콤마 상태는 오무五無의 특징을 가진다.
첫째, 무감각이다. 사람이란 존재는 오감이라는 감각기관을 통하여 외부의 자극을 인식하고 수용한다. 시각을 통하여 보고, 청각을 통해 듣고, 후각을 통해 냄새를 맡고, 미각을 통해 맛보고, 촉각을 통해 느낀다. 그런데 이런 오감에 문제가 생긴다면, 외부의 어떤 자극도 경험할 수 없다. 콤마 상태는 신체적 감각은 기능하지만, 마음의 감각을 잃어버린 상태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시력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시력을 가지고도 비전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다.”라는 헬렌 켈러의 말처럼, 진정으로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시력과 청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니다. 1.2의 시력을 가지고 있지만, 볼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은 것이다.
10명의 친구들이 모여 있는 상황에서 돈이 있는 2명의 학생만 피자를 시켜서 먹는다. 그 학생들에게 피자는 보이지만, 피자를 먹지 못하고 있는 나머지 학생들은 보이지 않는다. 집단상담에서 한 학생이 너무 힘들어서 자살하고 싶다고 얘기를 하는데, 나머지 학생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계속 장난만 친다. 그 학생들에게는 음파의 진동이 고막에 전달될 뿐, 친구의 고백이 마음으로는 전혀 들리지 않는 무감각한 상태인 것이다.
둘째, 무관심이다. 관심은 ‘어떤 것에 마음이 끌려 주의를 기울이는 상태’를 말한다. 콤마 상태에서는 관심의 범위가 매우 좁고 얕다. 자신의 내면과 외부세계에 대해서 진지한 관심을 갖지 않는다. 관심이 있을 때 관찰하게 되고, 관찰할 때, 질문도 생기고 발견도 일어나는데, 관심이 없기 때문에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오로지 자기 자신의 좁은 세계 안에 갇혀 있을 뿐이다.
셋째, 무목적이다. 우리의 삶은 목적이 있을 때, 의미를 갖는다. 아무런 목적이 없다면, 그 무엇을 한다 해도 공허할 뿐이다. 초중고 12년 동안, 그 순간순간을 아무런 목적과 의미 없이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를 반복한다. '높은 성적', '좋은 대학'이란 목적도 자기 목적이 아니다. 외부에서 정하여준 목적을 아무런 생각 없이 받아들인 것뿐이다. 그런 목적들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되는지를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는다. 매일의 생활에서 실제적인 의미와 역동을 만들어주지 못하는 목적이라면 그것은 목적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여기’에 대한 분명한 실존적 목적이 없다. 그냥 거기 있을 뿐이다. 많은 것을 바쁘게 하는 것 같지만, 그 모든 것들이 하나로 연결되지 않는다. 의미 없는 행동의 반복일 뿐이다.
넷째, 무반응이다. 우리의 삶은 무수한 자극과 반응의 연속이다. 나의 반응은 외부를 향한 자극이 되고, 그 자극은 외부의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그 반응은 또다시 나를 향한 자극이 되어 돌아온다. 이렇게 나와 세계는 끊임없는 자극과 반응 속에서 살아간다. 그런데 내가 반응하지 않으면, 나와 세계는 단절된다. 그러면, 그 시간 그곳에서 ‘살아 있다’가 아닌, 그냥 거기 ‘있다’의 상태로 전락하는 것이다. 생명 없는 돌덩이처럼.
다섯째, 무기력이다. 수업시간에 아이들의 멍한 눈빛과 표정은 보신탕 가게 있는 멍멍이를 연상시킨다. 특별히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다. 그렇게 하고 싶은 것도 가 보고 싶은 곳도 없다. 심지어, 먹고 싶은 것도 분명하지 않아서 그의 선택 메뉴는 늘 ‘아무거나’이다. 스스로 삶의 기준을 정하고, 그 기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정해 놓은 기준을 따라 끌려갈 뿐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무언가를 꿈꾸고 실천해 나갈 아무런 힘도 남아 있지 않다.
5 무의 상태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에 비유해 보자. 콤마 상태의 사람은 자기 앞에 맛있는 냄새가 나는 음식이 와도 그 냄새를 맡지 못한다.(무감각). 그래서 그 음식에 마음이 끌리지 않는다.(무관심) 그러니 먹겠다는 선택과 결정도 없다.(무목적) 손을 뻗어 먹으려고 하지 않는다.(무반응) 먹은 것이 없으니, 아무런 활력이 없다.(무기력)
그런데 신기하게도 콤마 상태의 다섯 가지 특징이 다른 상황에서는 정반대로 바뀌게 된다. 예를 들어 게임, 웹툰, 아이돌 가수에 대해서는 감각이 아주 민감한 상태가 된다. 아주 강렬하게 느낀다. 그리고 도를 지나친듯한 광적인 관심을 보인다. 그것을 인생의 유일한 낙이라며, 더 많이 하기 위해 추구하고 반응한다. 그리고 그것을 할 때는 엄청나게 활력 있게 된다.
이것이 ‘오무의 역전’이다. 해야 할 것은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는 상태가 된다. 남학생들이 ‘야동’에 빠지는 것이나 여학생들이 ‘아이돌’에 열광하는 것은 똑같은 이치이다. 야동이 남학생들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켜서 만족감을 주는 것이라면, 아이돌도 여학생들의 욕구 충족을 위해 소비하는 대상에 불과하다. 야동이 남학생의 생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처럼, 아이돌도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사랑하지 말아야 할 대상과 사랑에 빠져 버린 것이다. 정작 사랑해야 할 대상은 사랑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만약 십대 청소년들이 인문고전이나 소크라테스와 사랑에 빠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사랑하는 사람을 닮게 되어 있다. 자신의 인생을 걸고 지혜를 추구하며 열망했던 사람들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면, 그도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스티븐 잡스가 소크라테스와의 만남에 애플의 모든 자산을 바칠 수 있다고 했던 열정이 십대 청소년들의 가슴에도 타오르게 되는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을 몇 개의 유형으로 구분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여러 가지 한계가 있는 접근방식이다. 그러나 MBTI나 에니어그램 등의 성격유형 검사들은 사람을 이해하는 효과적인 측면이 있어, 유용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콤마상태의 유형을 구분함으로써 그 이해를 높이고자 한다. 또 하나의 이유는 콤마 상태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해서이다. 도저히 콤마 상태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까지도 콤마 상태라는 사실에 놀라게 될 것이다. 콤마 상태는 4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콤마 상태의 유형에서 정신지체의 장애를 가진 친구들은 제외하였다. 이들의 삶을 생존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이들은 일반 정상인에 비해 낮은 지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계발 가능한 능력이 아니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의 사고 수준 안에서 삶을 가꾸어 가고 있다. 일반인들이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일반인과 다른 그들만의 삶의 영역이 있는 것이다.
첫 번째 유형은 ‘비행이’이다. 수업시간 중에 선생님께 욕하는 학생, 교실 창문을 돌을 던져서 깨뜨리는 학생, 심지어 교실에 불을 지르는 학생까지 의학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이런 행동이 가능한 이유는 콤마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행이 유형은 자기 스스로도 그렇고 누가 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들은 다른 유형에 비하여 회복의 필요성을 더 직접적으로 느낀다.
태권도가 인생의 전부였던 체육 특기자 학생을 만났다. 한 번의 범죄로 인하여 더 이상 태권도를 할 수 없게 된 날부터, 그 아이에게는 학교도 미래도 그 어떤 것도 의미가 없었다. 그런데, 수업 중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꺼내어 놓았다.
. “어려운 이야기인데 어떻게 선생님께 말할 수 있었지?”라고 물으니,
“그냥, 말하고 싶었어요”라고 대답했다.
이러한 눈 빛, 이러한 목소리는 정말 나의 가슴을 울리게 한다. 마치 코마 상태의 환자를 지켜보고 있는 가족들의 심정처럼, 이 아이들의 재활을 꿈꾸게 된다. 이 아이들이 정상적인 의식 수준을 갖추었다면, 결코 그러한 비행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두 번째 유형은 ‘산만이’이다. 각 교실에는 그 반의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학생이 있다. 25명으로 이루어진 중학교 1학년 교실에 3명의 여학생이 분위기를 장악하고 있었다. 남학생들은 찍소리도 내지 못했고, 수업의 방향도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자기들끼리 장난치며 아주 즐거워했고, 친한 선생님들을 만들어 대화도 잘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활력이 넘치는 학생들이었지만, 이들의 방향은 정확히 반대쪽이었다.
세 번째 유형은 ‘얌전이’이다. 얌전이들은 수업시간에 자신의 존재감을 거의 드러내지 않으며 조용히 딴짓을 한다. 수업시간에 이루어지는 활동들이 별로 의미가 없고, 어떤 기대도 없다. 혼자서 계속 그림만 그리거나 책만 보고 있다. 수업시간 중 이렇게 하고 있는 한 학생에게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냐?”라고 물으니, “아무도 없는 곳에서 살고 싶다”라고 했다. 14살의 나이에 사람이 불편하고 싫어진 것이다.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와 개인들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고, 어떤 반응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네 번째 유형은 ‘모범이’이다. 모범이는 콤마 상태 환자 중에서 가장 진단이 어려운 상태이다. 학교생활을 하며, 모범상을 받는 학생들의 실제 모습은 ‘타의 모범이 되며’라는 상장의 문구와는 많은 거리가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성적이 높거나 반장과 같은 지위를 가진 이유로 상을 받았다. 우리 사회가 어려움을 가장 많이 겪는 경우는 다른 유형보다도 ‘모범이’ 때문이다. 그들의 교과 성적은 최상위권이고, 친구들 간의 관계에서 리더십이 있으며, 자신감이 넘치고 매사에 적극적으로 보인다. 그래서 명문학교로 진학하고, 학교의 이름을 드높이는 훌륭한 학생처럼 보인다. 이런 유형의 콤마 환자들은 아무런 교육적 필터링을 받지 않고 고속도로의 하이패스를 통과하듯 졸업하지만, 결국 이들은 돌이킬 수 없는 사회지도층의 범죄로 끝을 맺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과학고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2박 3일간 ‘인성 리더십’ 캠프를 할 때였다. 과학고는 중학교에서 전교 석차가 최상위권이 학생들만 진학할 수 있는 특목고이다. 특목고는 특수한 목적을 가진 고등학교이다. 그 학교의 특수한 목적은 ‘과학영재를 양성하여 인류에 봉사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참가 학생들 중에서 이 목적을 알고 있는 학생은 없었고, 어떤 관심도 없었다. ‘인성 리더십’에 대한 강의 내용에 대해서도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이 아이들의 관심은 과학영재로서 갖추어야 할 ‘인성 리더십’이 아니라 둘째 날 저녁에 편성된 장기자랑 시간에 있었다. 쉬는 시간마다 와서 ‘춤 연습’을 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드디어 둘째 날 저녁, 그토록 무기력하던 학생들은 열광적인 모습으로 화려하게 변신하였다. 그 진지한 표정과 초롱초롱한 눈빛, 그리고 너무도 밝은 웃음까지... 그들은 수업시간과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학생들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캠프의 마지막 밤을 주최 측에서 준비한 피자를 먹으며 자기들끼리 클럽 분위기를 낸다며, 춤을 추고 광란의 밤을 보내었다. 대부분의 관련 교사들은 술도 안 마시면서 너무도 잘 논다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몹시도 씁쓸했다. 사실 처음부터, ‘인성 리더십’이라는 주제는 그 누구에게도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신입생들 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본격적인 입시공부에 앞서 간단하게 워밍업 하는 정도였다. 그 누구도 신입생들에게 ‘인류에의 봉사’라는 정신의 불꽃을 점화시켜주려 하는 절박함이 보이지 않았다. 캠프를 마치는 마지막 시간에 학생들에게 솔직한 심정을 이야기했다.
“여러분들이 춤판에 열광할 수 있다면, ‘인성 리더십’이라는 주제 그 자체에 대해서도 열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합니다. 여러분들이 진정으로 과학영재가 되어 우리나라를 넘어 인류에 까지 봉사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입학한 것이 맞다면, 어떤 리더십을 갖춘 사람이 될 것이냐는 교육의 과정에 여러분들은 열광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열광하지 않는 것은 학교 본래의 건학 목적과 여러분의 입학 목적이 전혀 일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오로지 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발판으로 이 학교에 입학했을 뿐입니다. 여러분들의 가슴에 있는 이 나라의 미래에 대한 소망과 염려가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더 가슴 아프게 하는 사실은 그 어느 누구도 이것을 문제 삼지 않는다는 현실입니다.” 분위기는 무겁다 못해 숙연해졌지만, 몇몇 학생들은 내게 찾아와 고마움을 표시해주었고, 소감문에는 2박 3일의 시간 가운데 마지막 그 짧은 메시지가 자신에게 가장 임팩트 있게 와 닿았다고 말해주었다.
교육부 고위 관계자가 국민들을 보고 ‘개, 돼지’라는 발언을 하여 사회적으로 큰 무리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 나 역시도 수업시간에 학생들을 향해 ‘짐승’이라는 표현을 애칭처럼 자주 사용한다. 아이들은 그 표현이 재미있었던지, 내가 복도에 나타나면, “야 짐승 선생님 오셨다”며, 다른 학생들에게 알렸다. 그리고 내 주위로 몰려와서는 “짐승이야~”라며 나의 표현을 흉내 내며 즐거워했다.
그날도 학생들에게 “너희들은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라고 착각하면 큰일 난다.” 그랬더니 한 학생이 옆에 있는 학생에게 말했다.
“짐승이란 게 무슨 말이야?”
“개라고...”,
“뭐~? 개라고? 너무해”
나 역시도 그 교육부 관계자처럼 지탄의 대상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건 우리 학생들에게 누군가는 자신들의 삶이 개, 돼지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눈물을 흘리며, 가슴을 치며, 애타는 심정으로 호소하듯 말이다.
돼지는 자기 배만 부르면 그만이다. ‘인류’에 대해서 전혀 고민하지 않는다. ‘인류’에 관심을 갖고, 인류에 봉사하고자 하는 열망이 타오르며, 그것이 학습동기가 되어 열심히 실력을 닦아 실천하는 것은 오로지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우리 십대들이 이러한 ‘가슴’을 잃어버린 채, 오로지 자기 잘 먹고 잘 살 것만 생각하여 공부하는 것은 짐승으로 전락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래서 자유에 대한 불후의 고전 《자유론》을 집필한 존 스튜어트 밀 John Stuart Mill 은 배 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인간이, 만족한 바보보다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더 낫다고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