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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어디 어디 가봤어?

두 번째 유럽 -오스트리아 비엔나편

by 글한송이

감사하게도 대학원 진학이 결정됐고, 그래서 마음 편히, 지난여름에 계획했던 대로,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겨울의 유럽을 돌아다니기로 했어요. 여기저기 조사해 보니까,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영국 등 여러 EU 국가들이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유명하더라고요. 마음 같아서는 다 둘러보고 싶었죠. 하지만, 졸업을 압둔 학생에게 있는 거라곤 시간뿐이었어요. 그래서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추억을 만들겠다는 각오로 동유럽을 살폈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동유럽은 서유럽이나 북유럽에 비해 물가가 저렴하니까요. 헝가리를 가장 최우선 국가로 정해두고 다른 곳들을 탐색했어요. 그런데 웬걸, 검색을 하면 할수록 오스트리아가 너무 예쁜 거예요. 하필이면 이때 영화 <비포 선라이즈>를 본 바람에, 온갖 낭만에 젖어버린 거죠. 왠지 기차를 타고 다니다가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구름을 둥실둥실 떠다니는 그런 기분 있잖아요. 출국 날짜나 이런 것들을 고려했을 때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직항으로 가는 건 무리였고, 마침 비엔나 직항 항공권이 저렴하게 떴어요. 이건 우연의 일치일 수가 없다고 생각해서, 바로 티켓을 끊었습니다.

비엔나, 케른트너 거리

지난 여행에 목적을 굳이 휘양 찬란하게 이름 붙여 현실 도피를 통한 자아의 발견이라고 설명한다면, 이번엔 색다른 경험을 통한 시야 넓히기였어요. 프라하 한 곳에만 있어서 아쉬움이 있었기에, 다양한 도시와 국가를 돌아다닐 작정이었거든요. 여행 국가는 총 4개국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부다페스트 당일치기)-체코(체스키 크룸로프 당일치기, 프라하)-독일(드레스덴 당일치기) 순이었습니다. 체코 또 갔냐고요? 네, 또 갔어요. 하하. 오스트리아에서는 비엔나에서 4박 5일, 잘츠부르크에서 4박 5일로 총 10일 간 머물렀습니다. 기차를 타고 이동했는데, 얼마나 무서웠는지 지금도 생각만 하면 심장이 벌렁벌렁거려요.


먼저 비엔나에서의 4박 5일을 말씀드릴게요. 지난번에 언급했던 대로, 저는 저질체력의 소유자로서 도착한 날엔 무조건 자요. 씻고 그냥 잡니다. 정말 다른 거 안 해요. 비엔나에서의 첫날에도 마찬가지였어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어서 씻고 자겠다는 일념 하나로 빠르게 이동했습니다. 오스트리아 철도 OBB를 이용하기 위해 CAT 티켓 기계에서 2.3유로를 주고 Wien Mitte 역으로 가는 환승은 불가능한 저렴한 표를 구매했어요. 숙소까지 8분 거리라는 안내가 있었기에 걸어가 볼까 했는데, 지압판 같은 유럽의 돌길에서 캐리어를 끌 자신이 없는 거 있죠. 그래서 티켓을 한 번 더 샀어요. Schwedenplatz 역에서 도보로 2분. 간혹 교통이 용이하다는 걸 홍보하려고 과장 광고하는 곳들이 있잖아요. 예약한 숙소도 그런 수법을 썼다면 제가 짐인지 캐리어가 짐인지 구분이 안 갔을 거예요. 다행스럽게도, 숙소는 정말 가까웠어요.


크리스마스 분위기 물씬 풍기는 상점가

현지시각 18:48에 방 키를 받아 어깨를 짓누르던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긴장이 확 풀렸어요. 사실 집에서 인천 공항으로 출발할 때 눈이 많이 와서 한 시간 삼십 분이면 갈 수 있는 공항에 세 시간이 걸렸거든요. 모바일 체크인 서비스가 없었다면 비행기를 못 타는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었어요. 거기다 도착했을 땐 엄청 깜깜해서 주변을 잔뜩 경계했거든요. 그러니 포근한 침대와 후끈한 열기를 자랑하는 라디에이터에 몸이 녹아내릴 수밖에 없었죠. 유럽은 우리나라와 달리 바닥에 난방이 안 돼서 온풍기나 라디에이터로 겨울을 나곤 한대요. 여름보다 겨울을 좋아하지만, 더위보다 추위를 많이 타는 저한텐 치명적인 시스템이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숙소가 작아서 그런지 덥기까지 했어요. 빨리 씻고, 노곤 노곤한 몸을 이불속에 뉘었습니다.

조식

조식은 간단히 빵으로 제공되었습니다. 한국에선 빵을 잘 먹지 않는데, 유럽만 오면 모든 빵이 다 맛있어요. 숙소 비용이 식비로 들어간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배불리 먹고, 성 슈테판 대성당으로 향했죠. 그리고 성은 징이요, 이름은 크스인 친구가 제게 반갑게 인사했어요. 공사 중이었습니다. 그래서 케른트너 거리, 그라 벤 거리, 오페라 극장까지 힘을 잃고 거닐었어요. 가벼운 발걸음으로 뛰어 왔을 때와는 명확히 대비되는 그림이었겠죠? 겨울의 유럽은 해를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 힘들어요. 딱 제 기분과 같았습니다. 그래도 반짝이는 스와로브스키 보석을 구경하면서 마음을 다잡았어요. 스와로브스키 본점인데 우리나라 프랜차이즈 커피숍보다 매장이 작아서 오래 있진 않았는데요, 그래도 보석이라 그런가 본 거 또 봐도 예쁘더라고요.


비엔나는 맛집 검색이 힘들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블로그에 어플에 구글링까지, 간신히 찾은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너무 짜서 다 못 먹었어요. 양도 많고 직원분도 친절했지만, 샐러드와 음료수만 깨끗이 비웠어요. 팁은 웬만하면 적정 비율 선에서 남기고 와요. 한국엔 팁 문화가 없어서 괜히 머쓱한데, 그래서 아예 영수증에 찍혀 나오는 곳이 편할 때도 있어요. 물론, 서비스는 엉망인데 높은 팁을 요구하는 곳들도 있어서 그럴 땐 어처구니가 없죠. 이 식당 직원은 한국어를 구사하며 배려를 보여줘서 기분 좋게 나올 수 있었답니다. 그리곤 곧장 프라터 공원으로 향했어요.

프라터 공원 입구

프라터 공원까지는 지하철을 이용했어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놀이공원이라는데, 퀄리티가 장난 아니었죠. 날도 흐리고, 겨울이라 운영하지 않는 놀이기구들이 많았지만, 제겐 다행이었어요. 회전목마, 열기구, 후룸라이드 정도만 탈 수 있는 사람이거든요.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서 본 장소를 볼 때면 미소가 흘러나왔습니다. 장면에서처럼 푸르른 나무와 맑은 하늘이 곁들여졌다면, 더 좋았겠어요. 이런 날씨여도 연인들에게선 사랑이 넘쳤습니다.


시청사 근처 크리스마스 마켓

야경은 어느 나라든 다 멋있나 봐요. 크리스마스 마켓은 웅장함이 이루 말할 데가 없었어요. 우리나라 성탄절은 이브와 당일에 화려하지만, 유럽은 거의 한 달을 축제 속에 사니까, 덩달아 신이 났어요. 규모도 엄청나서 길 헤매기를 반복했죠. 사실 판매하는 기념품이나 크리스마스 용품은 거기서 거기라 쉽게 질릴 수 있지만, 저는 추천합니다. 관람차를 타는 어린아이들, 글뤼바인이라는 따뜻한 와인에 손을 녹이는 어른들, 그 틈에서 분위기를 만끽하는 건 유럽에서만 가능한 경험이잖아요. 빈 시청사, 헨델 광장, 호프부르크 왕궁 등등 발 닿는 곳마다 크리스마스 연휴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했어요. 너무 예뻐서, 사진을 찍을 생각도 못하고 눈으로만 담았던 게 아쉽기만 합니다.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숙소로 가면서 겨우 한 컷

눈도 많이 내리고, 먹구름에 찬 바람까지 불어 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달음을 준 도시였어요. 입맛도 없어서 유명한 카페를 찾아다니며 케이크와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감정의 허기를 달랬습니다. 기분이 날씨에 영향을 받는다는 말이 사실인가 봐요. 그래서 비엔나에서는 사색에 잠기는 시간이 꽤 길었다고 생각해요. 미술관이나 박물관도 갈 수 있었지만, 따뜻한 카페에서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조용히 내리는 눈송이를 관찰하는 데에 하루를 보냈으니, 말 다 했죠. 기념품은 잊지 않고 챙겼지만, 그보다 더 값진 걸 건졌어요. 돌아다니면서 꼭 무언가를 보고 느끼고 겪는 게 여행이 아님을 알았거든요. 발 닿는 대로 걸으면서 마주하는 것들은 그냥 배경일뿐이고, 나는 나와 여행을 하고 있다는 걸 말이에요.

비엔나에 발자국 남기기

심오한 배움을 얻고, 4박 5일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일정 중에,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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