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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아샘 Oct 26. 2022

아이들의 뒷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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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뒷담화

 교사는 아이들 사이에서 엉킨 실타래처럼 뒤죽박죽 혼란스러워진 관계를 풀어 주고, 아이들의 무너진 감정을 회복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정작 교사가 마음이 무너질 땐 관심을 두거나, 신경 써주는 이가 별로 없다. 

학기 말이 되어, 우리 반 아이들과 한 학기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혹시 관계가 틀어진 아이들이 있다면, 함께 푸는 시간을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종이에 그동안 우리 반이 잘한 일, 또 우리 반이 고쳐야 할 일을 적어 보세요. 잘한 일들은 함께 칭찬하고, 또 고쳐야 할 것이 있다면 서로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 봅시다.”

 아이들이 제법 진지한 태도로 종이에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었다. 방과 후에 홀로 교실에 남아서 아이들이 적어 놓은 글들을 살펴봤다. 그때, 한 아이가 적은 글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 반에서 진아와 대현이가 뒷말을 자주 합니다. 쉬는 시간이나 학교 끝나고 많이 하는데요. 주된 타깃은 채진이와 선생님입니다.”

수업 태도도 바르고 깍듯한 진아와 대윤이가 다른 아이의 뒷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았다. 그런데 뒤에서 내 욕을 하고 있다고? 조금 전에도 나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간 두 아이가, 하굣길에 담임인 내 욕을 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 모습을 떠올리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진아와 대현이가 평소처럼 내게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 수업 시간에도 여느 때처럼 손을 번쩍 들고 자신 있게 발표를 했다. 평소라면 수업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두 아이를 보며 흐뭇한 마음이 들었겠지만, 그런 마음이 도통 들지 않았다. 

‘내 앞에서는 저렇게 반듯하게 행동하면서, 뒤에서는 내 욕을 하고 다닌단 말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괘씸했다. 나도 그들처럼 겉으로는 상냥하게 대하고, 뒤에서는 욕을 할까 싶었지만 그러고 싶진 않았다.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은 거지 괜찮은 척 연기를 할 자신도 없었고, 또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나 자신과 아이들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두 아이를 불러서 직접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쉬는 시간에 조용히 진아를 불렀다.

 “진아야, 어제 우리 반이 잘한 일과 고쳐야 할 일 적은 것 기억나니?” 

 “네. 기억나요.”

 “누군가가 네가 뒷말을 자주 한다고 적었어. 그리고 뒷말의 주된 대상이 채진이와 선생님이라고 하고. 사실이니?”

 진아의 눈빛이 좌우로 흔들렸다. 흔들리는 눈빛을 보며, 종이에 적힌 그 말이 사실임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네 맞아요.” 

사실 진아가 계속 잡아떼면 어떻게 할까 걱정을 했다. 진아가 순순히 인정한 것만으로도 다행스러웠다.

 “네가 그런 행동을 했다고 하니 선생님도 정말 속상하다. 앞으로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

진아가 짧은 대답과 함께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진아를 돌려보낸 후, 대현이를 불러서 똑같은 질문을 했다. 대현이도 진아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다음 날, 진아와 대현이는 평소 모습처럼 행동했다. 살갑게 내게 인사를 건네는 일도, 수업 시간에 번쩍 손을 들고 자신 있게 답변을 하는 일도 변하지 않았다. 평소처럼 행동하는 그들과 달리, 내 마음은 쉬이 진정되지 않았다.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

 믿었던 아이들이 내 욕을 하고 다닌다는 사실은 아무리 생각해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진한 배신감과 함께 슬픔이 밀려왔다. 괜찮은 척 해봐도 그때뿐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다른 학교에서 근무하는 친구 영수에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영수가 내게 말했다.

“앞에서 욕을 한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없을 때는 담임이든 누구든 욕할 수 있는 거 아냐?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실수 할 수도 있는 거지 뭐. 잊어버려.”

영수의 말처럼 잊어버리려고 노력해 봤지만, 그 후로도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았다. 집에서 한숨을 자주 쉬는 내게 아내가 말했다. 

“무슨 고민 있어요?”

아내의 그 한 마디에, 내 마음속이 무장해제 되었다. 그간의 일들을 남김없이 쏟아 놓자, 잠자코 듣고 있던 아내가 말했다.

“여보, 많이 속상했을 것 같아요. 그간 당신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마음을 쏟았는데. 아이들이 뒤에서 당신 욕을했다고 하니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물론 뒤에서 내 욕을 한 아이들이 밉기도 하지만, 아직 어리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평소 굳게 믿던 아이들마저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을 보니, 내가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나 내 학급 운영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어요. 아이들 앞에 설 때 자신감도 떨어지고 힘드네요.”

“그런 말을 들으니 나도 속상해요. 당신이 아이들을 어떤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하는지 내가 잘 아는걸요. 만약 내가 어릴 때 당신 같은 담임 선생님을 만났다면, 나는 정말 좋았을 것 같아요.”

“어떤 부분이 좋았을 것 같은데요?”

“당신은 일관적인 방식으로 학급 운영을 하잖아요. 내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담임 선생님이 어떤 반응을 할 것인지 예측할 정도로요. 또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아이들을 차별하지 않고 공평하게 대하려고 노력하고요. 내가 당신 학급 학생이라면 안정감이 있고, 정말 좋을 것 같아요, 당신 학급 아이들 대부분도 내색하지 않지만, 나처럼 생각하고 있을 거예요.”

날 가장 잘 아는 아내가 묵직하게 건넨 격려의 말이 내 마음속에 깊이 와닿았다. 진심을 담은 위로였기에, 무너졌던 자신감이 회복되는 기분도 들었다.      


다시 아이들 앞에 자신 있게 설 수 있기를

 아내와 이야기를 나눈 다음 날, 조금은 아이들 앞에 편안한 마음으로 설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믿었던 우리 반 아이들 중 일부가 뒤에서 내 욕을 했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우리 반 대다수 아이가 나를 묵묵하게 지지하고 있을 거란 확신이 생기니, 아이들 앞에 이전처럼 자신 있게 설 수 있었다.

 교사로 살아가는 우리도 흔들릴 때가 있다. 그런 우리에게는 진심으로 우리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지지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 사람이 주위에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아이들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주변에 어려움을 진심으로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기에, 용기를 내서 다시 아이들 앞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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