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주부의 살림살이
창밖에 어스름이 몰려왔다. 다 씻고 잘 준비까지 마쳤는데 갑자기 오늘 완료하지 못한 일이 그제야 떠올랐다. 주섬주섬 다시 옷을 주워 입고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현관에 섰다. 신랑이 물었다.
“또 10원 모으러 나가?”
“응. 금방 다녀올게, 그리고 10원 아니고 20원이야!”
하루가 다 지나가기 전에 만 보를 채워야 포인트가 쌓인다. 또 아직 방문하지 못한 특정 장소를 찍고 와야 10원씩 적립이 된다. 캐시워크, 지니어트, 토스 만보기, 워크온, 각종 앱의 출석 체크 등 해야 할 앱테크들을 목록으로 정리해 관리하고 있다.
짠테크를 시작한 지 벌써 3년 차다. 짠테크는 강도 높은 절약 중심적인 소비 활동을 의미하는 ‘짜다’의 줄임말인 ‘짠’이라는 단어와 재정 관리 및 활용 기술을 의미하는 ‘재테크’를 합쳐 만든 경제 관련 신조어이다. 짠테크는 신용카드 풍차 돌리기, 냉장고 파먹기, 생활비 달력 쓰기, 대형 마트 안 가기 등 생각보다 종류가 다양한데 그중 스마트폰으로 돈을 버는 앱테크가 있다. ‘애플리케이션’과 ‘재테크’의 합성어인 앱테크는 디지털 환경에서 성실하게 이벤트 등에 참여한 후 포인트나 쿠폰을 챙겨 생활비를 번다는 뜻에서 ‘디지털 폐지 줍기’라고도 불린다.
기절할 만큼 장바구니 가격이 오른 고물가 시대에, 각종 앱에서 주던 포인트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전에는 10원씩 주던 것이 1원으로 줄고, 100원 주던 것이 50원, 광고가 없던 것에는 광고가 추가되기도 하고 갑자기 없던 아이템이 생겨서 이 아이템을 다 모아야 포인트로 바꿔주거나 추첨해서 보상하는 등 업체에서도 갖은 꾀를 쓰고 있다. 그래도 하던 거라 치사하다고 투덜거리면서 어쩔 수 없이 버튼을 누른다.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못 하고 있지만 휴직하는 동안에는 각종 챌린지에도 참여하여 매일 인증사진을 찍어 SNS에 올려서 포인트나 쿠폰을 받기도 했다. 매일 운동이나 먹은 식단을 인증하여 한 달 동안 해당 앱을 홍보하며 글을 게시하면 포인트를 준다. 이렇게 쌓인 포인트는 바로 현금으로 쓸 수 있는 것도 있지만 팔고 있는 상품만 살 수 있는 것도 있다. 이럴 경우에는 가장 무난한 커피 쿠폰을 사서 온라인 장터에서 팔아 현금화하곤 했다.
휴직 기간 동안 소득이 반으로 줄었다. 외벌이로 살아야 하는 만큼 아껴야 했다. 더군다나 월급의 반이 집을 사느라 빚진 주택담보대출금과 신용대출금을 갚아야 했기에 주부로서 특단의 조치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하루 1달러로 먹고살기』란 책에서 착안하여, 한 달 30만 원으로 4인 가족 살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모든 카드는 해지하고 코스트코를 이용하기 위한 현대카드만 남겨 소비 창구를 단일화했다. 외식은 최대한 줄이고 핸드폰도 모두 알뜰폰으로 바꿨다. 옷을 사거나 머리 하는데 쓸 돈 따윈 없었다. 그러나 아이들 책을 사거나 주말이나 방학 때 여행 다니는 데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공무원 1인 월급의 반으로 그것도 대출금을 갚아가며 휴직하는 1년을 어떻게 살았는지 가히 기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만의 비법을 몇 가지 공개하자면 먼저 치킨을 시켜 먹고 싶은 것 같은 참을 수 없는 소비 욕구가 올라올 때마다 그 돈의 액수만큼 자유적금 통장에 그 소비 명목으로 이체를 시키며 위안 삼았다. 이 통장에 있는 돈을 저 통장에 옮기는 단순한 행위였지만 지금 당장 뭔가에 돈을 쓴다는 점에서 대리만족을 할 수 있었다.
혼자 집에 있는 동안 다른데 돈 쓰는 욕구는 다 참아도 커피 한잔 사 먹고 싶은 욕구는 정말로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생각한 게 커피는 무조건 쿠폰으로만 사 먹겠다는 나만의 원칙을 세웠다. 그런데 막상 쿠폰이 생기면 현금화해서 저축해 버리곤 했는데 이렇게 1년간 모은 돈이 앱테크로만 자그마치 30만 원이다. 블로그에 후기를 정성스럽게 남겨서 업체로부터 5만 원 상당의 네이버페이를 받기도 했다. 사실 재테크라고 하기엔 너무 적은 돈이지만 아껴서 생활하느라 팍팍한 삶을 버티게 해 준 소소한 재미를 추구하는 나만의 ‘위로’ 같은 거였다.
시어머니도 재테크를 열심히 하시는데 하루 종일 자리에 앉아서 핸드폰을 누르시며 포인트를 쌓아 아들, 며느리, 손자들 생일 때마다 케이크 사라고 오천 원짜리 파리바게뜨 쿠폰을 5~6장씩 보내주신다. 내로남불의 끝판왕인 내가 핸드폰을 오래 보느라 건강을 잃으면 소탐대실 아니냐고 잔소리를 한가득하고 나면 어머니는 본인 취미생활이니 관여하지 말라고 응수하신다. 그 며느리에 그 어머니이시다.
그래도 나는 어머니와는 달리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화장실에 들어갈 때만 핸드폰을 들고 가 앱테크를 한다. 중국의 문장가 구양수는 마상, 침상, 측상에서 책을 읽었다고 한다. 말 위에서, 잠자리에서 그리고 화장실에서의 시간을 쪼개 쓴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화장실에 책을 들고 들어가다가 앱테크를 시작하고서는 핸드폰을 들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나마 시간이 아까워서 광고를 봐야 하는 앱테크는 웬만하면 하지 않는다.
오늘도 짠테크로 하루를 시작한다. 벌써 토스 앱으로 2,715원이나 모았다. 누구는 이런 푼돈을 모아서 언제 부자가 되느냐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것을 ‘돈의 씨앗’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쓰일 투자금의 마중물이다. 오늘도 나는 디지털 폐지를 주우며 미국 주식을 언제 또 한주 사야 하나 들여다본다. 50대 은퇴하는 젊은 부자가 되는 내일을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