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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대윤 Jun 02. 2024

충남 대천, 겨울 바다의
묵묵한 무거움이 좋다.

열세 번째 작은 세상

"그날 밤, 그곳에서 그 녀를 만났지. 그리고...."


밑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신파극은 남자들이 자신의 무용담을 펼쳐내기 위한 자랑거리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진짜냐.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막상 실제 상황에서튼 쭈뼛거리고 머뭇거리는 것이 남자고, 바보들이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을 자주 하는 이유와, 자주 생겨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런 이야기들이 만들어지는 배경 즉, 바다라는 배경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바다를 꿈꾼다. 바다라는 배경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인가를 해소할 수 있다고 믿는다.


충청도에는 유명한 바다가 있다. 바로 대천해수욕장이다. 아... 이제 보령이라는 도시로 통합이 되었으니 보령해수욕장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대천해수욕장이라는 명칭을 지금도 더 애정한다.




이곳은 꽤 유명한 곳이다.

해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피서를 왔던 곳이다. 현재는 많은 사람들이 바다가 아닌 다른 장소로도 피서를 가니까 덜하겠지만, 예전 피서지라고 하면 계곡과 바다 밖에 없던 시절에는 콩나물시루처럼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던 곳이 이곳이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밤이 되면 뜨거운 피를 가진 청춘들이 서로의 짝을 찾아서 헤매다 사 위험한 장난에도 빠지게 되었던 뭐 그런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여름에 이 바다에 대한 추억은 갖고 있지 않다. 여름에 이 바다에 가서 청춘 놀이를 할 시간적 여유가 솔직히 내게는 없었다. 그렇다. 

나는 그리워는 하되 할 수는 없는 그런 놀이였다.


바닷가에 앉아서 술을 마시면 술맛이 몇 배 더 좋다고 하던가. 나는 술도 못하니 그 맛도 잘 모를 것이요. 그러다 보니 운치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그 묘한 분위기는 한 번쯤 경험해보고 싶었는데 이제는 그러려니 해도 할 수가 없다. 인생,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어서 매력적인 곳이다.




2월의 어느 날, 바다를 찾았다.

날씨가 꽤나 따스했는데, 그것은 바닷가 근처 전까지만 해당되었던 말이고, 해가 넘어가기 시작한 바다는 차가운 바람을 밀어붙이기 시작하는 중이었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바닷가를 조금 바라보다가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분명 여름과는 다를 사람들의 모습이지만 겨울만이 가질 수 있는 그 매력적이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혼자서도 찾는 바다지만 친구들과 삼삼오오 바다를 찾은 사람이 많았던 날, 주변에 여럿이 온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밀물은 바람을 밀고 들어오고, 그 바람은 사람들의 옷깃을 여미게 한다. 해는 눈에 띄게 빠르게 한 쪽으로 기울어져가고, 이제 곧 짧고 아름다웠던 시간을 끝날 것이라는 것을 알린다.



어느 사람들은 바다에 오면 자신만의 에너지가 극대화되는 것 같기도 하다. 하늘에 닿을 듯이 위로 뛰어오르는 그 녀를 보며 그 모습을 부러워한다. 사람은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사람을 볼  때 가장 부러운 법이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눈에 띄는 사람들은 해변의 연인이다. 이 연인들은 해를 배경으로 몇 번이나 같은 포즈를 취했는지 모른다. 내가 가서 찍어주고 싶을 정도로 같은 포즈를 연속했다. 사랄은 그렇게 해도 지치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지쳐도 아닌 척하는 것일까. 


둘 중에 정답이 없을 수도 있지만 이들은 하고 또 하고 또다시 같은 동작을 되풀이하며 그 차가운 바닷바람을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은 한정이 되어있는 법, 우리는 해를 보내주는 법도 배워야 한다. 한쪽에 앉아서 끝까지 사라지는 해를 바라보는 것도 운치 있는 일이다. 사람들은 벌써 많이 사라져 버리고 몇 사람만이 남아 해를 끝까지 배웅한다.


해는 내일은 알 수 없을 아쉬움을 남기며 점점 아래로 사라져 간다. 내일은 어떻게 달라질까, 내일은 어떤 날이 올까, 그리고 그렇게 내일이 모인 미래는 또 어떻게 될까. 찬 바람을 맞으며 한 동안 생각에 빠져든다. 


겨울바다는 여름과 달라서 성찰의 시간을 주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여름바다보다 겨울바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다는 사람들의 한탄이나 아쉬운 이야기들을 듣고 다 품어줄 만큼 넓어서 오늘도 한 해가 넘어가기 전까지 그 소리를 다 듣고 있었다.


이제 바다의 바람이 볼을 날카롭게 스칠 시간이 되었을 즈음에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내 속에 있는 이야기를 들어주고 바다 밑으로 숨겨 준 바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겨울 바다를 찾는다. 그곳에는 물론 뜨거운 사랑이야기, 누군가의 객쩍은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어느 바람이 차가운 날에는 묵묵히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입이 무거운 바다가 있다.



2024년 6월 2일


글, 사진 고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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