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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한송이 Jul 28. 2023

탈출 실패

21화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었다. 늘 내 뒤에는 무시무시한 무언가가 날 따라다녔고, 어떻게든 그로부터 벗어나고자 열심히 달렸다.

숨이 가빠올 때면 한 번씩 호흡을 고르곤 했는데 그때를 놓치지 않고 바짝 쫓아온 형체에 놀라 눈물을 흘리기도, 심장이 멎을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다시 일어나서 달렸다. 그냥 먹혔어도 되는데, 살겠다고 발버둥 치는 건지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그래서 어둠에 뒤덮이면, 눈을 떴다.

일상 탈출을 꿈꾸는 나는 꿈에서도 버겁게 버텨내야만 했다.


왜 나는 좀 행복할 만하면 힘들어지는 걸까.

전생에 지은 죄가 많았나.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듯, 이번 생에도 죄를 많이 짓고 있는 거 같긴 해.

날 필요로 하지 않는 이들에게 잘 보이려 애쓰고,

날 필수로 생각하는 친구의 연락을 무시하고.


“내가 못나서 그래.”


김이한은 목을 뒤로 팍 꺾어 하늘을 마주했다.

이유를 안다.

울음을 참는 중이다.


“정혜림 왔어. 너 찾으려고 뭔 짓을 한 모양이야. 얼른 가자.”


“혜림이가 여길 왜 와? “


어지럽겠다 싶을 정도로 과격하게 고개를 든 김이한의 눈은 토끼보다 크고 맑고 빨갰다.


“나 못 본 걸로 해줘.”


“뭐?”


“혜림이는 날 데려가려고 안간힘을 쓸 거야. 미안하지만 난 여기가 좋아. “


부리나케 일어서 자리를 벗어나는 친구의 뒷모습이 어째선지 아팠다.


“김이한!”


도망, 혹은 탈출은 실패했다.

정혜림이 멀리서 잔뜩 화가 난 모습으로 우리에게, 아니, 남자친구에게 뛰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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