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콩작가 Oct 14. 2024

통발과 며느리

내 인생의 작은 통발

  제주도 어느 선착장에서 홀로 통발을 던지는 며느리가 있었다. 먹을 수 있는 고기는 한 마리도 못 잡은 날이 벌써 3일이나 지났다. 쓸데없이 부피만 차지하는 통발을 괜히 가져온 것은 아닌지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사건의 발단은 3대가 제주도 2주 살기를 결정한 때부터였다.


  시부모님, 천방지축 두 아들의 요구에 맞춰 계획을 짜기가 쉽지 않았다. 숙소 위치를 정하는 것부터 남편은 골머리를 앓았다. 시아버지를 위해서는 집 근처 조용히 산책할 곳이 있어야 했다. 아이들은 수시로 드나들 수 있는 해수욕장 인근을 원했다. 집은 너무 좁아서도 안 되고 생활공간이 어느 정도 분리되어 있어야 했으며 오래 머물기 위해서는 마트도 가까운 곳에 있어야 했다. 남편은 어느새 보지 않고 제주도 지도도 척척 그려 주요 관광지를 표시하는 관광 가이드의 경지에 이르렀다.


  남편이 고군분투하는 동안 나는 사부작사부작 인터넷으로 필요한 물품들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바닷속을 들여다볼 스노클링 마스크, 땅 파고 놀기에 최적화된 모래놀이 세트, 시어머니와 해변에서 예쁘게 꾸밀 붙이는 손톱, 바닷물 위에서 타고 노는 악어 튜브, 바다 통발, 미끼통, 밧줄……. 다른 물품들도 조금 과하지만 제주도 놀러 가는 데 웬 통발이냐며 남편은 난색을 보였다. 하지만 어느 책에서인가 바다에서 던지는 통발은 남자들의 로망이라고 쓰여있었다. 시아버지의 로망을 이루어 드리기 위한 스페셜 이벤트를 포기할 수 없어 소신 있게 주문 버튼을 눌렀다.


  제주도에 도착하자마자 시부모님의 칭찬을 잔뜩 기대하고 꺼낸 통발에 시아버지의 반응이 영 신통치 않았다.


  “그걸로 문어라도 잡겠다는 거야?”


  “아… 이게 남자들의 로망이라고 그랬는데, 바다에 가면 통발을 던져야죠!”


  통발이 윤 씨 남자들의 로망은 아니었다. 그저 며느리의 욕망이었을 뿐. 서프라이즈 이벤트는 찬밥 신세를 못 면하고 관심 밖으로 밀려나 버렸다. 다음날 혼자서 통발을 만지작거리는 며느리가 안쓰러웠는지 시어머니가 생선구이 할 때 손질하고 버리려던 고등어 머리를 주시며 뭐라도 잡아 오라고 하셨다.


  둘째 날 저녁. 낮에는 부끄러워 도저히 던질 수 없어서 위치만 보아둔 곳으로 가서 통발을 던져두었다. 다음 날 새벽 부푼 마음을 안고 힘차게 건져 올렸으나 밤새 물이 빠진 곳에서 덜렁거리고 있었던 것인지 통발은 힘없이 딸려 올라왔다. 다시 통발 던지는 포인트를 찾기 위한 인터넷 검색이 시작되었다. 아까운 미끼를 날리고 다음날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숙소 근처에 잘 이용하지 않는 작은 선착장을 찾아 통발을 힘껏 던져 넣고 난간 기둥에 단단히 밧줄을 매어두었다. 이번엔 왠지 자신감이 넘쳤다. 다음날. 자는 아이들을 깨워 엄마가 고기를 잡아주겠다고 호언장담하며 당당하게 4인 가족이 행진을 시작했다.


  새벽녘의 제주 바다는 고요함 그 자체였다. 바람마저도 살랑거리는 예쁜 제주도. 만선의 꿈을 담아 고기잡이 노래를 부르는 나에게 남편은 책임도 못 질 말을 하냐며 구시렁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들은 신이 나 밤새 던져둔 통발을 건져 올리기 시작했다. 넘실거리는 파도를 뚫고 올라온 통발 속에는 제주도에서 많이 잡힌다는 독이 있는 메깃과 물고기 쏠종개 한 마리, 작은 게 두 마리가 들어있었다. 아이들은 작은 생물에 탄성을 지르며 신나 했다. 내가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니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남편도 뭐가 잡히긴 잡힌다며 신기해했다.


  셋째 날 수확도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침부터 일찍 호떡을 파시는 아저씨가 뭐가 잡히냐면서 웃음을 지어 보이셨다. 잡은 물고기는 관찰만 하고 바로 놔주었다. 그리고 또 내일을 위해 통발을 던져 넣었다.


  넷째 날. 숙소 이동 전 마지막 날 시어머니에게도 통발의 손맛을 느끼게 해드리고 싶었다. 사실 시아버지께 먼저 말씀드렸지만 단박에 거절당했다. 새벽엔 피곤해서 안 나가신다며 그냥 웃으셨다. 시아버지의 로망은 확실히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난 셈이다. 그나마 호기심 많으신 시어머니는 설득 끝에 ‘기왕 제주도까지 왔으니 한번 건져보지 뭐’라며 승낙하셨다.


  새벽 댓바람부터 삼대가 슬리퍼를 끌면서 선착장으로 향했다. 기념 영상이라도 남기려고 나는 촬영 버튼을 누르고 남편은 밧줄을 당기는 할머니를 응원하도록 아이들을 부추겼다. 비릿한 바다 냄새가 흥겹게 넘실거렸다.


  “뭐가 좀 무거운데?”


  “돌이 들어갔나? 미역에 걸린 거 아니에요?”


  줄은 천천히 그리고 계속 올라왔다. 그 순간 갑자기 통발을 중심으로 하여 양쪽으로 물이 갈라지면서 쏟아져 내렸다. 드디어 놈이 모습을 드러냈다. 문어! 통발 안에서 빨판을 쫙 펼치고 흐물거리는 것이 영락없는 문어였다. 세상에 진짜로 문어가 들어있을 줄이야. ‘흐흐흐~ 흐흐흐’ 웃음이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나왔다. 사흘 내내 통발을 던질 때는 아무 말도 안 하다가 우리가 문어를 잡자 여기서 통발을 던지면 안 된다는 호떡 아저씨에게 알겠다고 꾸벅 인사를 하면서도 우리의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문어숙회는 시아버지의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였다. 살아 있는 문어를 어찌 삶아야 하는지 또 한바탕 난리법석을 떤 후에야 한 점씩 맛볼 수 있었다. 그제야 시아버지 본인도 통발 던지는데 한 번 가볼걸 그랬다며 껄껄 웃으셨다.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선사한 우리 며느리가 아주 장하다며 칭찬 일색이었다.


  이따금 밤새 던져둔 통발 속에 무엇이 잡혔을지 궁금해하며 밧줄을 끌어올리던 설렘이 생각이 난다. 살면서 소소한 기쁨을 위해 작은 통발을 준비하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매년 새해 초에 여행 티켓을 미리 사둬서 항상 품고 다닌다거나, 매주 로또 한 장씩 사서 책상에 붙여놓기, 식용 작물 키워서 맛보기, 언젠가의 변신을 위해 매일 향하는 헬스장. 내일은 내 통발에 어떤 깜짝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지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이전 07화 뜀, 마이웨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