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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정 Apr 08. 2024

한숨, 숨


자주 숨이 막히는 요즘이다. 출근하면 특히나 그런다. 아무 표정 없는 얼굴로 기계처럼 해야 하는 일을 꼭 해야 하는 만큼만 한다. 도무지 적응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 속에서 자꾸 한숨을 내쉰다. 그런 모습을 계속 들킬 수는 없어 내뱉는 숨은 길게 나누어 뿜는다. 흩어지는 숨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나도 함께 흩어져 여기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문득 한다.


퇴근 후엔 요가원으로 간다. 빠르게 달려가면 너무 이르게 도착하기 때문에 최대한 천천히 걷는다. 그래도 일찍 도착한 날에는 옆에 있는 꽃집 구경을 한다. 들어가면 살까 싶어 밖에서만 본다. 생초보 요가인은 50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르고 쫓기듯 좇아서 한다. 옆 사람을 하도 힐끗거려 눈알은 영 피로해지는 시간. 그 모습에 선생님은 일부러 찾아와 ‘그거 맞아요’ 속삭여준다. 내 돈 주고 사서 고생과 눈치를 보는 와중에 이런 것에 감동하는 모습이 조금 우습다. 아무리 피곤했던 하루도 요가를 마치고 나와 시원한 공기를 맞으면 그게 제법 상쾌하다고 느낀다. 괜히 기분이 좋아져 자꾸자꾸 숨을 들이켜 본다. 오, 이런 게 운동의 매력인가 봐? 하고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나 자신에게 2차 흐뭇.


화요일에는 요가를 갈 여력조차 없이 마음이 힘들어서 곧장 집으로 향했다. 새벽에 깨더라도 그냥 씻고 일찍 누울까 어쩔까 고민하는 중에 DM으로 웬 라이브 링크가 왔다. 얼마 전 피드에서 본 기부 경매 지금 하나 보네. 원래는 참여할 생각이 없었지만, 마땅히 할 일도 없으니 어떻게 하나 구경이나 하자며 들어가 본다.

얼마전 마켓에서 본 낯익은 친구들이 큼큼대며 준비 중이다. 모 대학교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는 학생들 몇이 교수님과 함께 진행한 프로젝트다. 마켓을 참여하고 남은 작품들을 경매에 부쳐 기부하기로 했다. 이런 행사가 처음인 학생들은 우왕좌왕하면서도 들뜬 얼굴을 숨기지 못한다.


세상을 원망하고 혐오하느라 고작 투정만 부리던 사람은 문득 크게 반성하게 된다. 그렇게 세상을 힐난하던 나는 언제 어디쯤부터 이렇게 멈춰 서 있더라. 아직 순수한 열정이 남아있는 그들은 세상은 무슨 모습이든 그 걸음을 멈추어 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볼품없고 어설퍼도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다. 마치 세상이 멸망해도 한 그루의 나무를 심을 것처럼, 그렇게 엉망진창의 주변을 주시하기 보다는 눈앞의 오늘을 살고 있다. 내가 미워한 것은 세상이 아니라 자신이었음을 다시금 깨닫고 만다. 그런데도 아직 그들을 쫓아 힘찬 발걸음과 들뜬 내일을 준비할 여력은 없다. 그래도 좀전보다는 세상이 덜 미운 마음이다.


오늘 출근길에는 골목으로 들어가는데, 구석에 두유와 오예스가 덩그러니 놓여있는 걸 봤다. 굳이 걸음을 멈춰 세우진 않았기에 지나면서 얼른 ‘응?’하고 생각하고는 금세 ‘아!’하고 깨닫는다. 그 자리에는 가끔씩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계시는 아저씨가 있다. 옛날엔 거지라고 부르다가 IMF를 겪으며 그들을 비하하지 않기 위해 노숙자라고 하다가, 또 노숙인이라고 하다가 뭐 그렇게 된. 그렇게 단어만 바꾸면 그들의 모습이 조금이나마 나은 것이 되는 건지, 쯧, 하다가 다시 자신을 비웃는다. 너나 잘해.


그래도 따뜻한 마음씨에 역시 기분 좋은 아침이다. 전날에는 결국 기부 경매를 흥에 겨워 참여했고, 몇몇 작품을 얻었다. 예정에 없던 꽤 큰 지출이지만 요즘 정신건강을 생각해보면 병원비가 싸게 먹힌 건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숨을 들이켠다. 내뱉는다. 뱉을 때는 최대한 오랫동안. 흩어지는 숨을 고스란히 느껴보자. 한숨을 큰 숨으로 바꾸자. 그저 지금 내쉬는 이 숨에 그래,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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