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서 기억하고 싶은 장면을 써보세요
야옹하는 아이에게 멍멍하라고만 말할 수 없으니까요
교사 성장에 관한 연수에 참석했습니다. 연수가 시작되자 강사가 갑자기 질문 하나를 던졌습니다.
“교사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은 무엇일까요?”
사랑, 관심, 자신감… 여러 가지 답변이 나왔습니다.
“물론 그것도 다 중요하지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답은 아직 안 나왔어요.”
한참을 뜸 들이던 강사가 말을 이었습니다.
“저는 교사에게 관찰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고는 그림책 한 권을 꺼내 보였습니다. 《짖어봐, 조지야》라는 책이었습니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조지라는 강아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조지는 ‘멍멍’하고 짖지 못해요. 대신 ‘야옹’ 하고 우는 겁니다. 주변 사람들은 걱정하며 이것저것 시도합니다. 멍멍 짖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도 하고, 다그쳐 보기도 합니다. 그래도 조지는 여전히 ‘야옹’ 하고 울 뿐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조지는 ‘멍멍!’하고 짖게 됩니다. 왜 그랬을까요? 조지의 뱃속에 들어 있던 고양이를 꺼내주었기 때문입니다. 야옹 하고 울던 건, 그 안에 ‘야옹 하는 존재’가 있었던 거죠. 강사는 말했습니다.
“우리 반에도 야옹하고 우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멍멍하지 못한다고 다그치지 말고, 왜 야옹하는지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말이 오래도록 마음속을 맴돌았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야옹하는 아이에게 멍멍하라고만 말할 수 없으니까요. 그 아이 뱃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지우가 야옹하고 울었습니다
지우도 그런 아이였습니다.
“하지 말라고!!”
아침 활동 시간, 조용히 책을 읽고 있는 아이들 사이에서 지우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습니다. 옆 친구가 웃으며 말을 걸었는데, 느닷없이 버럭 화를 낸 겁니다. 저는 물론이고, 아이들 모두가 놀라 멈춰 섰습니다. 지우는 인상을 잔뜩 쓰며 친구를 노려보았고, 저 역시 그 순간에는 쉽게 말을 걸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지우의 표정이 조금 부드러워졌을 무렵 저는 지우를 데리고 조용히 복도로 나왔습니다.
“지우야, 무슨 일 있었어?”
지우는 억울하다는 듯 말했습니다.
“제 짝이 저를 비웃으면서 놀렸어요.”
“뭐라고 말했는데?”
“태권도 대회 잘 갔다 왔냐고 하잖아요.”
그 대답에 저도 잠시 멈칫했습니다. 그 말이 놀릴 만한 표현은 아니었기에 지우의 반응이 의아했어요. 그런데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을 때, 지우의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뚝 떨어졌습니다.
“지우는요, 제가 태권도 대회에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하나도 몰라요. 저희 태권도장에서 10명이 대회에 나갔는데요, 6학년은 저 혼자였어요.”
“혼자라서 외로웠겠다.”
“네… 그런데 관장님이 제가 최고 학년이라고, 아이들을 돌보라고 했어요. 동생들이 대회를 앞두고 울고 무서워하니까… 사실은 저도 대회가 처음이라 엄청 무서웠는데… 전 괜찮은 척했어요. 그러다 첫 경기에서 바로 져버렸어요.”
말을 이어가는 지우의 어깨가 축 처졌습니다. 그동안 꾹꾹 눌러 담았던 마음이 쏟아지는 듯했어요.
‘지우 뱃속’에는 말 못 한 외로움과 무서움, 책임감, 자책이 들어 있었습니다. 만약 제가 그날 지우의 표정만 보고 “왜 소리를 질러?” 하고 다그쳤다면, 지우는 더 마음을 닫았을지도 모릅니다. 관찰하지 않고, 들으려 하지 않았다면 저는 지우가 왜 야옹하고 울었는지 끝내 알지 못했을 겁니다.
교실에서 기억하고 싶은 장면을 써보세요
이 일을 저는 글로 남겼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기억해 두고 싶어서였어요. 그런데 써 내려가는 동안, 저는 아이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그날의 말, 표정, 감정들이 다시 살아났고, 처음엔 보이지 않았던 지우의 마음이 보였습니다. 글은 단순한 기록이 아닙니다. 글은 지나간 감정을 다시 만나고, 그날의 교실을 마음으로 다시 걷는 일입니다. 그 장면을 다시 꺼내어 느끼고, 공하게 만드는 도구입니다.
교실은 너무 바쁘고 분주합니다. 수많은 장면이 눈앞에서 스쳐 지나가 버리죠. 하지만 교사가 글을 쓰기 시작하면, 그 장면들이 다시 돌아옵니다. 다시 보고, 다시 듣고, 다시 느끼게 되는 거예요. 저는 글을 쓰는 교사가 교실을 더 깊이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글을 쓰려면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가야 하거든요. 교사의 글은 아이를 다시 보는 일이고, 교실을 다시 느끼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글을 쓴다는 건, 아이를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일입니다. 또한 교실의 순간을 붙잡아두겠다는 표현이고요.
당신의 교실에서 기억하고 싶은 장면이 있나요? 그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다면, 한 줄이라도 써보세요. 글을 쓰기 시작하면, 당신의 교실은 더 깊어질 것입니다. 또한 아이들과 여러분 사이가 더 가까워질 겁니다. 그리고 교사인 당신도 더 따뜻해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