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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응해야만 해

우리가족 스페인여행 1일차

by 스티븐

들어선 나이는 아랑곳 잊고, 여행 바로 전날 친구들과 약속을 감행한 아내가 걱정이었다. 여행준비의 8할도, 사춘기 딸래미의 여행 준비물 투정을 이겨 내는 것도. 대한민국 아줌마로 제2각성한 아내의 몫이 되어 버렸으니. 재봉틀에 두 시간 메달리는 신공으로 하체가 긴 딸래미 여행용 바지까지 만들고, 마무리 한 시간이 밤 10시였으니. 잠은 다 잔 터. 몇 마디 핀잔을 더했지만 이내 새벽 운전은 온전히 내 몫일 터이니 먼저 일찍 자버렸다.


여행 출발일 새벽 5시. 전일부터 정리했던 짐들을 비집어 몇 가지 더 챙겨 넣었다. 지난 제주 여행 때 당했던 여행가방 레버의 추억 때문에 자크 손잡이도 가방 뒤쪽 방향로 옮겨두고.


주차는 영하 10도의 날씨와 기회비용이라는 두터운 핑게로 장기주차를 선택.
(의도한 바는 아니나 나중에 알고 보니 신한 카드 등 일부 제휴카드의 이용 실적이 있는 사람들의 경우 이 발렛 비용이 결제를 해도 무료 처리된다.)
공항에 자가로 이동해 녹색 조끼를 입은 아저씨들께 믿고 맡겼고, 캐리어에 쌓인 우리 가족 여행가방 더미를 므흣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출국층으로 이동한다.


사실 여행의 설레이는 순간 중 하나는 전면을 응시한 채 이 캐리어를 밀고 앞으로 걸을 때 아니던가!



공항엔 다시 사람이 늘었지만, 연말연시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이용하는 항공사 카운터는 한산했다. 티케팅은 모바일 사전 체크인과 발권으로, 짐도 셀프 등록대로 수 분 만에 직접 허리 써가며 밸트에 올리고 나니, 항공사 골드회원의 패스트 감흥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네.


며칠 간의 해외 여행은 패키지를 선호하는 가족성향(?)에 따라, 간단히 아내에게 여행사 안내지 수령을 맡기고, 그 사이 나는 환전과 해외용 에그대여를 수행(가급적 무제한을 추천한다. 가격차 별로 없다.) 수 삼년 만의 여행이지만, 마치 바로 지난 달 경험한 것 처럼 출국 준비 완료. 한산한 출국장 분위기에 더해 라면 끓이는 시간 보다 더 짧은 자동 검색대 출국신고 2분으로 끝.


보딩 게이트 근처에서 아침을 먹고, 별다방 커피를 뽑은 후, 장인어른 선물용 고급 담배와 아내의 색조 화장품을 면세점으로부터 들고 나니 어느새 보딩타임. 그렇게 여행의 출발은 고작 좋아하는 소설책 한 권 서점에서 살 시간도 없었다. 딱 맞춘 타이밍이라고 자위.(이번 여행의 반성 포인트)


비행편에 오르니 사전 체크인 해두었던 세 가족 좁은 이코노미에 붙어 앉았다. 그 와중에 각자의 취향에 맡게 복도는 어깨가 넓은 가장이, 창가는 세상을 더 알아야 하는 딸래미가, 중앙 손받침은 아내에게 분산배치. 이것도 꽤 쌓인 가족여행 공력 아니겠는가.


무려 열 네 시간.


영화 다섯 편. (심각하게 지루한 영화 런닝타임 20여분 보내다 취소한 두 편은 빼고도 말이다.)

식사는 두 번, 마무리로 간단식까지 총 세 번의 기내식. 불고기쌈, 로제 파스타, 매콤해산물 덮밥, 조각 피자까지. 난 도저히 더 이상은 밀어넣기 어려워 두 끼만 먹고 나머진 스킵.


그 많은 양에도 불구, 복도 건너자리 처자는 연신 와인에 맥주 한 캔과 회항의 전설 ‘땅콩’까지 추가로 요구해서 잘도 마신다. 아무래도 술도녀 타입. 그 이상은 무심했다. 난 그 좁디 좁은 이코노미 비행편에서 술을 마시는 건 경멸하는 터라. (헌데 이것도 10시간이 넘는 비행에선 이해해야겠더라. - 이번 여행의 반성 포인트2)


어렵게 한 두 번 눈을 붙이니 흑해 전 아제르바이잔 상공. 딸래미가 스카이뷰 타임랩스로 이채로운 장면을 촬영하고 기분이가 혹은 피곤이 풀린건지 살짝 웃는다.


아빤 너의 미소가 그렇게 좋을 수 가 없다. 너의 미소를 보면 행복해.


어느새 바르셀로나 공항에 도착. 느긋한 국민성(?) 탓인지 반도 안채운 입국심사대 부스. 수 백명 늘어선 인파 탓인지, 한 시간이나 서서 기다린 심사대 대기라인 대비 2분도 채 걸리지 않은 여권 확인으로 끝. 한국의 병원 진료대기 경험과 같은 허무함이랄까. 여유감 충만한 충청도 스타일 이라더니 맞네.


여행사별 팀들이짐을 찾아 공항 입국장을 나오니 삼삼오오 모여있고, 나는 잠시 화장실을 핑게로 딸래미 먹일 생수 하나 사는데 2유로라는 바가지 요금을 감수. 겨우 들고 모인 장소로 돌아오니 내가 어느새 끝물. (패키지 여행은 치지 말라고 패키지란다. 아임 쏘리~)


버스는 깨끗. 새 차량인지 승차감도 굿. 여행 가이드는 애가 넷인 다둥이 아빠라 일 나온게 너무나 좋다나. 무심한듯 올라, 아디오스, 그라시에스 세 가지 생존 스페인어 언급하곤 도둑/안전/날씨이야기만. 어르신 포함 여덟명의 가족팀도 있으니 이런 안내는 당연지사.


첫 숙소는


가성비 타령 굿센 4성급 호텔. 현지 시간 밤 열시 반. 눈이 스르르 감기네. 숙소와 가이드의 읍소?사정으로 첫날밤 방을 두 개로 나누어 주는 바람에 이 글을 쓰는 새벽 아내와 딸은 세 칸 건너 객실에서, 나는 이 볼 때마다 적응 안되는 유럽식 비데가 있는 다른 객실에서. 분명 서 너 시간 후 깨어 말똥일 테지만.


이렇게 한국의 다섯 배 넓은 땅 덩어리에, 인구는 비슷하며, 이슬람에 카톨릭과 유대와 개신교가 뒤섞여 사는 나라이자, 시에스타로 발현된 여흥을 밤에 흥청이며 놀기를 좋아해 이 새벽에도 호텔 복도가 떠나갈 듯 큰 소리로 난리치며 방으로 들어가는 녀석들이 창궐한! 가성비 좋은 호텔에서 첫날 일기 끝.


올라~ 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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