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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선을 다하는 남자 Oct 12. 2023

무지성 퇴사가 답이 될 수 있을까?

간절곶에서 해가 빨리 뜨는 이유는 간절하기 때문입니다.

- 최선을 다하는 남자 - 



다음 주에 친한 동기 한 명이 퇴사합니다. 직장 생활에 대한 가치관 측면에서 저와 비슷한 부분이 꽤 많은 동기였는데, 그래서 그런지 여러 생각이 들더라고요. 울산에 발령받았던 네 명의 동기 중 올해만 벌써 두 명이 떠났네요. 사실 동기 중에서 가장 먼저 퇴사할 것으로 여겨진 사람은 저였습니다. 지금 다니는 회사와 가장 성향이 맞지 않거든요. 그런데 연초에 동기 하나가 생퇴사를 하더니, 이번에는 경쟁사로 이직을 하는군요. 이번 글에서는 퇴사를 결심할 때 어떤 점들을 고려해야 하는지, 왜 무지성 퇴사가 답이 될 수 없는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저는 원래 영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대학 시절 대부분의 시간을 도서관에서 시나리오를 쓰며 보냈고, 주전공이었던 정치학보다 영화학 수업을 더 열심히 들었죠. 그러다 취업할 때 즈음 영화가 제 길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딱히 재능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평범하지 않은 길을 선택할 용기가 없었거든요. 갑자기 목적이 없어진 저에게 취업은 그 자체로 새로운 목적이 되었죠.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었기 때문에 일단 돈을 많이 주고, 사람들이 많이 아는 대기업에 들어가자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별생각 없이 현 직장에 들어왔습니다. 


회사는 감사하게도 전주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대학을 나온 저를 울산으로 보내더군요. 덕분에 태어나서 울산에 처음 와봤습니다. 고래고기도 처음 먹어봤고요. 출근 첫날 동기 세 명을 보고 깨달았죠. '아, 회사에서 나이 많은 지방 출신 군필 남자들만 골라 울산으로 던졌구나'라는 것을요. 


지금도 기억나네요. 출근 첫날 상무님과 면담 자리가 있었는데, 갑자기 울산 간절곶에 해가 왜 빨리 뜨는지 아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당시 상무님이 농담을 하는 걸로 오해했던 저는 이렇게 말했죠. 


"간절곶에서 해가 빨리 뜨는 이유는..

간절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아, 그게 아니더군요. 상무님은 꽤나 진지하게 간절곶에서 해가 빨리 뜨는 이유를 설명했는데, 문과인 제가 들어도 과학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듣고 있으니까, 그때부터 저를 별로 안 좋아하셨던 것 같기도 하고요. 뭐, 어쨌든. 첫날부터 조금 삐거덕거리긴 했지만 입사한 뒤 저는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제대로 다닌 첫 회사였고, 코로나 시기에 어렵게 들어왔기 때문에 '진심'이었거든요. 그런데 딱 1년 만에 퇴사를 결심했죠.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커리어 성장 : 저는 진짜, 일을 하고 싶습니다. 이 일을 왜 해야 되는지 납득이 되는 목표를 부여받고, 합리적인 방법을 고민하고, 일하는 과정에서 성취감을 느끼는 '진짜 일' 말입니다. 입사 초반에는 당장 처리해야 하는 일에 적응하느라 정신없었지만, 일에 능숙해질수록 성장에 대한 니즈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죠. 앞선 글에서 말했듯, 직장과 직업은 다르잖아요? 직장은 '남이 만들어놓는 조직'이고, 직업은 '조직에 속해있든, 속해 있지 않든 돈을 벌 수 있는 기술'을 말하죠. 우리가 채용 시장에서 살아남고 직업을 갖기 위해서는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커리어 성장도 함께 이룰 수 있어야 하는데, 현 직장에서는 그게 어렵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조직문화 : 제가 말하는 조직문화란, 사람들이 1) 일상적으로 의사소통하는 방식과 2) 업무적으로 의사결정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저는 직급과 연차를 떠나 서로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고,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본질에 집중해서 일하고 싶습니다. 저에게는 상호 존중과 합리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현 직장의 조직문화는 제 성향과 크게 맞지 않습니다. 직급과 연차에 따라 무례함이 용인되고, 일의 본질보다 상급자의 관심사가 우선한 상황이 많거든요. 이런 조직문화에 순응하고 싶진 않은데, 순응하지 않기엔 불필요한 갈등을 겪어야 할 때가 생기곤 했죠. 처음에는 사람이 문제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2년 반 정도 지나보니, 사람이 아니라 문화가 문제더라고요. 한 명 한 명 보면 나쁜 사람은 없는데, 사람들이 모여 상호작용하는 방식에 방향성을 부여하는 문화에 문제가 있었던 거죠.             


회사의 성장 : 회사의 성장 가능성이 없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갈수록 회사가 어려워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속한 백화점 산업은 어느 정도 경쟁구도가 고착화되어 있습니다. 몇 안 되는 대기업이 전체 시장을 나눠갖고 안정적으로 매출을 올리고 있죠. 하지만 저는 언젠가 분명 회사가 한 번 휘청거릴 순간이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고객의 니즈보다 상사의 관심사에 더 민감하게 움직이는 운영 방향과 여러 문제로 인해 계속되는 인력 유출은 갈수록 회사의 경쟁력을 떨어트릴 테니까요. 


저는 이 세 가지 사항으로 인해 입사 1년 만에 '언젠가' 퇴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저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동기들이 먼저 떠나갔죠. 혹시 여러분 중에서도 퇴사를 고민하고 있는 분이 있다면, 감정적으로 결정하기보다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먼저 체크해 보시길 바랍니다. 


퇴준생 Check List 

1. 일에 목적성이 없음.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의구심이 듦   

2. N년 차가 돼도 '신입사원'이 나를 대체할 수 있음 

3. 프로젝트 진행 시 연차·직급에 따라 접근가능한 역할에 제한이 있음 

4. 고객의 니즈보다 상사의 관심사가 우선함 

5. 논리보다 이미 만들어진 명분이 중요함 

6. 존중과 합리성에 기반한 조직문화가 확립되어 있지 않음 

7. 인사제도(직무 전환·평가·보상)에 대한 신뢰가 없음 

8. 선배, 상사가 내 미래의 모습이라고 생각했을 때, 만족스럽지 않음 

9. 주요 인력이 계속해서 유출됨   

10. 밥이 맛없음  


많은 사항에 '그렇다'라고 체크된다면, 저처럼 '언젠가' 퇴사를 고민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저는 왜 당장 퇴사하지 않고 '언젠가' 퇴사하기로 했을까요? 퇴사를 결심한 저는 현 직장에서 마음 떠난 사람처럼 대충 일하고 있을까요? 


저는 퇴사를 결심한 뒤에도 1년 반이나 더 회사를 다니고 있고, 누구보다 책임감 있게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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