크도 먹고 나서 우리 집에서 거리가 좀 있지만 그녀의 집까지 데려다주고 난 뒤에 긴장이 풀렸다. 처음 신어본 어색한 신발 탓에 발이 너무 저리고 옷은 움직이기 불편해서 괜히 짜증이 나고 오늘 쓴 돈을 평소였다면 3일은 놀았을 양임에 당황하고 다시 집까지 언제 가나 싶은 생각이 들 때쯤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집에 갈 때까지 전화하자고. 집으로 향하는 30분 중에 불편함은 단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 평범함을 포기해야 연애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연애하고 싶은 사람이 생기니 자연스레 평범하고 싶지 않아 졌다. 연애는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불편하게 보이는 것을 해야 마음이 편했다.


 아 나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고백할 때 어떻게 말할지를 고민하는 이유를 몰랐다. 막상 눈앞에 닥치니까 아무런 말도 생각나지 않는다. 남들이 다 한 평범한 멘트를 치기 싫었고 그렇다고 마땅찮은 말은 떠오르지 않는다. 분명 이전에는 이딴 건 중요하지 않고 그냥 진실되게 말하면 되는 거 아닌가-했던 과거의 나 자신을 만날 수 있다면 한 대 쥐어박고 싶을 지경이다. 몇 번을 만나다 보니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고백을 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 이상하게 제일 빛나게 보이고 싶은 사람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나다. 적어도 그녀에게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특별한 사람이고 싶다. 그래서 쥐어짜 내고 짜내다 아무런 멋없이 뱉은 말은 고작 "만나볼래?" 정도였다. 무슨 만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로맨틱한 골목길 가로등 앞에서 간드러진 목소리로 내뱉은 것도 아니고 집에 데려다주는 차들이 시끄럽게 지나다니는 대로변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삑사리까지 내며 말한 말. 당시의 나는 몰랐지만 내 귀와 얼굴이 신호등과 함께 있어도 꿇리지 않을 만큼 빨갛게 변해버려서 귀여웠다나 뭐라나. 그 덕에 성공했나 보다. 분위기고 뭐고 하나도 없이 해본 첫 번째 고백. 그럼에도 그게 그렇게 특별했다. 나는 서로를 이해해 주는 자유로운 연애를 할 거야-라고 말했던 과거를 찾아볼 수 없었다. 남들이 하는 건 다 해보고 싶어 졌고 서로의 연락 하나하나가 그렇게 소중해서 핸드폰을 손에서 놓치지 못한다. 친구들과 함께 놀 때는 즐거웠지만 너와 함께 할 때는 불편한 것들이 있었다. 그렇기에 친구들과 있을 때 편안했다. 그러면서도 너를 만나는 날이 그렇게 기다려졌다. 사람은 사랑만 하게 되면 변태가 되는 걸까. 그렇게 편한 걸 좋아하던 놈이 불편한 것을 즐기게 되다니. 네가 부를 때면 겉으론 툴툴 대면서도 속으론 이미 심장이 먼저 달려가고 있다. 그래, 너에 대한 불편함은 욕이 아니라 그만큼을 감당할 정도로 사랑한단 것이었다.


 그렇게 사랑했지만 다툼이 생겼다. 나는 이만큼 노력하고 대하는데 너에게서는 나에 대한 배려를 못 찾겠어서 화가 났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걸까 봐. 그럼에도 끝끝내 서로가 사과하고 놓지 못하는 관계였다. 결국 지나와 이별을 말하게 됐다. 쌓인 것들이 터져서 끝내 벌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는 연애를 시작하면서 사랑으로 거리를 좁혔고 다시 사랑으로 거리를 벌렸다. 그 거리가 끝끝내 닿지 못할 거리가 되었을 뿐. 뒤돌아서 나는 너를 원망했고 너는 나를 원망했을 것이다. 그 모든 원망의 말 끝에는 결국 나 자신의 추함이 짙게 묻어나서 억지로 술을 마셔서 소독하려 했다. 친구가 말했다. "연애 한 번 해본 놈아, 좀 알겠냐?" 나는 말없이 소주잔을 들었다. "사랑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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