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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한송이 Aug 11. 2023

하늘 아래 조우

23화

이한은 자신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현실이 마치 목숨을 간신히 연명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고된 하루를 보내고 집에 가는 길, 음주 차량에 치여 혼수상태가 되었을 때 되려 안심했다.

당분간은 아무것도 안 해도 되겠구나.

한동안은 그냥 누워만 있으면 되겠구나.

복귀하면, 병실에서 눈을 뜨면, 뻔히 그려지는 내일을 속수무책으로 맞이해야 하니까, 내려가고 싶지 않았다.


"날 찾는 사람들이 많은 게 괴롭더라."


여자친구인 혜림, 자신만 보고 사는 가족들, 오랜 친구들.

책임이 짐으로 변질되면서 스스로가 한심하기만 했다.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다.

그래서 송이를 찾았다.

숨 좀 쉬고 싶어서.


"그중에 네가 없었던 게 문제지."


하지만 이젠 이해한다.

쌍둥이처럼 붙어 지낸 세월이 길어선지, 마찬가지로 친구 역시 힘든 시기를 보냈던 거니까.

이한은 눈물로 세수한 낯짝을 활짝 열었다.

잃어버렸던 미소를 찾았다.


"내려가자. 그땐 항상 대기할게."


"혜림이 때문에도 있었지? 연락 끊은 거."


아니라고는 못하겠다.

남자친구 찾겠다고 여길 오는 건 나로서는 생각조차 못 해봤으니, 잘 끊었던 것도 같다.


계속 옆에서 친구라는 이유로 거슬렸어봐, 가만 안 놔둘 애야.


"나 때문에 너희가 사이 틀어진 건데, 미안해. 가운데에서 역할 잘 못 해서."


나이가 들면서 사고방식과 환경이 변화했고 잘 어울리던 친구들과 드문드문해지는 건 자연스러웠고,

나와 혜림도 마찬가지로 어울리지 않았을 뿐이다.

마침 우리 셋은 친구였고, 둘은 다른 애정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그러니 조금 멀어지는 건 내 역할이었다.


"하늘 아래서 셋이 한 번 만나자. 여기서 조우하는 건 50년 뒤로 하고."


-


집으로 돌아왔다. 잠시 머물다 갈 내 숙소랄까.

이한은 혜림을 찾으러 갔다.

원래대로 돌아간다는 건 참 마음 편한 일인 듯하다.

맨날 같은 일만 반복하는 공무원은 지겨워서 못할 거라던 내가 이런 지경에 이르다니.

스펙터클한 나날에 정신이 없긴 한가보다.


근데 뭔가 달라진 거 같지, 왜?

뭐야 이 위화감은.


방 안이 좀 어색했다.

있었던 게 없어진 건지, 없었던 게 생겨난 건진 모르겠지만 낯설다.


기분 탓이겠지.


침대에 누웠다.


오늘은 정말로 편히 잘 잘 수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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