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이 높은 사람일수록 타인을 존중하고, 타인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일수록 자신에게도 부정적이다.”
이 말은 뇌에서 자기에 대한 정보 처리를 하는 영역과, 타인에 대한 정보 처리를 하는 영역이 거의일치한다는사실에서 부터 출발되었다.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는 자신에 대한 신뢰와 긍정적인 자기 인식에서 비롯되며, 타인을 비난하고 깎아내리는 태도는 자신에 대한 불만족에서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맞아 보인다. 이는 심리학 용어로 "투사"라고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타인에게 부정적일때, 그 사람을 '항상'자존감이 낮은 사람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 인간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호의적인 동시에,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부정적으로 대하기도 한다. 가령, A라는 사람에게는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면서도, B라는 사람에겐 따뜻한 관심을 보일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의 자존감은 높지도 낮지도 않은 “중간”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인간의 심리와 행동을 이렇게수학처럼계산할 수 있다면 편하겠지만, 인간은 단순한 계산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다층적이고도 변화무쌍한 존재이다.
타인을 평가하는 기준은 어디에서 오는가
C라는 사람이 지하철 좌석에 앉아 건너편의 멀리 떨어진 좌석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흘낏거리며 쳐다보는 상황을 떠올려 보자. C는 그 사람들과 아무런 관련도 없고 상호작용도 하지 않은 상태인데도, 머릿속으로 무의식중에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옷을 입었지?”, “정말 뚱뚱하다”, "정말 못생겼다" 같은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C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기준, 즉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와 잣대에서 비롯된 생각일 것이다.
만약 C가 외모나 사회적 지위를 지나치게 중시한다면, 타인을 바라볼 때도 그런 요소를 중심으로 평가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잣대가 결국 C자신에게도 적용되고 있을 것이다. 타인에게 가혹한 시선은 결국 자신을 더 엄격하게 평가하게 되며 이 과정에서 C의 자존감도 손상된다. 이러한 자신에 대한 불만족은 다시 타인에게도 가혹한 시선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러한 경우 나의 낮은 자존감이 타인을 부정적으로 보는 태도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태도는 상호작용으로 변화한다
하지만, 일상적인 관계는 조금 다르다. 우리는 학교나 회사에서 타인과 실제로 상호작용하면서 첫인상에서는 경계심이나 비호감을 느꼈을지라도 좋게 풀어내기도 하고, 반대로 긍정적이었던 첫인상이 갈등을 통해 부정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에 대해 긍정적 또는 부정적으로 느끼는 데는 다양한 요인이 작용하는 것이다. 단순히 내 자존감의 높고 낮음으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상대방이 나에게 보내는 사회적 신호와 맥락, 그리고 우리가 쌓아가는 관계의 동태적 변화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한 자연스러운 경계심
인간은 생존을 위해 낯선 사람이나 새로운 상황에 대해 긍정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경계하고 의심하는 태도를 취하도록 진화해 왔다. 이러한 본능은 최악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위험을 피하려는 심리적 기제로 나타난다. 많은 경우 낯선 사람에게 신뢰를 보이기보다 먼저 의심하거나 일정 거리를 두는 행동은, 과거의 생존 환경에서 적응적 기능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만일 우리가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되기 위해모든 사람을 긍정적으로만 보려고만 한다면, 세상의 모든 상술과 사기에 당하기 쉬울것이다. 이처럼 생존본능에 의한 부정적인 태도가 낮은 자존감 때문이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무시할 수 없는 사회적 편견과 문화적 요소
각 사회마다 외모, 성별, 연령, 직업, 학력과 같이 중요시 여기는 요소들이 있으며, 이를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문화적 규범은 우리의 무의식에 깊이 자리 잡아 타인을 판단할 때 자동적으로 적용되기도 한다.
예컨대, 특정 직업군을 열등하거나 덜 중요한 직업으로 간주하는 인식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러한 사회적 기준은 개개인의 자율적 판단을 왜곡하고, 때로는 잘못된 고정관념에 기반한 평가를 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 같은 경향은 어릴 때부터 사회적 학습을 통해 형성된다. 학교나 가정에서 주입된 가치관, 미디어와 대중문화에서 반복적으로 제시되는 이상적인 이미지 등이 타인에 대한 평가 기준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자존감은 변화하고, 인간은 성장한다.
이처럼 인간이 타인을 바라보는 태도를 결정짓는 데에는 많은 외부,내부적 요소들이 개입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우리가 타인을 평가하는 기준과 태도는 내면의 나를 바라보는 태도와 연결되어 있는 것은 확실하다. 사회적 편견이나 기준도 결국 내가 그 것을 얼마나 내 내면에 깊게 수용했느냐가 관여할 것이고, 상호작용을 하면서 상대방에 대한 평가가 바뀔 때에도 나의 자존감이 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은, 그렇다고 해서 타인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모두 내 낮은 자존감 문제로 귀결된다고는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타인을 보는 시선이 지나치게 엄격하고 부정적이라는 것을 느낀다면, 그것은 나 자신을 얼마나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만들고 있는지 돌아보라는 신호라는 점만 기억하면 된다.
또한 인간은 단순히 높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과 낮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으로 나뉘지 않는다. 탄탄하고 건강한 자존감을 가진 사람도 있고, 자존감이 오르내리며 변화하는 과정을 겪는 사람도 있다. 설령 자존감이 낮아 타인을 부정적으로 보았다 하더라도, 이는 죄악이 아니며 평생 지속되는 것도 아니다. 인간은 삶과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성장과 변화를 통해 스스로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