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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작가 Oct 07. 2024

뜀, 마이웨이

뛰어야 중년이다

  ‘탁탁 탁탁’


  ‘하나... 둘... 셋... 넷...’


  달리기를 시작한 초반 5분까지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멀쩡하던 무릎도 욱신거리고, 고관절 통증에, 발목도 시큰거린다. 이럴 땐 속으로 숫자를 천천히 센다. 100까지 세면 다시 처음부터다. 앞뒤로 힘차게 흔드는 팔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새벽공기가 차게 느껴지는 건 아직 덜 뛰었단 뜻이다. 얇은 바람막이라도 가져올걸. 너무 오랜만에 뛰어서 준비성이 영 제로다.  


  달리기는 돈이 많이 들지 않는 운동이라고 시작했으나 어느새 나의 달리기 용품은 넘쳐난다. 핸드폰을 고정할 러닝용 허리 밴드, 블루투스 이어폰, 페이스 체크용 스마트워치, 잘 마르는 재질의 챙모자, 땀 흡수가 잘 되는 가벼운 반소매 티셔츠, 추울 때 입고, 더우면 벗어서 허리에 가볍게 묶을 수 있는 바람막이, 사계절 입고 뛸 수 있는 레깅스, 발목까지 올라오는 스포츠 양말, 제일 중요한 적당한 쿠션의 운동화까지. 그나마 이게 장비 탓을 가장 덜 할 수 있는 운동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착착 착착’


  속도에 좀 더 탄력을 받는다. 손목 스마트워치로 페이스를 확인한다. 최고 페이스로 뛰기 시작한다. 내가 주로 뛰는 곳은 집 근처 반석 천이다. 집에서부터 뛰어서 10여 분 걸리는 곳인데 그곳에 도착할 즈음엔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던 심장도, 호흡도 차분해진다. 반석 천으로 진입하면서 처음 뛸 때의 2배나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한다. 한참 달리기 연습을 열심히 할 때의 10km를 50분대로 뛰어 들어오던 속력이다. 초록 내음이 물씬 나면서 나를 반겨준다. 바쁘게 사느라 정신없었던 나와는 상관없이 모든 것은 그대로 있었다. 비릿한 물 내음도. 서른 후반에 시작한 초보러너가 어느새 마흔이 되어서 달리고 있다. 이제 진짜 달리기 시작이다.


  걸으면 왠지 심심한 길이지만 달리면 빠르게 바뀌는 주변 환경에 딴생각할 겨를이 없다. 태양이 떠오르기 직전의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가르며 앞으로 나아간다. 나에게 집중하던 생각은 바람의 저항을 온몸으로 받으며 힘차게 내디딘 발과 박자를 맞추어 숫자로 바뀐다. 그리고 어느 순간 주변의 나무며 꽃이며 풀들에 정신이 팔린다. 큰 금계국, 달맞이꽃, 붉은토끼풀, 가끔 삐쭉 솟은 양귀비들이 시선을 훔쳐 간다. 간혹 가다 동물 친구들도 만나는데 고라니를 보는 날은 큰 횡재를 하는 날이다. 수달, 왜가리, 너구리, 두꺼비, 길을 가로지르는 뱀, 심지어 두더지를 본 적도 있다. 그럴 땐 재빠르게 핸드폰 카메라 셔터를 눌러야 한다. 집에 가서 아들들에게 자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찍을 게 없는 날엔 마지못해 길에 깔려 죽은 개구리라도 찍는다. 아이들 눈에는 죽은 동물도 신기할 따름이다.


  하루에 보통 3~40분 정도 뛰면 약 5킬로미터를 뛰게 되는데 반환점에서는 반석 천을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를 건너 반대편 길로 왔던 길을 되돌아온다. 이때가 반석 천에 가장 근접하는 순간인데 손가락만 한 물고기들이 너도나도 벌레를 잡겠다고 물 위로 튀어 오르는 명장면을 볼 수 있다. 파리 낚싯대를 던져 넣으면 갈겨니들이 줄줄이 매달려 나올 것만 같다. 장마철 상습 침수 지역이라 언젠가 개천이 범람을 하면 물 밖으로 나왔다가 물이 빠지면서 다시 개천으로 돌아가지 못한 물고기들 구조 작업을 하러 와볼지 잠시 생각한다.


  돌아오는 길은 페이스가 점점 떨어진다. 이제 본격적으로 예쁜 꽃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잠깐 멈춰 서서 ‘찰칵’ 핸드폰 셔터를 누른다. 조금 달리다 또 멈춘다. 벼가 너무 귀엽게 자라고 있다. 또 한 컷. 몇 번 반복하다가 결국 아예 대놓고 걷기 시작한다. 여유롭게 여기저기 둘러보며 초여름의 계절을 만끽한다. 멀리 있는 왜가리를 찍으려 줌도 당겨보고 빠알갛게 익은 앵두도 사진첩에 담고, 노오란 금계국, 알록달록한 코스모스가 벌써 피었나 눈도 비벼본다. 하얗고 길쭉한 밤꽃도 대체 어떻게 찍어야 잘 찍는 건지 갸우뚱거리며 연신 셔터를 누른다. 페이스는 진즉에 포기한 지 오래다. 한창때는 빨리 뛰는 게 목표여서 어떻게 해서든지 속도를 올리려고 쥐어짜듯 억지로 다 뛰곤 했는데 이젠 설렁설렁 걸으며 집까지 걸어간다.


  주로 속 시끄러운 일이 있으면 뛴다. 올해 들어 세 번째 러닝이다. 꽤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뛰고 나면 놀랍게도 잡념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무슨 걱정을 했는지 잊을 정도로. 뛰는 지금, 이 순간이 내 생애 가장 빨리 달리는 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한 발 한 발 내디딘다. 한동안 달리기를 잊고 살았다. 집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전속력으로 달린다. 이미 지난 골치 아픈 일도 잊고, 쓸수록 닳아빠질 무릎 관절에 대한 걱정 따위도 접어두고 지금 당장 달리기에 집중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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