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안쪽_15. 박이문의 『사물(事物)의 언어(言語)』
이미 고인이 된 박이문 교수의 책 『사물의 언어』를 다시 읽었다. 오래 전에 출판된 책이어서 지금은 절판된 책이고, 쉽게 구할 수도 없으니 희귀한 책이 되었을 수도 있다. 책의 제명은 『사물의 언어』인데, 「실존적 자서전」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철학교수의 자서전이라 그런가? “사물의 언어”라 하니 물적 존재와 현상을 탐구하는 인상을 주기도 하고, ‘사물(事物)’이라는 포괄적인 일반 언어가 묘하게도 미처 생각지 못한 특별한 인식을 유발할 것만 같은 인상을 주는 제명(題名)이었다.
이 책은 박교수께서 해외에 계실 때, 국내의 잡지사가 원고를 받아 연재한 글을 후에 단행본으로 출판한 것인데, 그런 스토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 박교수 자신의 적나라한 인생의 과정, 즉 어린 시절부터의 성장과 문학과 철학 등 학문에 천착하게 된 자신의 모든 부분들을 진솔하고도 꾸밈없이 그대로 드러낸 듯한 표현과 내용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적인 석학으로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워 할 지식인이라는 타이틀 보다는 인간적이고 친근하며 소탈한 면모와 더 이상 솔직할 수도 없을 만치 자신의 속살조차 그대로 드러내면서 자신의 인생 전반과 기본 바탕을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고백하는 그 자기 희생적 에세이에서 우선 인간적인 감명이 전해지는 글이요 책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독자들은 변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사고와 정신의 수용 틀이나 소통의 방식이 어쨌든 변화가 있을 것이다. 환경과 대상에서 대중들의 주 관심사가 바뀌었으니, 분명 예전과 지금은 달라질 수밖에 없을 텐데, 그래서 크게 염려할 일일지는 모르나, 나는 거의 40년 만에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오히려 예전의 익숙했던 과거로 돌아가 편안함을 느끼기도 하였으니, 나의 정체성은 도대체 무엇인가 싶기도 하였다. 조금도 나는 문제가 없었으나, 오늘날 독자들은 환경변화 탓에 어떤 반응을 하게 될지 조금은 염려가 되기도 하였다.
한편 나에게는 내가 처한 현실에 대한 나의 위기감이나 문제해결에 대한 고민과 관계없이 그저 이끌리는 관심과 체득된 기대감으로 책을 선택하고 기꺼이 다시 읽어보고 싶은 생각을 갖게 했으나, 세상이 달라지고 사람들의 관심대상이나 주제, 지식이나 텍스트를 받아들이는 방식 등이 달라졌으므로, 요즘의 독자들은 나와는 다르게 반응을 하게 될 것이다. 이미 철학교수, 프랑스 문학자 등에 대한 관심거리는 나와는 다른 식일 것이며, 아주 오래된 시절의 성장과정과 그 나름으로 성취해 가는 특별한 노력과정이라는 것도 요즘 사람들에게는 관심을 끌만한 일은 못 될 것이다. 또한 이런 오래 된 책조차 손에 쥘 수도 없거니와 내용조차 요즘과는 격차가 매우 크기도 하다.
어쨌거나, 나는 박이문 교수에 대한 40년 전의 기대에 변함없이 다시 그때로 돌아가 충분히 그 시절의 정서를 다시 느껴 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동안 꽤 긴 시간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도, 그 전의 과거를 지향하는 마음을 포기하지 않고 간직하고 있었다는 확인을 하게 된다. 여전히 박 교수의 책을 살 때의 정서, 그 때 이 분에 대하여 가졌던 호감과 기대, 그리고 존경심등을 그대로 지키고 유지하면서 지금 다시 그것을 확인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었다. 다만, 세월의 격차 탓에 그때에 읽으면서 느꼈을 정서나 감정 반응은 지금은 생각이 나지 않았으니, 그 당시에 내가 느낀 반응이 어땠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았기에 지금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또한 그때는 무조건적으로 대단하다고 느끼면서, 단지 나의 일방적인 판단과 인정하는 조건으로 이분에 대한 선망(羨望)과도 같은 마음으로 관심을 기울인 것이니, 나의 태도는 예전의 그때 주변 사람들의 일반적인 기대 수준이 아니기도 하다. 단지 나만의 관심으로 몇 권에 불과하지만 이 분이 저술한 책들을 사서 읽었던 것이었다. 왜 그랬는지의 명확한 이유는 제시하기 어려우나, 단지 이 분은 그 당시에도 현실의 조건에 머무르지 않고, 또한 20대의 나이에 명문여대의 교수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졌음에도 과감하게 자신의 뜻과 이상을 실현할 목적으로 불확실한 미래를 선택하였으며, 그러면서도 일정한 시간은 투자가 되었지만 거침없이 뜻을 이룬 것에 대한, 그리고 이어서 미국으로 건너가 프랑스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음에도 다시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철학 공부를 시작하고 결국 마무리한 후 미국의 대학에서 교수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연구 활동을 지속한 것 등, 이런 행보들이 그 당시 나라의 분위기나 조건들에 비추어 봤을 때,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남들은 현실을 고려하고 경제적인 문제와 사회적 지위를 따져가면서 손쉽고 타협적인 선택을 모색하기도 하는 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구차한(?) 현실의 문제는 거들떠도 안보는 사람으로 생각을 하게 하였었다. 나는 그저 이런 것을 포함하여, 잘 알 수는 없었으나, 저술한 책이나 내용들이 어느 정도는 차별적이면서 특별하였으며, 이분의 이미지 또한 그러하다고 생각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이번에 이 자서전을 다시 읽으니, 박이문 교수는 나름대로 평생을 고민하고 번뇌하면서 자신과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고 한탄하면서, “허무주의”라는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그리고 현실적인 문제 해결을 못하고 있는 자신에 대해, 자신의 능력으로 남을 돕거나 영향력을 주지 못한 것을 괴로워하면서 공부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던, 매우 나약한 측면을 꽤나 노출하면서 노력을 해 나간, 인간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공부를 잘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여 학자로서는 훌륭한 성과를 이루었고, 학문적 연구 성과도 적잖게 이룩한 성공적인 학자라고 할 수 있었음에도, 가족 속에서의 자신은 가족 구성원들을 위해 무언가 가족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고 보답하지 못한 것에, 사회와 나라를 위해 직접적으로 기여하거나 남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것을 괴로워하기 까지 한, 나름으로는 상처가 있는 인간적인 사람이었으며 평생을 건강하지 못하여 병마와 싸우고 허약한 육체로 인하여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하였었다. 그러나 자신이 해야 하고, 하고 싶은 공부를 위해서는 최선을 다한, 그래서 제대로 공부하고 그 공부한 결과를 전달하고 남기기 위해 교수로서 학자로서 강의와 연구에 열심히 몰두한 분이었다.
아무튼 내가 서른 살이었을 때, 구입하였던 그 책을 무려 그 나이보다 더 세월이 지난 뒤인 최근에 다시 읽으면서 한 인간의 일대기를, 그의 꾸밈이 없이 솔직하고 세세하게 기록한 자서전을 다시 읽으면서 시대와 시류와 상관없이 순수하게 학자이자 예술가의 생애를 살아간 박이문의 진지하고 뜻있고 뛰어난 삶을 간접 체험할 수 있었다. 여러 생각을 하게 하였지만, 인간의 생애란 다양한 모습으로 제 각각 주어진 삶을 살다가 가는 것이며, 그것이 문학이 되었든, 철학이 되었든 다른 어떤 분야가 되었든, 그에게 주어진 삶의 궤적을 그대로 따르며 자신마다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한편 나는 박이문 교수가 외국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외국 대학에서 교수로서 학자로서 활동하였던 것을 중시하면서, 일견 외부에 비쳐진 모습과 성과에 관심을 기울인 측면도 있었다. 그리고 문학과 철학을 연구하고, 문학작품을 창작하는 작가로서의 능력과 역할을 발휘한 것을 존중한 것이지만, 이번에는 박이문 교수가 보여 준 삶에 대한 태도와 그 과정을 보면서 비록 박이문과 같은 경우는 아닐 지라도 어떤 분야에서든 이런 식으로 최선을 다하면서 자신이 세운 뜻과 목표, 자신이 추구한 삶의 가치를 실현하려는 삶을 꾸준히 살아가는 인생에 대해서는 모두 그 삶 자체를 존중하고 존경하게 될 것이며, 단지 이룩한 성과에 대한 것 보다 오히려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자, 알아내고자 애쓰는 삶의 태도와 그것을 환경의 어떤 조건들이 장애가 된다 한 들 부딪히거나 돌파하며 매달리는 삶에 투철한 모습이 더 눈에 들어왔다. 결국 박이문도 그런 과정에서 자신이 노력한 결과로서의 성과가 나온 것이고, 그런 과정에서 보다 더 나은 무언가를 터득하면서 자신의 삶을 완성해 갈 수 있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