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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어디 어디 가봤어?

세 번째 유럽 - 헝가리 부다페스트편

by 글한송이

부다페스트는 온천과 야경으로 유명한 도시예요. 그래서 겨울에, 수영복을 준비해 갔답니다. 야외에서 즐길 수 있는 세체니 온천도 있었지만, 실내 겔레르트 온천으로 갔어요. 사람도 비교적 적다고 하고, 호텔에서 운영하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깨끗하다는 얘길 들었거든요. 다음에 또 갈 수만 있다면, 그땐 세 곳 다 가볼 거예요. 놀랍게도, 얼굴에 있던 좁쌀 여드름들이 몽땅 사라졌거든요. 온천의 힘, 아주 제대로 느꼈어요.

겔레르트 호텔 겔레르트 온천

이른 아침 준비해서 나온 거라 버스에선 내리 잤어요. 플릭스 버스라고 아시죠? 당일치기라 짐이 별로 없었기에 기차 대신 버스를 이용했어요. 그리고 후회했죠. 아, 부다페스트는 아무리 작다고 해도, 최소 1박은 해야 하는구나, 깨달았거든요. 부랑자도 많고, 인종차별도 심하고, 짐도 잘 털어간대서 온천에서 물이란 물은 잔뜩 먹은 수영복을 가방에 넣고 돌아다니면서 얼마나 힘들었다고요. 그러니까 혹시라도 부다페스트 온천 여행을 계획하셨다면, 무조건 1박 이상을 추천드려요. 낮에 보는 모습과 밤에 마주할 야경은 엄청 다른 매력을 가졌으니까요.

부다페스트 햇살 가득 하늘이 반가워서

신기하게도, 부다페스트는 비엔나와는 완전 다른 분위기로 반겨주었어요. 그늘에서만 꽁꽁 얼어있는 눈, 청명한 하늘, 밝은 햇살. 해 안 보면 우울증 걸린다는 말, 정말이라니까요. 신나게 이곳저곳 돌아다녔습니다. 겨울의 유럽은 해가 빨리 지기로 유명하죠. 그래서 금방 어두워졌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비타민 D 충전해서 미소가 만연해 있었어요. 온천을 즐기고 돈을 인출한 다음, 가장 먼저 밥을 먹으러 갔습니다. 24시간 교통권을 끊었으면서도 걸었던 기억이 나요. 지금 생각하면 참 미련한 짓인데, 그땐 이조차도 낭만이었죠. 오스트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 분위기는 상당히 다르거든요.

굴라쉬와 고기 샐러드 in Boom and Brass. 팁은 강제로 1000포린트 지불.

어렸을 때부터 신경계 쪽에 문제가 있었던 거 같아요. 그게 겉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게 중학생 때였을까요, 왼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게 수전증 증세가 보였거든요. 팔에 워낙에 힘이 없어서 그런 거겠지 생각하고 운동을 했는데요, 역시 멋대로 진단 내리고 처방하는 건 무서운 일이에요. 지금은 밤마다 왼팔이 저리고 쑤시고 시려서 잠을 통 이루지 못합니다. 디스크 때문인가 했었는데, MRI를 찍어보니 디스크 쪽엔 문제가 없대요. 원인을 모르겠다는 답답한 말만 듣고 왔는데, 통증은 여행 때도 멈추질 않았었죠. 굴라쉬와 고기 샐러드를 주문했고, 너무 많은 양에 심지어는 남겼어요. 먹는 내내 배가 따뜻해져서 좋았지만, 팔이 쑤시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티를 내고 싶진 않았습니다. 시간은 하루밖에 주어지질 않았는데, 아픈 기억을 남기는 건 최악이었으니까요.

예쁜 길목

과거보다 현재가,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가 중요하다고들 하죠. 하지만, 전 과거도 다른 둘 만큼이나 소중해요. 어린 시절의 전 사실 늘 행복하지만은 않았어요. 요즘 한창 문제가 되고 있는 유치원 교사 폭행들, 저도 당했거든요. 중학생 때까지 동생을 챙겨야 한다는 부모님의 세뇌(?) 교육에 무거운 책임감으로 힘겨웠고, 고등학생 땐 감히 선생이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은 담임을 만나서 끔찍했던 기억도 있어요. 하지만, 이런 것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 제 과거를 아껴요. 행복한 기억이 훨씬 더 많으니까요. 사실 충격적인 일들 아니면 안 좋은 기억들은 또렷하지도 않죠. 부모님이 언제나 제 편이었기 때문에 무서운 게 없었어요. 지금도 늘 항상 절 믿으시거든요. 어깨를 짓누르던 책임감이 믿음으로 승화되어 이제는 감사하기만 합니다. 신뢰, 좌절, 도전, 회피, 실패, 재도전, 성취. 가족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그래서 더더욱 제 여행기를 좋게 남기고 싶었어요. 여행은 원래 아프기도 하고 힘겹기도 하고 그러면서 성장한다는 걸 완전히 간과한 채로 말이에요.

부다페스트 아이

친구에게 받은 아끼는 모자가 있었는데, 밥을 먹고, 크리스마스 마켓을 구경하고, 기념품을 사면서 잃어버렸어요. 누가 훔쳐간 거라고 믿고 싶지 않아요. 소매치기범이 아무리 들끓는 나라라지만, 고작 모자를 가져가진 않았을 거예요.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게 속 편했어요. 그래도 금방 기운 차렸는데요, 부다페스트 아이 덕분이었어요. 비엔나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관람차를 안 탔는데, 부다페스트 아이를 위해 참고 참았던 거였습니다. 이게 훨씬 안전해 보이기도 했어요. 그냥 위에서 건물들 내려다보는 건데 왜 그렇게 설레었나 모르겠어요. 그래도 신났습니다. 국제학생증으로 할인받고 10여분 간의 대기 끝에 널찍한 통 속으로 쏙 들어갔어요. 우리나라 관람차를 생각하면 엄청 오래 머물잖아요. 근데, 유럽은 놀이기구처럼 빠른 속도로 빙글빙글 돌아요. 부다페스트도 그랬어요. 살짝 멀미가 나진 않을까 걱정할 정도로요. 다행히 그러진 않았지만, 너무 빨리 끝났다는 아쉬움은 지금도 그 시간을 그립게 만드네요.

부다페스트 아이에서 본 건물들

해가 완전히 저물었어요. 지하철을 타고 국회의사당으로 향했어요. 어부의 요새는 못 올라갔지만, 강을 사이에 두고 보는 국회의사당은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예쁜 걸 보는 건 좋은 일이에요. 걸음이 닿는 곳마다 새롭고, 공기도 다르고, 눈도 즐거운 게 행복 그 자체거든요. 발가락에서 피가 나는 불상사도 잊고, 정말 한참을 걸었어요. 물이 뚝뚝 떨어지다가 찬 바람에 얼어버린 그 무거운 짐을 들고서요. 또 그러라면 절대 못할 것 같아요. 스물셋의 저와 스물다섯의 저는 벌써 이렇게 체력적 한계점이 달라져버렸네요. 마음 한쪽이 씁쓸합니다.


부다페스트 야경

실제로 보면 정말 어마어마하게 커요. 그 웅장함에 말이 나오질 않더라고요. 토플 공부하면서 암기한 '크다' 상응하는 와 수많은 영어 단어로도 해결이 안 될 정도였어요. 어떻게 저런 황금빛을 낼 수 있는 걸까요. 낮에 먼저 보지 못 했더라면 애초부터 금으로 지어진 건물이었을 거라고 생각하기에 충분했죠. 매서운 강바람만 아니었다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을 텐데, 간신히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버스 타기까지 시간은 충분해서, 몸을 녹일 생각으로 스타벅스에 갔어요. 사실 인종차별 논란이 매해 발생하는 프랜차이즈 카페라 꺼렸지만, 6시면 문을 닫는 카페들이 많아 선택권이 없었습니다. 그럼 한국에선 아예 안 가냐, 꼭 그렇지만도 않더라고요. 비겁하게 자기 합리화를 한 적도 있어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코코아가 얼마나 달콤하던지, 그래서, 애용하지 않는 걸로 적당히 합의를 보고 너무 많은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기로 했죠. 최소한 부다페스트에서 근무하던 직원분들은 친절하셨거든요.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 유리창을 통해 비치는 어둠 속 마을에 많은 생각이 스쳤습니다. 평소에는 잘하지 않던 생각들도 꼬리를 물고 이어졌어요. 짐을 인 채 가족을 위한 기념품을 챙기고, 식사 한 번에 피로가 씻은 듯이 내려가고, 관람차에 동심으로 돌아갔다가, 야경에 시선을 빼앗긴 하루는 소소하지만 뿌듯한 시간이었어요. 먼 타지에 와서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들이 가족임을 알았죠, 먹는 걸 즐기진 않았는데 씹고 뜯고 맛보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 지도 직접 느꼈죠, 놀이공원이라면 질색을 했으면서도 완전히 싫어하지만은 않는다는 걸 겪었잖아요. 아침형 인간인 척하지만, 어둠 속에 내려앉은 별과, 그에 대응하듯 반짝이는 야경을 볼 때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오는 것도 새삼 깨달았잖아요. 다음 날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잘츠부르크로 떠나는 날이라 자두는 게 좋을 텐데도, 뜬 눈으로 있었어요. 꿀꿀한 날에 덩달아 축 쳐져 있던 비엔나에서의 과오를 잊고, 발이 퉁퉁 부어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부다페스트에서의 실수를, 잘츠부르크에서 만회하겠다는 각오 때문이었을 거예요.

하이 바이, 부다페스트.

두 번째 유럽의 세 번째 도시, 잘츠부르크 입성은 남다른 결심과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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