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하경 Feb 14. 2024

제발 살려주세요.

내 몸과 정신이 이젠 한계라고 아우성칠 때

그룹 최초 인턴십 프로그램 총괄하는 초보 팀장


면접관은 면접자와는 다른 방향의 긴장감을 가지고 면접에 임하게 됩니다.


면접은 우리 기업에 대한 좋은 인상을 주어야 하는 미팅 자리이기도 하고


한 번의 잘못된 채용은 조직 전체의 분위기와 성과에 지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채용의 모든 과정은 평가하는 입장에 놓인 사람에게 스트레스가 됩니다.


특히 혼자서 면접에 참여하게 될 경우 지원자와 눈을 맞춘 채로 면접 기록을 진행하고 질문 목록과 이력서, 포트폴리오를 확인하는 진기명기를 곁들여야 하기에 그 스트레스가 배가 됩니다.


3일 연속으로 팀원들을 볼 새도 없이 20시간 가까이 1:1 면접 릴레이를 진행하고 나니 혼이 다 빠져나간 느낌이었습니다.


팀원들 역시 아직 생산성 2배 올리기 챌린지를 진행 중이었기에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는 상황이었고


제가 진행하는 인턴십이 이 그룹 최초의 인턴십 프로그램이었던 탓에 A to Z를 탬플릿이나 참고할 것 없이 모두 새로 짜야했습니다.


준비할 것이 너무 많아 출퇴근 시간이라도 아끼기 위해 회사 앞 호텔에 방을 잡고 새벽에 퇴근하고 새벽에 출근했습니다.


팀에 대한 책임감과 애정,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자꾸만 멈추고 싶다는 생각들이 밀려들었습니다.




일하는 동기가 책임감뿐일 때


일요일에 회사에서 밤을 새우고 월요일 아침에 가장 먼저 출근한 동료와 인사를 할 때, 크게 놀란 동료의 표정을 보고 생각이 복잡해졌습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하고 있을까?


다른 것도 아니고 사람들, 커리어적으로 한창 날아오를 시기의 귀한 1분 1초들을 허투루 쓰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니 조금이라도 대충 할 수는 없지만


애초에 자리 욕심도 없고 연봉 욕심도 없으니, 그냥 실력 있는 모델러로 성장하고 싶다고, 관리자는 하지 않겠다고 그렇게 말씀을 드렸는데


처음에 드린 제안 하나에 대한 책임감으로 이렇게까지 되어야 하나?


실무적으로도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지 못한 채 20대부터 팀장 경력만 쌓은 사람을 다른 회사에서는 필요로 할까?


팀장 공고만 봐도 기본 경력 10년 차를 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길로 쭉 가면 나는 시장 전체에서의 경쟁력도 얻지 못하게 될 테니


이제 여기서 계속 끊임없이 책임감에 붙들려 숨이 턱턱 막혀오는 부담감 속에서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매번 새롭고 짜릿한 조직관리 문제풀이의 세계에서 나오지 못하는 걸까?



왜 유독 나에게 엄격하신 것 같지?


그리고 왜 조직장님은 나를 유독 강하게 키우실까?


나보다 더 연차도 높고 매니징 기간도 긴 팀장님들은 맡은 인원이 5명밖에 없어도 별말씀이 없으시고, 맡은 조직이 20명에 가까워만 져도 빨리 조직을 분리해서 다른 관리자를 세워주시는데


나는 팀장들 중 가장 어리고 경력도 짧은 나는 2개의 파트장과 1개의 팀장을 겸임시키시고 20명이 넘어간다고 아무리 외쳐도 아무 액션이 없으실까.


다른 팀들은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해도 함께 하는 경우가 많은데 내가 진행하는 일들은 큰 규모인데도 왜 늘 전부 내가 혼자 하는 느낌일까.


왜 이 얘기를 직접 여쭤보면 "역량이 뛰어나다고 판단해서 그렇지."라고만 얼버무리실까.


진짜 이제는 한계가 왔다고 저 혼자서는 버티기가 너무 힘들다고 그렇게 말씀을 올렸는데도...




힘든 티를 내서도 안 되는 자리


팀원들이 징계를 받거나 수습을 통과하지 못하거나, 회사로부터 좋지 못한 평가를 받으면 그것을 전하는 마음은 스트레스로 가득 차곤 합니다.


그럴 때 폰부스나 빈 회의실에서 펑펑 울고 돌아가는 길에 상사 분을 마주치면 '팀장이 그렇게 죽을 상을 하고 있으면, 팀원들까지도 뭔가 크게 잘못된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할 수 있다. 본인이 더 의연해야 한다.'는 피드백을 받았고


심지어 팀원들로부터도 '너무 힘들어 보이셔서 가끔 우리가 다 불안하다.'는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회사 밖의 아티클들을 보아도 '리더가 행복해야 한다.'는 말들이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이 자리가 힘이 안 들 수는 없는 자리이기에, 참을 수 없이 힘들지만 전부 꾹 누르고 티도 내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긴장감은 오히려 더 높아져버렸습니다.




몸이 왜 이러지?


하지만 이 모든 생각은 최소한 제가 또 벌려둔 인턴십 프로그램을 마감하기 전까지는 전부 부질없는 투정일 뿐이었기에


'인턴십이 끝나는 4월에 내가 죽는다고 생각하고, 이후 일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자.'며 애써 생각들을 머릿속에 꾹 눌러 닫았습니다.


그렇게 2번의 면접에서 모두 훌륭한 평가를 받은 세 분의 인턴 분들께 모두 프로그램 참여에 대한 수락을 받고,


어느새 내일로 다가온 인턴십 프로그램 첫날을 위해 리허설을 진행하던 중이었습니다.


그저 태블릿 펜을 쥐고 있을 뿐 힘든 일은 하고 있지도 않은데,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혼자 있으니 긴장할 일도 없을 텐데, 갑자기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며 손이 떨려왔습니다.


써야 하는 글씨가 써지지 않을 정도로 주체할 수 없이 손이 떨려왔고, 갑자기 사무실 안에 혼자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공포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이게 뭐지? 나 이렇게 과로사하는 건가? 내일 인턴십 시작인데? 지금 병원도 다 닫았을 텐데?


비이성적인 생각들이 몰아쳐왔습니다.


그러다가 그 시간까지 유일하게 사무실에 남아 계시던 분이 곁을 지나가시는 것을 본 저는 갑자기 그분을 붙잡고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저 어떡해요? 저 진짜 죽을 것 같아요. 제발 살려주세요.


이게 제 생애 첫 공황 발작이었다는 것은 며칠이 지난 뒤에서야 알게되었습니다.

이전 13화 팀의 정체기에 단비 같은 존재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