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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아샘 Oct 12. 2022

욕하는 성진이

이해

욕하는 성진이

 “아이 씨 X. X 같아. 좀 닥치라고.”

 “선생님 성진이가 욕해요.”

 성진이 욕을 듣고, 반 아이들이 나에게 와서 말했다. 작은 키에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성진이는 참 귀여운 아이였다. 그런 성진이의 입에서, 쉬는 시간마다 거친 말들이 쏟아져 나와서 몹시 당황스러웠다. 욕을 작게 말하면 못 들은 척 넘어가기라도 할 텐데, 큰 소리로 거침없이 욕을 내뱉는 탓에 못 들은 척 그냥 넘어갈 수도 없었다.

“아 진짜 XX 새끼,”

“뭐. 이 새끼야.”

성진이 입에서 욕설이 시작되면, 금세 다른 친구들에게 번져간다는 것도 큰 문제였다.

“여러분, 욕하지 말고 말 좀 예쁘게 하세요.”

욕을 하지 말라고 말해보아도 잠시뿐, 여기저기서 욕설이 쉴 새 없이 들렸다. 주의를 주어도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도저히 못 참겠어서, 아이들에게 말했다.

“우리 반에서 욕을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선생님이 말로만 하니까, 욕을 안 하려고 주의하는 것 같지도 않고요. 앞으로 욕하면 어떻게 할까요?”

“남아서 10분 동안 청소하고 가요.”

“좋아요. 그렇게 해요. 앞으로 교실에서 욕한 사람은 청소하고 가는 거예요.”

 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성진이와 몇몇 친구들이 큰 소리로 욕을 했다.

“지금 욕한 사람들, 10분 청소 알죠?”

그 후로 욕설이 많이 줄긴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않는 듯해서 찝찝했다. 상쾌하게 하루를 보내고 싶은데, 아이들이 내뱉은 욕설들이 내 귓가에 맴돌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욕은 전파가 참 빨랐다. 한 명이 거칠게 욕을 내뱉으면, 주변 아이들이 경쟁하듯 욕설을 했다. 반 친구들에게 계속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성진이를 보자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부정적인 사람은 피하고 싶어서

 우리 반 성진이를 보니, 과거 대학교 동기였던 규철이가 떠올랐다. 교대 입학 전 일반 대학을 2년간 다녔고, 규철이는 그 시절 만났던 단짝 친구였다. 같은 과에 종교도 같고, 같은 동아리 활동도 하는 탓에 우리는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규철이가 가는 곳에 내가 있었고, 내가 있는 곳에는 규철이가 있었다. 성실하고 장점이 많은 친구였지만, 도드라지는 단점도 있었다. 그건 바로 부정적인 말을 입에 달고 산다는 것이었다.     

 규철이는 ‘나는 못 해’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되뇌었다. 왜 스스로가 못하는지 이유도 참 많았다. 그중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말은 아버지 때문에 였다. 아버지 때문에 자신이 원하지 않는 학교왔다고 불평했다. 아버지가 자신의 삶에 간섭을 하는 탓에, 본인이 주도적으로 살 수가 없다는 말도 매번 반복했다. 차분하고, 성실한 규철이가 좋았지만, 반복적으로 내뱉는 부정적인 말은 쉬이 익숙해지지 않았다. 긍정적인 말을 주고받고 싶은데, 규철이의 부정적이고 우울한 에 압도될 뿐이었다.

 군대 입대 후에는 내가 복학하지 않고, 다른 진로를 선택한 탓에 규철이와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었다. 물론 서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도 있었고, 또 종종 만날 기회도 있었지만 자연스럽게 규철이를 피했다. 우울한 분위기를 풍기는 규철이와 더 이상 교류하고 싶지 않은 탓이었다.

 학창 시절에는 내 주위에는 다양한 부류의 아이들이 있었다. 그중에는 나랑 잘 맞는 아이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얼른 그걸 파악한 후에 나랑 잘 맞는 사람을 선택하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을 멀리했다. 처음엔 잘 맞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규철이처럼 적당히 피하면 될 일이었다. 나와 잘 맞고, 나에게 밝은 에너지를 주는 친구들만 옆에 두고 그렇게 지냈다.

 그러나 교직 생활을 시작하고 난 후에는 그렇게 내 맘대로 사람들을 선택해서 사귈 수 없다. 학생을 내가 선택할 수 없었고, 1년이란 시간 동안 그들과 지속적으로 동행해야 한다. 내가 싫다고 불편하다고, 그들을 우리 반에서 배제하거나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등교해서 하교하기 전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는 반 아이들과 마음이 맞지 않을 땐, 마음이 참 어려웠다. 학창 시절이었다면 성진이 같은 아이를 만나면 자연스럽게 피하면 됐을 텐데, 지금은 매일 얼굴을 맞대어야 하니까.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

 성진이가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모습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말로 달래도 보고, 청소도 시켜보고 해 봐도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으니 답답했다. 못 본 척 피해보기도 했지만, 1년 동안 그렇게 보낼 자신이 없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성진이 문제를 풀어야 했다. 먼저 성진이가 왜 욕을 할 수밖에 없는지, 그 상황을 이해해 보기로 했다.

 성진이는 한부모 가정 아이로, 어머니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상황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아버지 없이 산다는 게 쉬운 일일까? 어머니의 고단한 삶이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졌다. 아버지가 부재한, 결핍 속에서 힘들었을 성진이의 모습도 머릿속에 그려졌다. 공허한 마음, 표현할 수 없는 울분이 마음속에 있지는 않을까. 그런 화가 욕으로 나타난 것은 아닐까. 아이의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니, 성진이의 행동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이런 마음에 이르자, 이전보다 더 따뜻한 눈으로 성진이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성진아, 너 숙제도 다 해왔어? 정말 잘했다. 대단해.”

 성진이의 긍정적인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친구들과도 스스럼없이 지내고, 밝게 생활하려고 노력하는 모습도 좋아 보였다. 성진이를 바라보는 내 시선이 바뀌자, 날 대하는 성진이의 모습도 한결 편안해졌다.

 2학기가 되어 성진이가 부쩍 자랐다. 아직도 간혹 욕을 하긴 하지만, 1학기와 비교하면 거의 하지 않는 거나 다름없다. 수학을 더 열심히 공부하고 싶다며 선생님이랑 남아서 공부해도 되냐고 묻는 걸 보니, 나와의 관계도 이전보다 많이 좋아진 것 같다.     


원래부터 나쁜 아이는 없으니까

 교사의 숙명은 아이를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맡겨진 아이들과 1년을 잘 지내야 한다. 불편해도 마음이 안 맞아도 결코 피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는 모든 아이를 어떤 방식으로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게 교사와 학생 모두가 살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소위 모범생 아이들이 눈에 더 잘 들어왔다. 말을 예쁘게 하고, 스스로 행동도 잘하는 아이 말이다. 사실 그런 아이들은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어느 반에 가든 사랑받으며 잘 지낼 수 있다. 최근에는 장난치고 까불고 특이한 행동을 하는 아이도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도 관심을 받고 싶은데 서툴러서 독특한 방식으로, 자신을 나타내고 있는 것뿐이니까. 그 특이한 표현 방법을 이해하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이해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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