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田丁) 박항환(朴亢煥)의 초대전
전정(田丁) 박항환(朴亢煥)의 초대전. 인사아트프라자 1층 그랜드관, 7월10일~ 22일
“노(老) 화백의 「사철가」가 노래하는 무애(無涯)의 카타르시스(catharsis)”
전정(田丁) 박항환 화백의 초대전이 7월10일부터 22일까지 인사아트 프라자 1층 그랜드관에서 열렸다.「사철가(四節歌)」라는 주제의 연작이다. 너른 전시장의 4면을 채운, 크고 작은 작품들은 모두 박 화백이 제시하는 「사철가」들일 터이다. 하나의 주제와 작품명으로 그려진 그림들이니, 공통된 분위기와 메시지가 관통하고 있다는 것도 당연한 판단일 테지만, 한편 「사철가」라 하면, “4계절”에 대한 노래를 연상하면서도 판소리의 단가인, 그 유명한 「사철가」를 떠올릴 사람들도 꽤 될 것이다.
전정 박항환 화백은 남종화(南宗畵)의 맥을 잇는 전통 한국화를 그리고 있고, 오늘날에도 높이 평가되는 남농(南農) 허건(許楗)선생과 도촌(稻村) 신영복(辛永卜)선생으로부터 화업(畵業)을 배운 정통파 남종문인화가이다. 따라서 박항환 화백에 대해서는 화단의 원로에 속하는 ‘한국화가’로 많은 이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화맥(畵脈)을 지켜오는 박 화백의 이번 전시「사철가」는 누가 봐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만치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니 수묵화(水墨畵)니 하는 전통 한국화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서양화이며 비구상 추상화 작품들로 전시장을 꽉 채워 대중들을 맞이하고 있다.
오늘날은 4차 산업혁명의 시대라 하고, 한편 온갖 요소들의 융합과 함께 형식과 격식을 파괴하거나 뛰어 넘고자 하는 시대이니, 예술에 있어서도 그에 따른 적용이 예외일 순 없으며, 한발 물러서서 재료의 선택과 화법(畵法)의 경계에 제한 받는 것은 예술작품을 창작하는 작가들에게는 간섭이요, 반드시 필요한 제약이 아니라는 주장을 할 수 있다고 해도, 대개의 사람들에게는 풀리지 않는 의문점일 것이라는 데에는 동의할 여지가 많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박 화백이 내건 작품들의 명제가「사철가」인 것은 그가 진도태생으로서, 예향 진도의 멋과 흥을 어느 정도는 담고 있는 단가(短歌)「사철가」를 염두에 두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박 화백의 고향 진도는 “진도 아리랑”부터 시작하여, 추사(秋史) 김정희로부터 서화(書畵)를 배워 추사(秋史)와 함께 남종문인화의 뿌리를 이은 소치(小痴) 허련(許鍊)의 본향이라 할 수 있으니, 예향 진도에서 나고 자란 박 화백으로서는 매우 자연스런 주제의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번 초대전의 작품들을 보면서 「사철가」가 흔히 인생무상을 노래하는 ‘설움’의 창가(唱歌)라는 선입견으로 볼 때, 박 화백의「사철가」는 그림과 소리라는 형식과 장르의 차이가 크다 한들, 두「사철가」에 대한 감상은 매우 현격히 다르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산 저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 로구나~~"로 시작하는 단가「사철가」의 구슬픈 가락의 시작부터 가사의 구구절절한 인생의 스토리텔링은 그저 한탄스럽고 낙심한 듯 한 곡조와 내용으로 인해 처진 기운으로 감상(感傷)에 젖어들게 한다. 이산 저산 온통 만개한 꽃들을 보며 느끼는 허무함이라는 역발상은 어쩌면 지나친 환희에의 반대적 표현일 수도 있지만, 우리의 정서는 늘 이런 식이었다. 그러나 박항환 화백의 「사철가」에서는 그런 식으로 정서를 자극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 화백의 「사철가」에는 어느 정도 관조와 너그러운 시선을 담아내고 있다는 표시들이 느껴졌고, 세상인심에 대하여 박 화백만의 새로운 측면을 들여다보는 중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가 그려낸 작품들에는 수도 없는 ‘무작위적 행위들’이 반복되고 있다. 특정한 칼라의 차이만 있을 뿐 대체로 유사한 틀 안에서, 그리고 일정한 법칙을 따르면서도 자신의 세심한 정성과 깊은 공감의 정서를 나누면서, 자신의 숨겨놓은 무엇을 조심스레 나타내려는 의도를 보인다. 그는 자신의 세계에서 한껏 흥에 취한 듯 자신의 시절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4철(四節)의 시간을 보낸 것인지, 그간의 사철을 떠올린 것이지는 알 수 없으나 그리 보이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그동안 박 화백이 한국화, 특히 문인산수화의 지긋한 시선과 여유로운 절제를 통해 수묵의 격조와 유려하고도 조화로운 정신성을 유지하던 필법과 달리 거칠고 분방하게 휘두르듯 화폭에 담아내는, 기존에는 볼 수 없었을 새로운 화법으로서 수도 없이 덧칠하는 색채의 중첩은, 담채와 수묵의 조화를 절제라는 덕목으로 담아내던 것과는 필경 너무도 다른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보여 지는 숱한 기억의 흔적들, 사연들과 세월의 누적과 자연과 우주의 순환이 함께 하였다는 것 까지도 담아내기 위하여 박 화백은 그야말로 깊은 고뇌에 빠진 채, 둔탁한 몽당붓의 현란한 율동과 함께 하였던 듯하다.
팔순을 눈앞에 둔 노 화백이 굳이 자신이 평생 해온 문인산수화 대신, 서양식 재료와 방식으로「사철가」를 인사동 한 복판에서 간절하게 불러 제끼는 뜻을 필자는 임의적인 생각으로 성급히 살펴보고 있지만, 분명 전하려는 메시지는 있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가 그동안 유려한 필묵으로 서예의 고고하고 정갈한 정성을 다하며 그려낸 진경산수화의 여백과 절제가 아닌, 이처럼 난장(亂場)으로 그려내며 사람들의 가슴으로 파고들 듯 부르는 노래의 진정한 뜻은 무엇일까? 인간의 삶은 심오하면서도 자극적이고 분명한 것이다. 즐거우면 즐겁고, 슬프면 슬픈 것이다. 전통 산수화의 에두른 방식보다는 추상적 방식일망정 서양화의 대놓고 표시하는 식이 좀 더 강력한 소통이라 생각한 것은 아닐 지 생각해 본다. 작품마다에서 느껴지는 넘치는 흥과 에너지는 서글픔이 배어나오는 듯도 하지만, 긍정과 희망으로 부르는 노래처럼 들린다. 돌아보니 삶이 고달프고 힘이 들었으나, 잘 견디어 오늘에 이르고, 그 사이 사계절은 늘 아름답고 넉넉하게 인간을 지키고 감싸며 함께 하였다. 그를 바라보거나 직접 겪으며 보내온 세월 속에 무엇 하나 의미롭지 않은 것은 없었고, 이것들이 곧 나의 삶의 일부와도 같았다고 여길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세월의 흐름 속에 쌓이고 남겨진 무수한 사연과 이야기, 그것을 기억하는 오늘의 우리는 어디 한탄스럽고 서글프다 말할 수 있으랴!
박 화백은 곧 산수(傘壽)를 앞둔 세월을 살면서 지나간 때를 아름답고 뜻 깊게 바라다보는 중이다. 때론 강렬하면서 힘이 넘치는 열정으로 그 추억을 되새기기도 한다.
노란색으로 온통 뒤집어 버린 봄 꽃 개나리가 온 산을 휘감고 있었을 때, 그 자연속의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기쁘지 않았던가? 온갖 생명들이 겨울을 난 뒤 다시 표면으로 새로운 생기(生氣)가 돋기 시작하고 이 생명들의 합창으로 세상은 활기를 띈다. 그 기억을 어찌 잊으랴. 숱한 살아있는 것들이 채워진 속에서도 조금은 더 눈에 뛰던 것들, 그것들이 비록 초록이요, 노랑이요, 분홍이며, 보라색일지라도 어디 이들만이 우선은 아니지만, 작가는 이 색들을 대형 화폭의 수많은 흔적들의 난무 속에 은근히 앉혀 놓았다. 그저 숨은 그림을 찾듯 그들과 함께 한 것들조차 같이 눈에 띄도록 노 작가는 세상 사물의 소중함과 가치를 잊지 않으려 한다. 이미 땅속 깊이 수많은 살아있는 것들이 숨은 곳에 흰 눈이 내려쌓인 자연에서도 그는 무언가가 드러나 있음을 알고 관심을 기울인다. 그의 눈에 보이는 자연의 것들 때문에 비록 텅 빈 겨울이어도 부족하거나 허허롭지 않다.
박항환의「사철가」는 그 어느 철이어도 풍요하고 생기가 넘치며 살아있는 것들로 흥겹다. 그러하므로 박 화백의「사철가」는 인생의 본래(本來)를 알아버린 “조상현” 명창(名唱)의 깊은 울림이 있는 소리와 다를 바 없이, 여전한 생명력을 깊이 인식하면서 자연과 우주의 거대한 힘과 은혜를 앎으로서 한 세상 잘 살아가는 인간의 좋은 본보기를 이렇게 세상에 전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하니「사철가」를 듣다가 뜬금없이 눈물을 훔칠 때처럼, 전시장 한구석으로가 남 몰래 울어본다고 한들 무슨 흉이라도 되겠는가. (강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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