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번째 작은 세상
언제인가, 아주 오래전... 왜냐하면 미간을 찌푸려야 할 정도로 생각이 잘 나지는 않으니까 어떤 분이 용산역의 모습을 찍으신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어찌나 멋지게 잘 찍으셨던지, 나도 저렇게만 찍으면 풍경을 찍고 싶다...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의 사진이었다.
용산역이 현재처럼 큰 역이었는지는 뚜렷한 기억이 없다. 나는 주로 경부선인 서울역을 이용했었고, 내 볼 일들도 서울역에 더 가까이에 있었으니까. 그런데 최근에는 몇 번 용산역에서 열차를 탈 일이 있어서 용산역을 이용했다. 용산역이 내가 생각했던 모습이 아닌 것에 놀랐고, 주변에 소소한 볼거리가 있는 것에 또 놀랐다.
사람은 알면 모를까, 모르면 계속 모른 채로 그 자리만 빙빙 돌게 되나 보다.
용산역 근처의 높은 건물들 사이로 작은 집들이 숨어있는 곳을 본다. 용산역의 거대함과 또 그 주변의 건물들의 웅장함에 한껏 기가 눌린 듯 보이지만, 오히려 그렇지 않다. 자신들만의 개성을 잘 살린 채 살아남아 있는 것 같아서 대견스럽기도 하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높은 건물들에 거주하거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서로의 얼굴을 몰라도, 이곳에 거주하시는 분들은 적어도 이웃들의 얼굴은 아시지 않을까. 그것이 바로 작은 담장이 주는 최대의 장점. 인간미이다.
나는 담쟁이가 늘어진 골목에서 모임을 끝내고 나오시는 분들을 보았고, 그들의 정겨움을 느꼈다. 산책을 계속해서 하는 이유는 이렇게 내가 알던 세상과 반대되는 모습도 볼 수 있고, 겪을 수 있으며 그것으로 인해 또 다른 시선과 생각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식을 만들어볼까... 이웃과 자주 만나는 횟수는 내가 살고 있는 건물의 층수에 반비례할 것이다. 그리고 거리와 거리가 좁을수록, 거리가 오래될수록 비례할 것이다. 나는 이런 분위기와 모습들을 사랑한다. 그래서 거리 사진을 찍고 길을 걷는다.
고단한 하루 끝에 떨구는 눈물
난 어디를 향해 가는 걸까
아플 만큼 아팠다 생각했는데
아직도 한참 남은 건가 봐
-어른, Sondia
이제 이 세상에는 없지만 애정했던 배우 이선균과 역시 애정하는 가수 아이유가 열연을 했던 "나의 아저씨"에도 나오는 백빈 건널목을 가본다. 드라마 중에서는 시종일관 심각한 분위기이지만 현재의 모습에 그런 분위기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나는 현재의 모습보다 드라마에 나왔던 그 분위기를 더 좋아한다. 사람은 어른이 되기 위해 몇 개의 건널목을 건너야만 하고, 그럴 때마다 아픔을 겪는다. 그래서 어른이 되면 현실적이 되어버린다.
건널목 앞에는 심각한 표정의 아이유 대신 화사한 차림의 예쁜 여성분과 사진작가분이 사진을 찍고 있다.
나는 사람의 뒷모습만큼 그 사람을 대신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앞의 모습이 아무리 아름답고, 힘이 있고, 해 보여도 뒷모습이 힘이 없으면 그 사람은 힘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아마 현재 우리의 대부분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나는 젊은 이들이 모여있는 술집에서 그 모습을 찾는다.
도시의 밤은 깊어져가고, 사람들은 물속의 물고기들처럼 빛 속을 유영한다. 나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잠시 그 속의 분위기를 맛보다가 내가 가야 할 곳이 있음을 깨닫는다.
그래, 아무리 이곳이 좋아도 용산역은 내게 떠남의 장소이다. 잠깐 동안의 만남의 장소가 될 수도 있지만, 내게는 다시 원자리로 복귀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 곳이다.
아무리 즐겁고 신이나도 혹은 아무리 슬퍼도 우리는 내 자리를 지켜야만 한다.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벗어나지 않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다시 그곳을 금방 찾을 줄 알았는데 또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러야 그곳을 다시 찾을지도 약속할 수가 없게 되었다.
나는 이곳에서 일상이라는 열차를 탄다. 그러면 이 열차는 다시 또 돌고 돌며 나를 "용산"이라는 역의 기억에서 잠시 멀어지게 할 것이다. "역"은 그런 것이다. 그렇게 멀어지도록 하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는 곳, 그래서 사람들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이고 조금은 아쉬워 보이는 곳.
그 곳에서 나는 사람들의 등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