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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갤러리 산책가는 날.18

정훈성 & 니콜라스 로페즈 콜라보레이션 전시, “물의 이야기”

by 강화석 Oct 03. 2024

마루아트센터(신관/갤러리 경북), 2024 8/21~ 8/26     


지난 주(8/21~8/26), 인사동 마루아트센터(신관/갤러리경북)에서 정훈성과 니콜라스 로페즈(Licolas Lopez)의 콜라보레이션 전시, "물의 이야기(The Story of Water)"를 보았다.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 전시라고 하기 엔, 두 작가의 작품들이 서로 이질적인  화풍이고 분위기라고 생각하였다. 즉 채색이 화려하다고 해야 할 인물 수채화와 먹색과 흰색으로 일관한 한국화 풍의 수채화들이 대략 반반의 숫자로 전시되어 있는데, 풍경을 그린 한국화 풍의 수채화는 흰 여백을 담묵(淡墨)이나 비워두는 식의 전통 수묵화와는 달리 흰색 물감을 사용하고 있고, 먹색과 흰색을 대비시켜 강조하려한 의도마저 엿보이는 풍경화였다. 일단 상반된다고 여겨지는 작품들을 통해 ‘콜라보레이션의 메시지’를 찾기는 다소 의아해 보였다. 

전시주제는 "물의 이야기"인데, “물”과 관련된 주제의식에 집착하는 것이 작품이해의 근시안적인 접근일 수 있지만, “물”이라는 Key word를 단서로 삼아 작품을 읽으려는 것은 자연스런 접근이란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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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동양사상을 기반으로 보면, 음(陰)의 기운을 가지고 있고, 밤을, 북쪽을, 그리고 흑색을 상징한다. 또한 햇빛이 부족하니 어둡고 차가운 기운을 상징하며, 밤에 그리고 어두운 곳에서는 은밀한 일들이 일어나게 마련이고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무슨 일이든 진행하고 처리할 수 있는 능수능란한 지혜, 권모술수의 지혜가 필요해지기도 하므로 물은 침착하고 현명한 지혜와 관련이 있기도 하다. 이러한 물성(物性)을 가진 “물”의 이야기는 “물과 관련한 이야기”이거나, “물이 주체가 되어 만들어 내는 이야기”일 수도 있으며, 또한 말(언어) 속에 담긴 의미를 실체화하거나 드러내려 한다면, 두 작가가 공히 물과 물감을 사용하여 작품을 그려내는 수채화가이므로 주재료인 “물”의 역할이나 영향을 염두에 둔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였다.  

아무튼 “물의 이야기”라는 주제를 구상하고 표현하려고 하는, 한국인과 미국에서 활동하는 페루인, 두 화가의 콜라보레이션 전시는, 작가뿐 아니라, 작품의 풍과 작품의 내용이 이질적이므로 전시에 대한 호기심(?)이나 관심을 유발하기에는 충분한 조건을 갖춘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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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성은 수채화를 기가 막히게 잘 그리는 작가로 이름이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는 인물 수채화 작품들만 내 걸었다. 수채화의 맛은 그대로 살리면서 정밀하고 정교하게, 부드럽고 세밀한 붓놀림이 신기할 정도로 다양한 사람들을 아름답고 정겹게 그려내었다. 그의 작품들을 보고 있으니 마음은 뭉클해지고 감정은 평소보다 뛰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아름답고, 개성적이고, 신비롭고, 매력이 넘쳐 나는 화폭 속 인물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즐거움이 보통이 아니다. 작품을 보러온 것인지, 작품 속 모델들의 미와 매력을 즐기러 온 것인지, 그 감각적 자극이 이성을 흔들기도 한다. 그만큼 인물들의 표현력이 뛰어나다는 증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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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그가 그린 인물들의 깊은 응시, 그윽하게 바라보는 응시의 눈길이 관람자들을 빠져들게 한다. 이들이 바라보고 있는 대상은 무엇인가? 무엇이라도, 누구라도 그리 바라보는가? 마치 삶의 깊은 단면을 만난 듯 담백하기만 한 마음을 전하고자 하는 그 눈빛. 이런 경이로운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에 필자는 어떤 심정에 처하게 될까? 너무도 오래되니 잊어버린, 깊은 눈길들이 전시장의 작품마다에서 만날 수 있다. 이렇게 정 작가는 예사롭지 않은 관찰과 표현으로 작품을 그려내어 관람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시선과 탐구력을 가늠하게 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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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작가는 수채화의 기본 특색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살아있는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낸 듯 생기가 도는 인물수채화를 섬세하고 정교하게 그려내고 있는데, 이를 위해서 셀 수 없는 붓질, 화폭에 담길 대상을 바라보며 물감과 물을 섞어 농도를 재가면서, 색을 칠하며 물감이 마르는 속도와 번지는 효과를 교묘히 살피면서, 손길의 크고 작은 움직임으로 그림을 완성해 간다. 짧고 긴 붓 터치, 붓에 가하는 힘의 경중을 조절하고 색을 입혀가면서 ‘피그말리온(작가)’은 새로운 자기만의 ‘조각상’을 도화지 위에 그려내는 것이다. 작품 속 모델들의 눈은 한 결 같이 깊고 아름답게, 혈색은 살아있는 듯 화색(和色)이 돌고, 그러나 전체적으로 그윽하며 차분하고 안정된 느낌이다. 작품 속 모델들의 의식은 세상을 향하고, 작가는 그들을 한없이 바라보며 자신의 생각을 따라 동의하며 대화를 나누는 듯하다. 그 사이 대상(모델)과 세상 사이의 대화는 다듬어 지고, 뜻이 깊어지는 스토리텔링은 완성되어진다. 누구든 그 스토리를 듣고 싶어지도록 자극하고 있다는 생각은 자연스런 반응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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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스 로페즈(Nicolas Lopez)의 ‘물의 이야기’는 저녁, 어두운 밤에 들려오는 이야기이다. 달빛조차 없는 칠흑 같은 밤에, 음습한 숲에 자리한 한옥 집의 창호(窓戶)를 통해 새어나오는 빛이 조명이 된, 마치 한국화의 수묵 담채화 같은 그림 속의 대상들은 외부의 한 줄기 회오리 같은 빛줄기와 어울려 명암이 드러나고 경치가 부각되는데, 이는 평범하지 않게 신비로운 장면을 드러낸다. 모노칼라, 먹(墨)색으로 그려진 자연과 고풍(古風)의 한옥이나, 도시의 뒷골목, 해안가, 포구를 그린 작품들은 대부분 유사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수채화이지만, 한국화처럼 단순한 색채, 즉 수묵으로만 채색한 그림으로 여겨질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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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수채화가인 서양인 작가가 작정하고 이렇게 의도적으로 작업했다는 생각이 든다. 즉 동양적 사상이나 방식을 의식하며 자신의 작업 기법을 적용하면서 “물”이라는 연상이미지의 원천을 결합하려 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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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들을 보다 세밀히 바라보면, 다양한 형태의 붓을 사용하고 있고, 주로 먹을 이용한 채색이지만 섬세하고 정교하게 그리고 기교를 세련되게 부리며 그려낸 작품들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집안의 빛과 외부의 인위적인 빛줄기를 조합하여 어둠속에서, 마치 보슬비라도 오는 듯한 분위기에서 흩뿌리는 빛의 줄기, 나무와 잎 새에 머금은 물방울을 빛의 바람이 만들어 내는 빛의 잔물결처럼 슬로모션(Slow motion)으로 날리며 만들어 지는 빛의 요동을 세밀하고 섬세히 그려내는 작가의 감성과 표현 기교는 압권이다. 그리고 작품들의 배경 조건으로 검은 색을 주색으로 써야 하는 밤이라는 시간에, 마치 비가 오는 날씨를 연상시키며 작품화하고 있는데, 전술(前述)한 대로 동양의 음양오행사상으로 보면 모두 일치하는 조건이다. 물, 밤과 검은 색은 오행의 “수(水)”이고, 작품에서 먹색과 흰색을 Main Color로 하고 있는데, 이때 흰색의 경우는 ‘가을’을 뜻하며, 오행으로 “금(金)”에 해당하는데, 수(水)와 금(金)은 모두 “음(陰)”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필자는 니콜라스 로페즈 작가가 사전에 이를 의도적으로 구상하였던 것인가 하는 추측을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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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스의 작품들은 빛인 듯 물인 듯, 상징과 은유를 통하여 자신의 정신적 표상을 표현하려 한다. 거대한 오로라를 마치 바로 눈앞에서 보는 듯한 빛의 광풍이 회오리치고 있는 표현은 여러 작품에서 다양하고 유사하게 나타난다. 이는 빛인 듯 하지만 물의 이미지가 물씬 풍긴다. 나무와 어울려 있는 한옥에서, 멀리 산에서 시작되어 계곡을 흐르는 개울을 그린 풍경에서, 그리고 도시 뒷 골목길에서 물의 이미지를 닮은 빛줄기를 강렬하게 뿌려 놓는다. 이런 표현효과는 사진을 통해 현상하고 인화하면서 얻어 낼 수 있는 효과를 수채화에서 시연한 듯한 느낌도 준다. 물의 자유로운 번짐이거나 어떤 식으로든 변형하는 특성을 시각화하고 있는 셈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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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스의 작품들은 평소에 볼 수 있는 일반적인 방식이 아니므로 익숙한 대상을 매우 자극적으로 변화시켜놓고 있는 데, 따라서 이것들은 음험하고 기괴하게 보이기도 하고, 신비하고 환상적인(fantastic) 이미지이기도 한다. 이렇듯 니콜라스의 작품들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고 안개에 쌓인 듯, 선뜻 겉으로 드러나 보이지 않는 대상이나 실체를 조망하고 있다. 혹시라도 세상의 눈에 보이는 것들은 모두 “색(色)”이라 했고, 진정한 실체나 존재는 “공(空)”이라 하니 그런 뜻을 담아내고자 한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해보지만, 아무튼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은 아니다. 따라서 눈길이 가거나 시선이 오래 머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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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얼핏 보기에도 주제의식이나 관심이 같아 보이지 않은 두 작가, 그래서 꽤 개성이 강해보이는 두 작가가 콜라보레이션으로 시도한 이번 전시를 통하여 함께 “물”을 탐구하려 하였다. 그러나 필자는 전시의 주제에 대해서는 그 이상의 관심을 두지는 않기로 하였다. 다만 “물의 이야기”란 매우 포괄적인 것일 수도 있고, 한편 수채화는 물이라는 재료가 없이는 작품제작이 불가한 것이니, 물을 통해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을 전제로 “물”의 넓고 깊은 의미를 추구하고자 하였을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물은 철학적 의미와 관련이 깊다. 일찍이 노자(老子)는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上善若水)”고 하였다. 그리고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으며, 뭇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처하니, 물은 도에 가깝다(故幾於道)”라고 하였다. 어쩌면 두 작가는 물을 주재료로 그리는 수채화가들로서 자신들의 재능과 실력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가운데, 스스로 교만하지 말며, 세속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고 물의 원리를 따르겠다는 의지를 작품화의 바탕에 깔면서 물의 세계를 탐구한 작품들을 그려낸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필자의 비약에 가까운 생각일 뿐이다). 작가는 무엇에서든 작품의 영감을 떠올릴 수 있다. 자신의 창의성은 이를 얼마든지 작품으로 완성할 수 있도록 이끌 뿐 아니라 화가들의 내공이란 이를 위해 언제나 연마하고 탐색하는 것이니, 그럴수록 자신들의 세계는 넓고 깊어지는 것이다.(강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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