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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아샘 Oct 14. 2022

외딴섬 별이

직면

 별이와 난형이 사이

 쉬는 시간, 별이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방학을 마치고 돌아온 별이가 미어캣이 되어 버린  것 같다. 평소 관심도 없던 책 한 권을 펼쳐 놓은 채, 눈동자를 전후좌우로 돌리며 시종일관 아이들 눈치를 본다. 한참 시간이 지나도, 책은 한쪽도 넘어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1주 전부터 그래 왔고, 오늘도 마찬가지다. 한 주 동안 별이가 걱정스러워서 힐끔힐끔 별이를 쳐다보았다. 

 별이가 독서를 한다고? 1학기 동안 지켜봤지만, 별이가 자발적으로 책 읽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하다. 별이는 수업 시간, 쉬는 시간 가릴 것 없이 늘 조용한 아이였다. 그런 별이도 단짝 친구인 난형이 와 있을 때면 다른 사람이 되었다. 난형이가 옆에 있으면, 조용한 별이의 목소리가 커지고, 말수도 제법 많아졌다. 학급 친구들은 별이를 썩 좋아하지 않았다. 난형이가 항상 별이를 데리고 다니는 탓에, 친구들도 별이를 놀이에 함께 끼어주었을 뿐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별이 없이 난형이만 혼자 무리 속에 있었다.

 방학 동안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쉬는 시간에 조심스럽게 난형이를 불렀다.

“난형아 요즘 별이랑 잘 안 놀더라? 같이 있는 걸 잘 못 본 것 같아.”

“네. 별이랑 요즘 잘 안 놀아요.”

“무슨 일 있었니?”

난형이가 한참을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별이가 싫어졌어요.”

“왜?”

“제가 아끼는 한진이라는 동생이 있는데요. 얼마 전에 별이가 한진이를 때리고 괴롭혔다고 하더라고요. 별이에게 제대로 사과받고 싶다고 한진이가 저한테 그렇게 말했어요.”

“그 얘길 듣고 나서, 별이에게 실망했구나?” 

“네. 자기보다 나이가 어리다고 한진이에게 함부로 했다고 하니 별이가 싫어졌어요. 한진이는 저한테 소중한 동생이거든요.”

“그 이후로, 별이를 멀리하게 된 거야?”

“네 맞아요.”

“선생님도 난형이 입장이 충분히 이해가 가네. 근데 한진이에게 들은 얘기 별이에게도 말해봤어? 네가 오해하는 걸 수도 있잖아.”

“아뇨. 그 얘길 직접 해보진 않았어요.” 

“그랬구나. 그럼 아직 별이는 왜 네가 자기를 피하는지 모르겠네? 별이 입장에서는 많이 당황스러웠겠다. 아무 말도 없이 단짝 친구인 네가 자기를 멀리하니까 말이야.” 

“그럴 수도 있겠어요.”

“직접 별이와 직접 얘길 나눠볼 수 있겠니?”

“네. 제가 별이와 직접 대화를 나눠 볼게요.”

다음날 쉬는 시간에 난형이가 날 찾았다.

“어제 하굣길에 별이랑 얘기해봤어요. 한진이랑 장난친 건 맞지만, 때리거나 괴롭힌 적은 없대요. 한진이는 분명히 별이에게 맞았고, 아직도 속상하다고 했거든요. 한진이는 거짓말할 아이가 아니에요.”

“별이가 그렇게 얘기했어?”

“네. 별이가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한진이 화가 풀릴 때까지 제대로 사과하기를 바랐어요. 그럼 다시 예전처럼 별이랑 잘 지낼 수 있다고 생각했고요. 별이가 자기 잘못을 인정도 안 하고, 한진이에게 사과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네요. 저도 더 이상은 별이랑 말하고 싶지 않아요.”

“별이가 다른 얘기는 안 했니?”

“네가 뭔데, 왜 자기랑 한진이 일에 쓸데없이 참견하냐고 하던데요? 자기 일에 더 이상 신경 쓰지 말래요. 저도 더 이상은 별이한테 신경 안쓸 거예요.”

“그랬구나. 선생님은 둘 사이가 이전처럼 회복되기를 바랐는데, 정말 아쉽다.”

“네 선생님, 저 그럼 이만 가볼게요.”     


 혼자여도 괜찮아

 난형이는 말도 잘하고, 쾌활한 아이였다. 반 아이들과 두루 친하게 지냈다. 별이는 그렇지 못했다. 우리 반에서 별이가 유일하게 말을 걸고 편하게 지내는 아이는 난형이 한 명뿐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난형이를 달래면서, 둘 사이를 풀어 보려고 노력했던 건 바로 그런 이유였다. 내 생각데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속상했다. 다음 날 별이를 찾아갔다.

“별아, 난형이랑 다시 잘 지내고 싶지 않아?”

“아뇨. 난형이한테 관심 없어요.”

“우리 반에서 제일 친했던 친구잖아. 선생님이 그동안 지켜봤는데, 둘 사이에 생긴 오해만 풀면 예전처럼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더라.”

“난형이 아니어도 저 학교에 친구 많아요.”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교실에서 책만 보고 있으면, 심심하지 않아? 난형이랑 다시 예전처럼 지낼 수 있도록, 선생님이 중간에서 도와줄게.”

“아니에요. 난형이랑 놀고 싶은 마음 하나도 없어요.”

“별아, 한진이랑은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저랑 한진이랑 친했어요. 그래서 장난 좀 쳤던 거고요. 한진이한테 이미 사과도 다 했고요.”

“한진이가 아직 서운한 마음이 남아 있나 봐. 사과는 상대방 마음이 풀릴 때까지 하는 거잖아. 네가 한진이에게 제대로 사과하면, 난형이도 예전처럼 잘 지낼 자신 있대. 한진이에게 사과할 마음이 있니?”

“아뇨. 그러고 싶지 않아요. 한진이랑도 이미 절교했어요. 난형이랑도 더 이상 안 놀 거예요.”

“그렇구나. 알겠어.”

 사실, 별이는 이전 학년에서도 교우 관계가 좋지 못했다. 공부도 잘 못하고, 몸집도 왜소한 데다가 늘 의기소침해 있어서, 친구들이 좋아하지 않았다. 같은 학년 사이에서 기를 펴지 못하다 보니, 자기보다 약한 저학년 아이들과 주로 어울리려고 했다. 자기보다 몸집도 작고 왜소한 저학년들에게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런 와중에 종종 별이가 저학년 아이를 괴롭히는 일이 발생했다. 워낙 자주 사고를 쳐서, 다른 학년 교사인 나까지 알고 있을 정도였다.

 그런 별이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학급 내에서 별이와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난형이가 늘 고마웠다. 난형이가 친구들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잘해주었다. 별이가 더 이상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고, 다른 친구들과도 잘 지낼 수 있어서 기뻤다. 난형이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기에, 별이가 당당하게 학교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난형이가 뒤늦게 동생들을 괴롭히고 다녔던 별이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 난형이가 별이를 크게 믿고 있었기에, 그만큼 실망도 컸으리라.      


 직면하지 않으면

 이제 별이에게 난형이란 커다란 보호막이 사라져 버렸다. 남은 학기 동안 별이를 바라볼 때마다, 살얼음판을 밟는 듯했다. 교실 속에서는 외딴섬과 같이 혼자 숨죽이고 생활하는 별이가, 갑자기 저학년들을 찾아가는 건 아닌지 불안했다. 교실에서 스스로를 억압하고 있다가, 또 예전처럼 만만한 저학년 아이들을 괴롭히면 어떻게 할까. 

 다행히 남은 학기 동안 별이가 큰 사고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그렇게 학기를 마무리할 수 있었지만, 별이와 난형이는 결국 둘 사이의 앙금을 해소하지 못한 채 진급을 해버렸다.

 별이는 새로운 학급에서 친구들과 잘 지내고 있을까? 물론 그러기를 바라지만, 마음가짐을 바꾸지 않는다면 어려울 것 같다. 1년간 지켜본 별이는 스스로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고쳐나가려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외면해버리고, 자신이 상대하기 쉽고 만만한 사람들만 곁에 두려고 한다.

 학교에서 교사는 다양한 교과를 가르친다. 교과 공부 못지않게 중요하게 배워야 하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인간관계이다. 주변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는 것, 마음을 주고받고 우정을 키워가는 건 세상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공부이다. 학급에서 지내다 보면 잘 지내던 친구와도 크고 작은 다툼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 문제를 푸는 방법을 찾아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문제를 직면하지 않고 회피해버리면, 그 문제는 결코 풀리지 않는다. 그건 아이도 어른도 마찬가지다. 별이가 만만한 사람만 찾거나 더 이상 문제를 피하지 말고, 당당하게 자신의 상황에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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