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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갤러리 산책가는 날.20

장용길 작품전, “Remember”

by 강화석 Oct 03. 2024

인사아트센터 부산갤러리, 2024년 9월 11일(수)~ 9월 30일(월)     

 

장용길 화가의 주제 “Remember”의 작품전이 인사아트센터(4층), 부산갤러리에서 9월11일부터 9월30일까지 열리고 있다. 이번 작품전은 “Remember”라는 주제와 동일한 제명의 연작과 “달항아리”연작 등 2가지 범주의 작품들로 구성하여 전시하고 있다. 장용길 화가는 그동안 30회에 달하는 개인전과 수백 회의 기획전에 참여한 중견을 지난 작가이다. 이미 자기만의 화풍을 지속하며 안정적인 작품세계를 펼쳐가는 중이다.   

장용길의 작품들은 우선 정감 넘치는 풍경화를 그리고 있지만 제작기법이 남다른 특성을 보여준다. 장 작가의 작품에서는 19C 프랑스 신인상주의 화가 「조르주 쇠라」가 시작한 “점묘법”을 연상시키는 화법과 더불어, 신비스럽고 동화적인 그리고 따스하고 정감어린 인간애가 느껴지는 작품으로 그만의 세계가 펼쳐진다. 한편 그의 작품에서는 과거 박수근이 그려낸 한국적 정서와 애틋함을 읽을 수도 있는데, 다만 박수근의 토속적 정서에는 다소의 우울함과 한이 읽혀진다면 장용길은 그 반대편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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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장용길의 작품전은 “Remember”와 “달 항아리” 두 가지 주제로 나누어 구성하고 있지만 큰 줄기에서는 하나의 원천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인간의 “오리진(origin)”에 대한 탐구, 인간 삶의 의미와 가치추구의 모티브가 되는 인간 삶의 단면에 대한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힘과 의미는 스스로 만들고 내면에 쌓아가는 무형의 가치들에 있다고 한다면, 그것들의 상당수는 “기억”속에 존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의식하건 무의식 상태에 있건 우리는 기억으로 살아가거나 그에 의존하며 자신을 지켜간다고 할 수 있는데, 삶의 가치, 또는 살아가는 이유를 물을 때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속되고 유물적인 것에 의미를 두기 보다는 자신의 내면에 간직된 것들로부터 그 원천을 삼으려 한다. 

이처럼 우리는 살아가는 중에 그저 드러내고 치장하고 수사로 포장하는 것에 있지 않고, 내면에 쌓여 자신을 견고하게 지키고 버텨주는 내 안의 또 다른 세상에 대한 믿음과 기대에서 위로받고 감사하고 행복함을 느낄 때가 많음을 알게 된다. 이를 알게 된 사람들은 결국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고 그것들을 찾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이런 인간 삶의 구조를 터득하였기에  사람들을 위로하거나 위안 삼을 기회를 찾아 나서며 탐구하고 그 결과를 제공하려 한다. 

장용길 작가는 “기억하다(Remember)”라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기억 창고로부터 하나 둘 기억꺼리들을 찾아보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것들이 그동안 여러 전시를 통해 숱하게 표현되었음에도 여전히 무한한 듯 재현되어 나오는 작품들의 풍요함에 놀라게 된다. 나아가 그가 기억하는 행위의 내용들이 주는 정서와 감정이 날이 갈수록 더 따뜻하고 맑고 밝아지는 것을 보면서 이 또한 성장하거나 발전되어가는 것인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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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길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달항아리”를 통하여 자신이 표현하려는 정신과 사상에 대한 새로운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그는 주로 점(點)을 이용한 기법으로 풍경화를 그려왔고, 이를 바탕으로 구상과 추상의 세계를 추구하였다고 할 수 있는데, “달항아리”를 통해서는 다소 다른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달항아리는 ‘극사실주의’ 기법을 지향하는 것이며, 동양적 정서와 사상을 은연중에 담아내게 된다. 그간의 방향과는 다소 다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이번 달항아리를 통해 매우 절제되고 담백하며 소박한 이미지를 담은 작품을 극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정밀하게 실제의 달항아리처럼 화폭에 재현하면서, 수많은 시간을 들여야 완성이 되는 빙렬(氷裂)조차 자신과의 소통, 인내 그리고 다독임을 통하여 그려내었다. 나아가 그는 겉으로 드러난 달항아리의 외양을 완성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달항아리 안에 무언가 담겨있다는 암시를 하는 듯하였다. 그는 자신이 소중히 여기며 아끼고 지키고 있는, 남들은 알 수 없는 보물들을 자신의 달항아리에 담아두고 있는 듯하다. 자신의 달항아리 안에 간직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쉽게 유추하자면 그것은 그의 “기억”일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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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한편에서는 자연을 대상으로 한 풍경화를 통해 세상의 사물을 매우 “인상적”으로 보여주는가 하면, 다른 쪽에서는 감춰두고 쉽게 보여주지 않으려 한다. 다만 보는 이들이 저 달항아리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에 대해 호기심과 함께 온갖 추측과 상상을 하며 관심을 기울이기를 기대하고 있는 듯싶다. 이는 작가와 독자사이의 ‘밀당’과도 같지만 이런 ‘밀당’이 한편 유쾌하고 흥미롭다. 

우리가 가진 “기억”들은 늘 즐겁고 기분 좋고 밝은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장 작가도 자신의 작품에서 표현하고 있지만, 한 겨울, 그야말로 ‘엄동설한(嚴冬雪寒)’에 집밖에는 나갈 수도 없이 좁은 집안에 식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던 기억이나, 한 겨울 너른 들판에서 맞이한 눈보라가 마냥 기분 좋고 즐겁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해안가에서 맞이한 한 겨울 눈 내리는 날이 그저 낭만이 넘치기만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그 무엇도 자신들에게는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아름답고 귀중한 기억이요 추억으로 남아있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들이 지금에서는 더 할 수 없이 소중한 것이고 그를 통해 현재와 미래가 더욱 의미롭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장용길 작가는 이러한 삶에서의 단순하지만 소중한 터득을 떠올리고 그것을 시각적으로 표상화하면서 모두에게 따뜻하고 흥겨운 동의를 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이 삶을 잘 살아온 사람들이 알게 되는 과정의 하나라고 인식하게 된다면, 예술가들은 이런 식으로 대중들을 자극하고 선도하면서 아름답고 소중한 삶에 대한 기대와 찬미를 떠올리도록 하는 것도 좋겠다는 자신의 생각과 제안을 세상에 대고 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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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길 작가는 ‘달항아리’ 그림만으로도 자신의 예술적 사고와 화가로서의 재능과 실력을 충분히 검증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누구나 그리지만 누구나 잘 그리기기는 어려운 달항아리를 자기만의 특색을 은근히 자랑하면서도 소박하고 정감 넘치게 그려내고 있다. 실제 도자기와 같이 매끄럽게 빛이 나면서도 달항아리 특유의 불규칙한 균열을 세밀하게 직접 그려 넣으면서 수많은 시간을 보낸 그가 자신에게, 또 세상에게 던지는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새겨 넣은 듯이 달항아리는 묵중하면서도 깊이 있는 품격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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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천연덕스러우면서도 당당한 마음 자세는, 예쁘고 아름답고 섬세한 꽃 나무그림에서는 정 반대의 태도를 보여 준다. 그 안에 또 다른 자아가 존재하는 듯하다. 무슨 기억이라도 그에게는 아름답고 맑고 밝다. 그에게 삶은, 세상은 아름다운 것이고 행복해야 하는 것이다. 그는 그런 자세를 한 점 한 점 소중한 마음을 담아 화폭에 찍는다. 한 번의 붓 칠로, 한꺼번에 많은 대상을 표현해 내고자 하지 않는다. 오로지 시각요소의 최소 단위라 할 “점(點)”으로 자신이 그려낼 것들을 표현해 내고자 한다. 그의 황소걸음 같은 화법으로, 그런 우직함으로 자신의 정성을 소중히 담아내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의 그림이 주는 밝고 맑은 기운 뿐 아니라, 작품을 보는 즉시 느끼게 되는 경쾌하고 가벼운 기분이 독자들을 편안하게 한다는 것이다. 자신은 무겁고 고통스럽게 숱한 시간을 들이며 노동의 대가(?)를 치러야만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으나, 독자들은 밝고 맑고 깨끗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작품을 즐기고 그를 통해 행복하고 따뜻한 기억을 떠올리면서 자신의 시간을 되찾을 수 있기를 기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선하고 든든한 마음을 가진 이 시대의 ”키다리 아저씨“같다는 생각도 얼핏 들었다. 그가 작품을 통해 보여준 자신의 선한 마음씨는 밝고 순수하며, 희망적이고 현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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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날 거친 바닷가에 불어 닥치는 바람에 휘날리는 눈보라를 보면서 ‘혼돈 속의 무질서’를 읽는 것이 아니라 마치 “꽃”보라가 회오리치는 꽃의 아름다움을 전이하듯 눈보라의 향연을 더욱 빛나게 하는 ‘빛의 미학’으로 다시 그려내고 있다. 또한 꽃인 듯 잎새인 듯, 한 쪽으로 기울어 바람에 나부끼는 나무의 크고 작은 흰 점들은 마치 눈송이처럼 보이지만 석양 무렵 빛에 반사된 색채의 현란한 변용이다. 석양이 수평선에 걸치려는 순간에 요동하는 자연의 경이로운 모습을 재현하고 있는데, 빛나던 순간의 잔영이 남겨지는 늦은 오후 무렵의 서글프며 숙연한 작품이지만. 키가 큰 나무에 지어진 하얀 까치집이 걸려있고 빛의 조화로 밝은 코발트(cobalt) 색의 하늘과 흰색으로 보여지는 빛의 난무가 차분히 정돈되어 그려져 있으니 마음은 아늑해지고 편안한 기운이 느껴진다. 그리고 정 작가가 그려내는 전원은 향토적인 듯 모던(modern)한 듯 혼재되어 보여 진다. 최대한 단순화시킨 그림 속 대상들은 수사(修辭)를 피하여 절제하며 배치하였고, 바탕의 80%이상을 차지하는 금빛의 색채가 강렬히 타오르듯 버티고 있다. 곧게 뻗어 성장한 나무 몇 그루와 빨간 지붕의 작은 집 한 채, 아이 둘과 홀로 놀고 있는 강아지 한 마리, 단순한 구도와 배치이며, 동화적인 구성이지만 잔잔하며 강하게 마음을 자극하고 있다. 바탕을 채운 주 칼라인 황금빛에는 온통 자연의 것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을 터이다. 그 속에 자연의 생명과 인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한 영감을 느끼게 되면 마음은 조금씩 들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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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길 작가는 작은 점들을 모아 큰 나무를 만들고 숲을 이루게 한다. 나무에 속한, 나무가 만들어 내는 생명이 아름답게 살아있음을 표현해 내려는 작가의 생명 우선적인 mind를 읽을 수 있을 듯하다. 경탄하며 그 속에 빠져들면서도, 적절한 거리는 남겨두고 화폭에 옮겨 담는 순간에 그가 겪어냈을 감정들을 조절하고 절제하며 한 점씩 숱한 반복으로 찍어낸 자연수(自然樹)의 모습이 거대하게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의 작품에서는 정적인 정지된 대상에서도 분명 어떤 순간들이 지나가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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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작가가 봄을 이렇게 인상적으로 그려낼 수 있는 것에 놀랐다. 어떤 상징과 은유도 이를 넘어서긴 어려울 것이다. 쏟아지듯 하늘을 가득 메운 꽃무리가 불안정의 구도임에도 조금도 균형을 잃은 듯 여겨지지 않으며 오히려 든든히 버텨주면서 작품은 전체적으로 짜임새 있는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작가 자신 역시 들떠있는 듯 격앙된 감정을 표현하고자 하는데, 바다를 향해 달려들 듯 한 꽃바람은 그의 속내이기도 하고, 자신의 가슴속에 자리한 자연의 그 무엇도 이보다는 더 격정적일 수는 없을 것임을 고백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한다. 충격적인 감정을 순화하고 아름답게 매듭짓고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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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길 작가의 “기억”은 자신만의 기억거리는 아니다. 누구라도 가슴에 간직하고 있을 특별하고 행복한 기억일 것이다. 그러나 원래의 그 기억을 고스란히 그대로 간직하거나 확인하면서 살아가기란 삶이 녹록하지 않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그 ‘아름답고’ ‘행복한’ 기억만은 지켜내고 싶은 바람은 살아가는 것을 보람 있고 소중하게 여기는 일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작가는 이런 소박한 심정에서 자신의 기억을 하나 둘 끄집어내어 그려나가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는 기본적으로 일반적인 ‘투시원근법’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자신이 바라보려는 구도로 다소 재편하면서 화면에 배치하여 새로운 인상을 보이려고 한다. 따라서 ‘동화적’인 느낌이나 비현실적인 착시를 염두에 두며 시각적 묘사를 시도하려 하는데, 화가는 대상을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monitoring하여 색채와 형체, 자기만의 구도 설정을 이용하여 시각적 표상을 시도하는 것이라면, 장용길 화백은 이를 보다 더 자기화한 방식으로 완성하려 한다. 그는 분명 실존하는 대상의 실경을 바라보거나 떠올리고 있음에도 실경 그대로를 화폭으로 옮겨오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려는 대상에 속해 있는 여러 요소들을 분석하고 정리한 후 이를 해체하여 자신의 의도대로 재배열하는 식이다. 그리고 그 요소를 배치하고 재현하는 과정도 단순히 채색하고 명암을 주고 입체를 살려내는 단순한 방식이 아니라 한 땀 한 땀 천을 엮듯 스스로 고행의 과정을 겪어낸다. 때론 꽃송이가 한 점으로 그려지는 경우에 그 꽃의 완성미를 그대로 살려내지는 못해도 그 만한 힘과 에너지가 소요되는 듯 온갖 정성을 다하여 꽃잎을 찍어낸다. 그리고 그런 수많은 꽃잎들을 모두 개별적으로, 연속이 아닌 구분된 동작으로 붓을 찍어 그려내는 정성을 들이며 그 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꽃잎과 바람에 흐르는 꽃들의 물결, 한 겨울에 휘날리는 눈보라조차 마치 눈꽃이 바람에 흐트러지거나 휘날리는 듯이 꽃의 이미지를 그려내고 있다. 

이것은 자신이 그려내고 싶은 공간과 그를 채우는 스토리가 남다르다는 것이면서 그 의도를 보다 분명하게 표현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드러내려는 것이므로 대상을 화폭에 그려내기 이전에 연출에 대한 생각과 표현 방법에서도 그에 부합하는 차이가 나타나도록 하는 자기 방식을 철저히 고집한다는 의미이다. (강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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