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하는 성진이
“아이 씨 X. X 같아. 좀 닥치라고.”
“선생님 성진이가 욕해요.”
성진이 욕을 듣고, 반 아이들이 나에게 와서 말했다. 작은 키에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성진이는 참 귀여운 아이였다. 그런 성진이의 입에서, 쉬는 시간마다 거친 말들이 쏟아져 나와서 몹시 당황스러웠다. 욕을 작게 말하면 못 들은 척 넘어가기라도 할 텐데, 큰 소리로 거침없이 욕을 내뱉는 탓에 못 들은 척 그냥 넘어갈 수도 없었다.
“아 진짜 XX 새끼,”
“뭐. 이 새끼야.”
성진이 입에서 욕설이 시작되면, 금세 다른 친구들에게 번져간다는 것도 큰 문제였다.
“여러분, 욕하지 말고 말 좀 예쁘게 하세요.”
욕을 하지 말라고 말해보아도 잠시뿐, 여기저기서 욕설이 쉴 새 없이 들렸다. 주의를 주어도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도저히 못 참겠어서, 아이들에게 말했다.
“우리 반에서 욕을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선생님이 말로만 하니까, 욕을 안 하려고 주의하는 것 같지도 않고요. 앞으로 욕하면 어떻게 할까요?”
“남아서 10분 동안 청소하고 가요.”
“좋아요. 그렇게 해요. 앞으로 교실에서 욕한 사람은 청소하고 가는 거예요.”
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성진이와 몇몇 친구들이 큰 소리로 욕을 했다.
“지금 욕한 사람들, 10분 청소 알죠?”
그 후로 욕설이 많이 줄긴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않는 듯해서 찝찝했다. 상쾌하게 하루를 보내고 싶은데, 아이들이 내뱉은 욕설들이 내 귓가에 맴돌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욕은 전파가 참 빨랐다. 한 명이 거칠게 욕을 내뱉으면, 주변 아이들이 경쟁하듯 욕설을 했다. 반 친구들에게 계속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성진이를 보자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부정적인 사람은 피하고 싶어서
우리 반 성진이를 보니, 과거 대학교 동기였던 규철이가 떠올랐다. 교대 입학 전 일반 대학을 2년간 다녔고, 규철이는 그 시절 만났던 단짝 친구였다. 같은 과에 종교도 같고, 같은 동아리 활동도 하는 탓에 우리는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규철이가 가는 곳에 내가 있었고, 내가 있는 곳에는 규철이가 있었다. 성실하고 장점이 많은 친구였지만, 도드라지는 단점도 있었다. 그건 바로 부정적인 말을 입에 달고 산다는 것이었다.
규철이는 ‘나는 못 해’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되뇌었다. 왜 스스로가 못하는지 이유도 참 많았다. 그중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말은 아버지 때문에 였다. 아버지 때문에 자신이 원하지 않는 학교에 왔다고 불평했다. 아버지가 자신의 삶에 간섭을 하는 탓에, 본인이 주도적으로 살 수가 없다는 말도 매번 반복했다. 차분하고, 성실한 규철이가 좋았지만, 반복적으로 내뱉는 부정적인 말은 쉬이 익숙해지지 않았다. 긍정적인 말을 주고받고 싶은데, 규철이의 부정적이고 우울한 말에 압도될 뿐이었다.
군대 입대 후에는 내가 복학하지 않고, 다른 진로를 선택한 탓에 규철이와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었다. 물론 서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도 있었고, 또 종종 만날 기회도 있었지만 자연스럽게 규철이를 피했다. 우울한 분위기를 풍기는 규철이와 더 이상 교류하고 싶지 않은 탓이었다.
학창 시절에는 내 주위에는 다양한 부류의 아이들이 있었다. 그중에는 나랑 잘 맞는 아이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얼른 그걸 파악한 후에 나랑 잘 맞는 사람을 선택하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을 멀리했다. 처음엔 잘 맞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규철이처럼 적당히 피하면 될 일이었다. 나와 잘 맞고, 나에게 밝은 에너지를 주는 친구들만 옆에 두고 그렇게 지냈다.
그러나 교직 생활을 시작하고 난 후에는 그렇게 내 맘대로 사람들을 선택해서 사귈 수 없다. 학생을 내가 선택할 수 없었고, 1년이란 시간 동안 그들과 지속적으로 동행해야 한다. 내가 싫다고 불편하다고, 그들을 우리 반에서 배제하거나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등교해서 하교하기 전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는 반 아이들과 마음이 맞지 않을 땐, 마음이 참 어려웠다. 학창 시절이었다면 성진이 같은 아이를 만나면 자연스럽게 피하면 됐을 텐데, 지금은 매일 얼굴을 맞대어야 하니까.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
성진이가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모습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말로 달래도 보고, 청소도 시켜보고 해 봐도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으니 답답했다. 못 본 척 피해보기도 했지만, 1년 동안 그렇게 보낼 자신이 없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성진이 문제를 풀어야 했다. 먼저 성진이가 왜 욕을 할 수밖에 없는지, 그 상황을 이해해 보기로 했다.
성진이는 한부모 가정 아이로, 어머니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상황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아버지 없이 산다는 게 쉬운 일일까? 어머니의 고단한 삶이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졌다. 아버지가 부재한, 결핍 속에서 힘들었을 성진이의 모습도 머릿속에 그려졌다. 공허한 마음, 표현할 수 없는 울분이 마음속에 있지는 않을까. 그런 화가 욕으로 나타난 것은 아닐까. 아이의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니, 성진이의 행동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이런 마음에 이르자, 이전보다 더 따뜻한 눈으로 성진이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성진아, 너 숙제도 다 해왔어? 정말 잘했다. 대단해.”
성진이의 긍정적인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친구들과도 스스럼없이 지내고, 밝게 생활하려고 노력하는 모습도 좋아 보였다. 성진이를 바라보는 내 시선이 바뀌자, 날 대하는 성진이의 모습도 한결 편안해졌다.
2학기가 되어 성진이가 부쩍 자랐다. 아직도 간혹 욕을 하긴 하지만, 1학기와 비교하면 거의 하지 않는 거나 다름없다. 수학을 더 열심히 공부하고 싶다며 선생님이랑 남아서 공부해도 되냐고 묻는 걸 보니, 나와의 관계도 이전보다 많이 좋아진 것 같다.
원래부터 나쁜 아이는 없으니까
교사의 숙명은 아이를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맡겨진 아이들과 1년을 잘 지내야 한다. 불편해도 마음이 안 맞아도 결코 피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는 모든 아이를 어떤 방식으로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게 교사와 학생 모두가 살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소위 모범생 아이들이 눈에 더 잘 들어왔다. 말을 예쁘게 하고, 스스로 행동도 잘하는 아이 말이다. 사실 그런 아이들은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어느 반에 가든 사랑받으며 잘 지낼 수 있다. 최근에는 장난치고 까불고 특이한 행동을 하는 아이도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도 관심을 받고 싶은데 서툴러서 독특한 방식으로, 자신을 나타내고 있는 것뿐이니까. 그 특이한 표현 방법을 이해하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이해해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