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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공항 Aug 18. 2024

소원


애들 수학여행 데리고 갔다가 안동 하회마을 성황당에 있는 600년 된 나무에 묶어놓고 온 소원. 애들이 나무에 줄줄이 매달려 소원 종이를 묶어 놓고 있는 것이 예뻐서 사진 찍느라 내 소원 쓰는 걸 잊었는데 "샘도 하나 쓰고 오세요-"라고 해서 급하게 써서 사진을 찍고 곱게 묶어 놓고 왔다.



사람을 그릇에 비유한 옛 어른들의 말씀은 살면 살수록 기가 막힌다는 생각이 든다. 그릇의 크기가 가마솥만큼이나 큼지막해서 다른 사람의 흉허물도 넉넉하게 품어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간장종지만큼 작아서 남의 작은 실수 하나도 담지 못하고 질질 흘려보내는 사람이 있다.


생활하다 부딪힐 일이 생길 때도 어떤 사람은 청명하고 아름다운 소리가 나지만 어떤 사람은 탁한 울림과 함께 와장창 깨져버려버리고 만다. 물론 이건 부딪히는 내가 어떤 그릇인지도 중요한 사항이겠지만.


직업의 특성상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인생살이가 다 그런 것인지는 모르지만 하루하루 다양한 그릇과 마주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마음 그릇의 크기와 견고함 그리고 재질을 파악하는 안목이 생기는 느낌이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나에 대해서도.


나이를 한 살 한 살 더 먹을수록 점점 더 부딪힐 일도, 내가 감당해야 하는 내용물의 크기와 무게도 커지는 것 같다. 꾸준히 성장해야만 험한 꼴은 안 보고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자신이 없어서 기분이 뒤숭숭하다.


원래는 나도 소원을 빌고 오라고 배려해 준 애들이 예뻐서 '나쁜 짓 해도 안 미워 보이게 해 주세요!'라는 마음으로 쓴 소원인데 나무에 묶으면서는 온갖 생각에 기분이 묘해졌다. 어른이 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수많은 레벨업의 연속인 것 같다. 더 이상 레벨업 안 하기로 하고 그냥 주저앉아도 되긴 하지만. (201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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