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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아샘 Oct 12. 2022

예민한 균상이

불안

균상이만 빼고

“선생님, 수련 활동 가면 누구랑 같이 방을 써요? 저희 친한 친구들끼리 같이 방 배정해주시면 안 돼요?”

“수련 활동 가면, 잠 안 자고 밤 새 놀아도 괜찮죠?”

수업 시간에, 누군가 수련 활동 얘길 꺼냈다. 수련 활동 얘기만 나오면, 아이들 표정이 밝아지고 질문이 끊이지 않는다. 그동안 코로나19로 인해서, 수련활동이나 현장체험학습 같은 활동들이 잠정적으로 중단되었다. 최근 들어 코로나19가 조금 잠잠해졌고, 우리 학교도 아이들과 함께 1박 2일로 수련 활동을 가게 되었다. 수련 활동을 가기로 결정된 날, 아이들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아니 한 아이, 균상이만 빼고 말이다. 균상이는 조용하고, 예민한 아이였다. 점심시간이면 종종 내게 귓속말을 했다.

“선생님, 오늘 아침에 먹은 게 소화가 잘 안 되어서요. 배가 많이 아파요. 오늘 점심 못 먹겠어요.”

그때마다 점심을 조금만 먹으라고 하거나, 그마저도 어려울 땐 점심을 먹지 말라고 말해주곤 했다. 배가 아프다는 일이 잦아져서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 균상이가 자주 배가 아프다고 하네요. 그때마다 점심을 못 먹겠다고 하니, 걱정이 많이 돼요.”

“네. 안 그래도 저도 잘 알고 있어요. 집에서도 자주 그러거든요. 속이 안 좋다는데 억지로 먹일 수도 없는 일이고, 속상하네요. 본인이 많이 아프다고 하는데 어쩌겠어요. 하교하고 집에 오면,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죽을 먹일게요.”

균상이는 조퇴도 잦았다. 어떤 날은 머리가 아프다고, 또 어떤 날은 발이 아프다며 조퇴를 자주 했다. 쓰러질 듯한 표정으로 조퇴를 하겠다는 균상이를 담임인 나도, 학부모님도 말릴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방과 후에 균상이가 집에 돌아가지 않고, 홀로 교실에 남아 있었다.

“균상아, 무슨 일 있니?”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데요. 마음이 찝찝해서요. 이것만 하고 갈게요.”

그러고는 책상 줄을 반듯하게 맞추었다.

“책상 줄이 똑바로 잘 안 맞춰져 있어서, 하루 종일 거슬리더라고요.”

혼자서 교실의 책상들을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이내 만족스러운 표정을 한다.

“선생님, 다 됐어요. 저 이만 가볼게요.”

그날 이후로, 균상이는 종종 홀로 교실에 남아서 책상 줄을 반듯하게 맞추었다. 다음 날, 미술 시간이 되었다.

“지금 나눠 준 종이에 먼저 네모 네 개를 그리세요. 그리고 그 안에 네 컷 만화를 그리는 거예요. 할 수 있죠?”

“네. 선생님, 네모 대충 그려도 괜찮죠?”

“네모를 그리는 것보다 그 안에 그리는 내용이 중요하겠죠. 네모는 대충 그려도 돼요.”

 아이들은 쓱쓱 네모를 그린 후, 그 안에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균상이는 자를 이리 대고 저리 대며 땀을 흘렸다. 선을 그렸다가 지우고, 또 그렸다가 지우고를 반복했다.

 “균상아, 네모 모양은 대충 그려도 돼. 선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안에 그리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

“네 선생님. 그런데 선이 정확히 안 맞으니 거슬려서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요. 이 선만 정리하고, 시작할게요.”

 아무리 말해봐도, 균상이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두 시간이 지난 후, 아이들이 모두 작품을 제출했다. 균상이는 아직도 골똘히 종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균상이의 작품을 보니, 몹시 당황스러웠다. 아직까지 네모조차 완성하지 못한 것이다. 그간 균상이가 배가 자주 아픈 것도, 학교 생활이 힘들어서 조퇴를 자주 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지나치게 꼼꼼한 성격 탓이었으리라.     


정말 수련활동을 안 간다고?

 “여러분, 이번 수련 활동 안 가는 사람 없죠?”

 “선생님, 저 안 가요.”

조용히 한 아이가 손을 들었다. 균상이었다. 다들 고대하는 수련 활동을 가지 않겠다니, 놀라웠다. 쉬는 시간에 조용히 균상이를 불렀다.

“균상아 수련 활동 왜 안 가는 거야? 코로나19 때문에 걱정되어서 그러니?”

“아뇨. 그냥 불편해서요.”

불편해서 안 가겠다는 균상이의 말에 깜짝 놀랐다. 불편해서 안 간다니... 불편하다는 짧은 낱말에 포함된 많은 내용들을 예상해 보았다.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잠을 자야 하고, 또 편하지 않은 친구들과 함께 방을 써야 할지도 몰라요. 낯선 조교들의 통제를 받아야 하는데, 조교가 무서우면 어떡해요. 딱 질색인데... 음식이 맛없을 수도 있고요. 거기에서 밥을 먹다가 또 배가 아프면 어떡하죠... 중간에 집에 갈 수도 없을 텐데... 장기 자랑 시간에 할 개인기도 준비해야 하는 거 아녜요? 저 개인기도 없고, 춤도 못 춰요. 숙소 이불은 깨끗할까요? 그렇다고 우리 집 이불을 가져갈 수도 없고...     


실은, 나도 균상이와 비슷해서

 균상이는 지나치게 꼼꼼한 완벽주의자이다. 꼼꼼함과 완벽함을 추구하는 사람의 특성을 나름 잘 안다. 왜냐하면 바로 나도 균상이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꼼꼼함과 완벽함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사실 그 뒤에는 불안이 감추어져 있다. 불안하기 때문에, 불안함을 덜기 위해서 꼼꼼하고 완벽하게 대비를 하려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는 준비하고 대비를 하면 어느 정도는 상황을 예측할 수 있고, 예측이 되면 불안함도 덜해진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통제가 불가능한 낯선 상황이나 새로운 환경에 직면했을 때다. 그런 상황에 처하면 불안감이 증폭된다.

 나도 현재 낯선 상황에 직면해 있다. 당장 올해를 마치고 새로운 학교로 전근을 가야 한다. 어떤 학교로 가게 될지 몰라서 불안하다. 물론 가고 싶은 학교를 선택하고 지원할 수 있지만, 학교 선택도 쉽지가 않다. 학교마다 고려해야 할 변수도 참 많고 지원한다고 반드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먼저 학교의 관리자, 학생, 학부모님, 동료가 각각 어떤지도 따져봐야 한다.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도 알아봐야 한다. 지나치게 많은 사항을 모두 예측할 수 없고, 예측이 안되니 더 불안해진다. 새로운 상황을 완벽하게 분석하고 예측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불가능한 것 같다. 이런 고민을 하다가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나 내년에 한 해만 육아 휴직하고 집에 있어도 돼요?”

 “그래요. 마음이 편치 않으면 그래도 괜찮아요.”

 “농담이에요. 학교 옮기는 게 걱정된다고 무작정 휴직을 할 순 없죠.”

 막연한 불안 때문에 1박 2일 수련회를 누리지 못하는 균상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처음엔 낯선 환경이 불안하고 불편할 수 있겠지만, 막상 수련회에 가고 나면 즐거운 일도 많을 텐데... 완벽하게 통제가 안되고 불편하다고 그 상황 자체를 피해버리면, 친구들과의 멋지고 행복한 추억을 쌓을 기회도 영영 사라져 버리지 않는가. 이런 상황이, 제삼자 입장에서 보니 참 잘 보인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어느 학교로 전근을 가든, 또 그 안에서 즐겁게 지낼 수 있을 텐데. 미래의 모든 변수를 예측하고 통제하려다 보니, 머리만 지끈지끈 아프고 현재를 누리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결국은 모든 일을 완벽하게 통제하겠다는 마음을 내려놓고, 좀 더 편안한 마음을 가지는 것 밖에는 답이 없단 생각이 든다. 어딜 가도 또 누굴 만나도 또 새로운 경험이 될 테니까.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새롭게 주어진 기회를 포기해버리는 건, 아무리 생각해봐 균상이나 나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듯하다. 내일은 학교에 가서, 균상이에게 말을 걸어봐야겠다.

“균상아, 네가 불편한 것 충분히 이해해. 그래도 수련회를 같이 가보면 어떨까? 네가 걱정하는 것보다 재밌는 일들이 많을 거야.”

 이런 말을 생각하다 보니, 나 역시도 새 학교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줄어드는 것 같다. 두려움 속에만 머무르다가, 현재의 기쁨을 놓치지 않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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