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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훈 Nov 23. 2023

첫사랑은 처음 사랑인가 제일 깊은 사랑인가

 '첫사랑 - 처음으로 느끼거나 맺은 사랑.' 분명 모두가 말할 것이다. 첫사랑은 당연히 처음으로 사랑해 본 사람 혹은 처음으로 연인관계를 맺은 사람이라고. 나도 똑같이 생각했었지만 이 복잡한 감정은 모두의 약속으로 정한 언어의 뜻조차 바꿔놓는다. 나에게 첫사랑은 더 이상 이런 의미가 아니다. 나에겐 어떤 사람이 첫사랑인가.


 누군가 그에게 이유 모를 호의를 베푸는가 하면서도 갑자기 퉁명스레 그를 밀어낸다. 이런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어느 순간 그에게 고백을 한다. 이 사람은 그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처음으로 사랑이란 말을 가족 외의 사람에게 들었다. 사랑이란 단어가 단순히 좋아하는 것과 전혀 다른 것을 배웠다. 그렇게 처음으로 연애를 시작했다. 그는 사랑이란 게 뭔지 아직도 모른다. 그냥 주변에서 점점 연애를 하는 친구들이 늘어가고 자랑거리가 되는 것이 부러워서 자신에게 온 기회를 한번 잡아봤을 뿐이다. 헌데 그에게 점점 집착해 오고 서투른 연애방식을 가져와서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모든 것을 따라 하려는 그녀에게 짜증이 나고 싫증이 났다. 차라리 친구들과 노는 것이 훨씬 즐겁다는 것을 느껴 이별을 했다. 과연 그에게 그녀가 첫사랑이 될 수 있을까.


 그는 그녀를 볼 때면 이유도 모르게 심장이 뛴다. 숨이 커지고 눈을 깜빡이고 제대로 마주 보지 못한다. 그녀가 말을 걸 때면 다른 이들을 대할 때와는 달리 평범히 대답을 건네지 못한다. 멋있어 보이고 싶은 와중에 말을 듣지 않는 몸이 밉기만 하다. 길에서 예쁜 장식품이 보일 때면 생각이 나서 괜히 한두 개를 만지작 거리고 유행을 시작한 먹을 것이나 물품이 나오면 자신의 용돈을 모아서라도 하나쯤 사주고 싶어 한다. 우연히 들은 그녀의 취향에 곧장 달려가서 한 뭉텅이를 사 오곤 한다. 아무렇지 않게 전해주면서 내심 고맙다고 해주는 그녀의 말 한마디에 세상을 가진다. 천천히 느낀다. 본인이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을. 어떻게 이 마음을 전할지 몰라 그냥 옆에서 서성거리기만 하다가 결심한다. 이 마음을 전하고 말겠다고. 그녀의 마음은 달랐다. 마음조차 제대로 전하지 못했는데 자신의 감정이 부정당했다. 그는 그녀를 첫사랑이라고 부를까.


 이런 시간이 흘러 그는 처음으로 마음이 생긴 사람과 연애를 시작했다. 그녀와 모든 것이 맞지는 않았지만 서로에게 배려하고 맞춰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그는 시간이 흘러온 만큼 사랑이란 감정에서 자신이 어떤 것을 책임지고 연인이라는 관계에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배웠다. 연애에 있어서 절대라는 것은 없다. 서로의 잘못을 때론 화내고 물어보고 울기도 하면서 서로의 감정을 쌓았고, 그렇게 쌓아온 것들은 그들에게 더 많은 웃음과 사랑을 불렀다. 처음으로 연애다운 연애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해 준다는 생각만으로 하루하루가 행복하고 즐거웠다. 세상의 모든 빛이 자신을 향해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다 어느 날 무언가 깨졌다. 둘 사이에 사랑이란 이름의 접착제로 붙어있던 것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물 한 방울이 흐를 정도의 균열이 감정이 하나 둘 새어 나가면서 거대해졌고 결국 무너졌다. 하나 둘 떨어지는 바위 같은 시간들에 뭍은 흔적들은 처음에는 추악했으나 점점 아름다워 보였다. 마치 흉물이라고 욕하던 에펠탑이 시간이 지나 명소가 돼버린 것처럼 점점 그 시간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는 그녀와 지내온 시간만큼, 그녀와 했던 추억만큼 검은색 물감이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는 주변의 말과 달리 그는 점점 어두워져 갔다. 시간은 흐르고 쌓였지만 그 조금의 물감이 모든 것을 물들였다. 꽤 많은 시간이 흐른 그는 온전한 빛이 되지 못한다. 이미 묻어버린 색은 연해지긴 하더라도 지워지지 않더라-그녀는 그에게 첫사랑이 될까.


 그를 사랑했던 사람아, 그를 첫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그녀를 사랑했던 사람아, 그녀를 첫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너에게 사랑은 무엇인가. 단순히 혼자서 주고받을 수 있는 그렇게 간단한 감정인가. 아무것도 없이 맹목적으로 퍼붓기만 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런 사랑은 결국 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이다. 왜 자신의 마음속에서 생긴 응어리를 남에게 무게를 실어주는가. 스스로 책임지지도 못할 감정을 가지고 타인에게 집착하고 구속하며 한탄하는 것이 사랑인가. 사랑을 받았고, 사랑만 줘봤고, 서로 잊지 못할 사랑을 해본 사람아. 너는 언제 사랑을 느꼈는가. 


 어떤 사랑이 첫사랑인가. 처음으로 연애를 했던 여자를 첫사랑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아무런 기억조차 안 나고 그녀에게서 받은 사랑이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조차 알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처음으로 사랑한 사람이 첫사랑이라고 믿었다. 헌데 우습게도 나는 그녀와 사랑이라는 감정을 주고받았다고 말할 자격조차 되지 않는다. 나에게서 사랑이 보이긴 했을까. 이때 처음으로 나를 사랑한다 해주었던 그녀가 떠올랐다. 아, 나도 그녀에게 첫사랑이 될 수 없듯이 이 사람도 나의 첫사랑일 수 없다. 그러다 서로의 사랑을 완전히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 인연의 시작부터 만남의 과정과 연애했던 시간이 모두 기억 속에 마음속에 사랑이란 추억으로 확실히 묻어져 있다. 그리고 갈등의 시작과 다툼의 과정과 이별했던 순간이 모두 사랑이란 감정에 묻었다. 나에게 처음으로 사랑의 색깔을 알게 해 준 사람이다.


 연애할 때의 너는 빛이라 생각했다. 분명 빛은 모이면 모일수록 무색에 가까워진다 했는데 이상하게 추억을 모으면 모을수록 어두워진다. 너는 그 시간 동안 나에게 빛을 머물러 색을 만들게 했나 보다. 그래서 나에게 너는 제일 밝았던 사람이고 제일 어두운 순간이다. 차마 나의 사랑이란 단어에서 빼지 못할 사람. 너는 내 첫사랑이다. 절대 잊지 못하는 사람이 아닌 결국 지우지 못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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