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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아샘 Oct 14. 2022

졸업사진 찍는 날

희생

졸업 사진 준비

 6학년은 다른 학년에 비해서 행사가 참 많다. 수학여행도 가고, 졸업 앨범에 들어갈 사진도 찍고, 졸업식도 한다. 아이들은 행사가 마냥 즐겁겠지만, 담임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보이는 곳에서 행사에 즐겁게 참여하는 것은 아이들의 몫이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미리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는 것은 교사의 몫이기 때문이다.     

 졸업 사진도 은근히 신경 쓸 게 많다. 사진은 보통 하루가 아니라, 2~3일에 걸쳐서 찍는다. 우리 학교도 하루는 개인 사진을 찍고, 두 번째 날은 모둠 사진과 단체 사진을 찍기로 했다. 시간이 흘러, 모둠 사진과 단체 사진을 찍는 날이 되었다.

“여러분, 다음 주 월요일에 모둠 사진 찍는 거 알죠? 6~7명씩 네 모둠을 만들어야 해요. 모둠을 어떻게 만들까요?”

“친한 친구랑 같이하고 싶어요.”

“좋아요. 이번에는 그렇게 해요. 대신 모둠을 구성할 때 몇 가지 주의할 점이 있어요.”

“그게 뭔데요?”

“먼저, 한 사람도 소외되는 사람 없이, 모두가 모둠에 속해야 해요. 둘째, 모둠 당 6~7명으로 인원수를 맞춰 주세요. 어떤 모둠은 4명, 어떤 모둠은 8명, 이런 식으로 구성하면 곤란해요. 셋째, 정해진 모둠에 대해서 대다수가 만족해야 해요. 모둠을 다 만들고, 마지막에 모두가 모둠 구성에 만족하는지 조사할 거예요. 3명 이상이 싫다고 하면, 선생님이 임의로 새롭게 모둠을 짤 거고요. 어때요. 괜찮아요?”

“네 좋아요. 세 가지 다 문제없어요.”

한 시간이 지났다. 문제없다던 아이들이 하나둘 날 찾아왔다.

“선생님, 저희 친한 친구가 4명인데, 4명으로만 모둠을 만들면 안 돼요?”

“저희는 8명이 같이 친한데 그냥 8명으로 하면 안 될까요?”

“안 돼요. 원칙을 정했으니, 6명 또는 7명으로 만들어 보세요.”

인원수가 7명이 안 되는 모둠은 다른 아이들을 추가로 섭외해야 했고, 인원수가 8명보다 많은 모둠은 아이들이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그런데 모둠 간에 이해관계가 있다 보니, 서로가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했다. 누군가 희생을 하고 정리를 해야 할 텐데, 아무도 그럴 마음이 없어 보였다. 이대로는 도무지 정리가 안 될 것 같았다.     


나만 손해 보고 싶지 않아서

 “마지막으로 20분만 더 줄게요. 20분 후에도 안되면, 선생님이 그냥 짤 거예요.”

교사가 정말 임의로 모둠 구성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까. 여기저기서 중구난방으로 모둠을 짜던 아이들이 순간 조용해졌다. 순간 평소 학급에서 리더 역할을 도맡아 하던 제인이와 영빈이가 앞으로 나왔다. 그때부터 둘이 주도적으로 모둠을 짰다. 제인이가 성호를 보며 말했다.

“너희 모둠은 인원이 많으니까 2팀으로 나눠야 할 것 같아. 어떻게 나눌 거야?”

제인이가 주도적으로 모둠을 구성하는 것을 보니, 흐뭇한 마음과 걱정스러운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둘이 자신과 친한 친구들에게만 유리하게 모둠을 짜면 어떡하지? 분명히 자신들은 흩어지지 않고, 다른 모둠 아이들에게만 흩어지라고 할 거야. 그러면 갈등이 생길 거고.’

내가 개입을 할까 하다가, 그냥 지켜보기로 했다. 애초에 아이들이 자유롭게 모둠을 짜기로 하지 않았던가. 두 아이가 본인들에게만 유리하게 모둠을 짜더라도, 결국에는 다들 싫다는 표현을 할 게 분명했다. 그러면 그때 내가 정리를 하면 될 일이다. 한참이나 시간이 흘렀다. 제인이가 갑자기 큰 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이제 다 정리되었어요.”

“정말? 벌써 다 짰다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좋아. 그럼 선생님이 제시한 조건을 충족했는지 우선 살펴볼까? ”

“네. 네 모둠 맞아요. 인원도 6명, 7명이고요.”
 “좋아. 그럼 마지막 한 가지 조건만 남았네?”

아이들이 숨죽인 채 눈을 감았다.

“지금 짠 모둠, 모두 만족스럽나요? 조금이라도 자신의 모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조용히 손을 들어주세요.”

한 아이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예상했던 바였다. 조금만 기다리면,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손을 들겠지. 한참을 숨죽여 기다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더는 손을 드는 아이가 없는 것이 아닌가. 몹시 당황스러웠다. 

“모두 눈 뜨세요. 최종적으로 한 명만 손을 들었어요. 한 명 말고는 모두 만족했으니까, 처음 약속한 대로, 여러분이 짠 모둠을 그대로 유지할게요.”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한편에서는 손뼉을 치면서 기뻐했다. 대다수 아이가 만족한 걸 보니, 나도 마음이 놓였다. 그제야 모둠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천천히 살펴보았다.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제인이와 영빈이 이름에 이르렀다. 순간 깜짝 놀랐다. 내 예상과는 다르게 제인이와 영빈이가 속한 무리의 친구들이 여러 팀으로 분산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두 아이가 자신들의 손해를 감수하면서 모둠을 구성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두 아이가 속한 무리가 네 명뿐이라, 흩어질 필요도 없었을 텐데. 왜 스스로 흩어지기로 한 걸까? 조용히 제인이와 영빈이를 불렀다.

“너희 친한 친구들이 여러 모둠으로 흩어지게 되었네? 그래도 괜찮아?”

“네. 어떻게든 저희끼리 붙어있으려고 했는데요. 그럴수록 아이들 불만이 많아지더라고요. 그건 공정하지 않다면서요. 자신들에게 흩어지라고 하면서, 너희만 왜 붙어있냐고 말했어요. 모두가 만족하는 모둠을 짜기 위해서는, 저희가 흩어지는 방법밖에는 없더라고요.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내가 희생하지 않으면
   제인이는 발표도 잘하고 똑 부러지지만, 타인을 배려하는 모습이 조금 부족했다. 자신과 친한 친구들을 끔찍하게 아꼈지만, 다른 그룹 아이들은 티가 나게 배척했다. 자신이 속한 무리 안에서는 인기가 좋았지만, 다른 무리의 아이들로부터는 신임을 얻지 못했다. 그런 제인이가 다른 아이들을 위해서 스스로 희생하다니, 놀라웠다.

“제인아, 영빈아, 너희가 다른 친구들을 위해서 결단했구나. 그 덕분에, 다들 모둠에 만족하고 있는 것 같아. 너희 정말 멋지다.”

“처음엔 저희도 흩어져서 많이 서운했는데요. 지금 모둠도 마음에 들어요.”

부쩍 자란 제인이와 영빈이를 보며 마음이 뿌듯했다. 이번 일을 통해, 리더는 말이 아닌 행동이 중요함을 배웠으리라. 자신이 손해 보고 희생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이 중요한 가르침을 스스로 깨달은 제인이와 영빈이가 자랑스럽게 생각되었다. 다른 아이들도 두 아이의 모습을 보며, 희생의 가치에 대해서 한 번쯤은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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