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글로 남겨 주세요
교실에서 일어나는 작은 기적들
문틈 사이로 강렬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따가운 햇빛이 얼굴에 닿자 정신이 번쩍 듭니다. 지각인가? 화들짝 눈을 떴습니다. 시계를 보니 6시 30분. 휴— 다행입니다. 긴 한숨을 내쉽니다. 간단히 아침을 챙겨 먹고 몸을 씻습니다. 아이를 깨워 등원 준비를 시킨 뒤, 출근길에 나섭니다. 오늘은 유난히 몸이 무겁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오늘, 그냥 쉬면 안 될까. 학교 가기 정말 싫다...’
네, 교사도 학교 가기 싫은 날이 있습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교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한창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다시 수능을 준비했고, 스물네 살에 교대 합격 통지서를 받았습니다. 그날, 가족들과 함께 기쁨의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리고 스물아홉, 마침내 교사가 되었죠. 그토록 바라던 삶이었지만, 그 삶이 일상이 되자 마음은 조금씩 무뎌졌습니다. 그럴 때마다 다시 생각합니다.
‘내가 처음 교사가 되기를 원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초심을 떠올리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바로, 교실에서 일어나는 작은 기적들 말이에요.
회장이 되고 싶어요
3학년 담임을 맡았을 때였습니다. 한 아이가 유독 눈에 띄었습니다. 이름은 ‘명랑이’. 친구들은 매일같이 명랑이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선생님, 명랑이가 욕했어요.”
“선생님, 명랑이가 저 때렸어요.”
그러던 어느 날, 명랑이가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저는 저를 추천합니다. 제가 회장이 되고 싶거든요.”
순간 놀랐지만, 태연한 척하며 명랑이의 이름을 칠판에 적었습니다. 학급 회장 선거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명랑이는 몇 표를 받았을까요?
단 한 표.
명랑이 자신이 던진 그 한 표였습니다. 실망했을까 걱정이 되어 조심스레 다가가 말을 건넸습니다. 그런데 명랑이는 의외의 질문을 던졌습니다.
“선생님, 회장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음... 친구들 마음을 얻어야 해. 욕을 하거나 때리지 않고, 어려운 친구가 있으면 도와주기도 하고.”
“알겠어요. 노력해 볼게요.”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하루 이틀 반짝 하다 말겠지 싶었죠. 그런데 놀랍게도, 그날 이후 명랑이는 정말 달라졌습니다. 욕도 하지 않고, 친구를 때리지도 않았습니다. 친구들이 어려워할 땐 먼저 도와주기도 했고요. 그리고 시간이 흘러 2학기 학급 회장 선거가 돌아왔습니다. 이번엔 친구의 손이 번쩍 들렸습니다.
“저는 명랑이를 추천합니다. 명랑이는 친구도 잘 도와주고요, 착한 일도 많이 해요.”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네, 명랑이는 학급 회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회장이 된 후에도, 처음의 그 태도를 변함없이 이어갔습니다. 저는 담임 교사로서 한 아이의 변화된 모습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그 사실만으로도 감사했습니다.
이런 일들이 저희 반에서만 일어나는 걸까요? 아닙니다. 전국의 교실 곳곳에서, 소중한 변화들이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장면들은 기록하지 않으면 금세 사라지고 맙니다. 그리고 사라진다는 건 아쉬운 일입니다. 교사 자신에게도, 아이들에게도,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른들에게도요. 그래서 저는 교사가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과 함께한 기적 같은 순간들을 말이 아닌 글로 남겨야 하니까요. 기억을 지나가게 두지 않고, 삶에 새겨 넣기 위해서요. 누군가에게는 스쳐가는 일상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바꾸는 한순간일 수 있으니까요.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교사라면, 오늘 당신의 교실에서도 작은 기적이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기적을 꼭, 글로 남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