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안쪽_22.
1.
난 이런 제목에 끌렸다.
사평역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어느 시골의 작은 간이역쯤 될 것이고, 왠지 처연하고 서글프고, 그러나 살아있고 살아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어딘가로, 또는 집으로 가기위해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역이 연상되었다. 그 역에서 본인 스스로에 감정이입을 하던, 역 안에 있는 사람들을 관찰하던, 그래도 정겹게 바라보는 시인의 눈이 연상되는 그런 제목.
『사평역에서』는 27살의 곽재구 시인이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을 때 선정된 작품이다.
20대 초반이었던 나는 이 시의 당선을 알리는 신문에서 이 시를 읽고 시 자체에 대한 감상에 매달리면서도 이 시인을 부러워했었음을 고백한다. 당선된 것에 대해, 이런 감성을 충분히 감당하고 이렇게 시를 완성한 곽재구 시인에 대해 난 솔직히 부러웠다. 젯밥에 관심을 두 듯, 시와 시인의 문학보다 이 시의 당선과 관련한 외연外緣에 더 이끌렸다. 그러면서도 이런 감상이 그때는 왜 내게 절실히 다가왔는지.
젊은 감성이 그런 가 싶다. 어디로 떠나거나, 외롭고 측은한 것에 연민을 느끼거나, 개인의 특성이기도 하겠지만 나의 젊은 날에 나의 감성은 이런 쪽에 기울어 있었던 것 같다. 활기와 힘에 넘치는 의욕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 맞을 듯한 젊음의 시기를 나는 왜 그리 보내고 있었을 까.
오히려 곽재구는 막차를 기다리는 작은 간이역의 스산하고, 아니 춥고 싸늘한 늦은 밤의 쓸쓸한 풍경을 의외로 따사롭게 묘사해 놓고 있다. 피곤에 절고 고단하고 무기력한 마당에 무엇 하나 삶의 의욕이란 찾기 힘들고, 그저 어서 집으로 돌아가 춥고 배고프며, 특히나 지쳐버린 몸을 쉬고 싶은 마음뿐인 사람들에게서, 고작 몇 명 정도의 사람이 있을 뿐인 썰렁했을 대합실 안을 이처럼 차갑지 않게 그려내고 있으니, 젊은 시인의 감성은 나름 넉넉하게 너그러웠을 것으로 여겨진다.
곽재구의 시선으로 인해 작은 간이역의 대합실은 이렇게 절망적이거나 비참한 정서가 느껴지는 곳이 아닌 그립고 보고 싶은 사람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갈 수 있는 희망과 기다림의 장소로 다시 그려지고 있다. 아직은 조금 더 가야하니 시간이 걸리겠지만, 시골의 간이역이란 이미 목적지에 거의 다 와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을 것이니, 정겹고 편하고 친근한 곳이다. 잠시 뒤에는, 그동안의 지치고 허기진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다는 기다림이 있는 곳이 대합실이기도 한 것이다. 조금만 기다리면, 조금만 견뎌내면 곧 편안한 휴식의 장소로, 그리운 이들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는, 거의 다 와 있는 그런 지점의 간이역으로 그려내고 있다.
2.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저 마다의 “사평역”이 하나쯤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그 이전에 있었던 과거에서부터 지금을 지나 내일로 가는 길목에서의 정거장이 하나쯤 말이다. 때로는 쓸쓸하고 외롭다. 막막하고 무기력하다. 간혹 그리움의 대상들이, 그 순간들이 떠올려지지만, 그 이야기들은 지금에서는 누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지금이 힘들고, 지금에 몰입할 것들이 있을 뿐, 다만 그것은 내가 당장에 가야 할 안식처이거나 고향이거나, 아마 그럴 것이다. 지금 나는 쉼이 필요할 뿐이니, 잠시 묻어둘지언정, 그 어느 것도 의욕으로 살아나지 않는다.
이때 시인 곽재구는 “밤새 송이 눈이 내리는 대합실 밖에서, 흰보라 수수꽃이 눈 시린 유리창을 통해” 톱밥난로가 타오르는 대합실안의 불빛을 바라본다. 그래서 한 겨울의 대합실 안은 따뜻하고 아늑하다. 이런 구도로 보면, 막차를 기다리는 현실의 대합실 안보다 대합실 밖에서 들어다 보이는 대합실 안의 실루엣에서 정겨움이 더욱 느껴진다.
비록,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서운하고 낙심하여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무겁기만 하지만, 여전히 오늘의 일은 불만족하고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크기만 하고, 원하는 것들이 완결되지 못하고 남겨짐으로 해서 나는 조금은 더 곤궁해지고 있지만, 그래도 돌아갈 곳을 향해 기다리는 심정은 절망적이지 않다. 과거에서 온 시간이 지금을 거쳐 얼마 후에는 맛볼 수 있는 휴식과 위로를 생각하며, “눈꽃의 화음에 소리 죽여 귀를 적시며”, 귀를 기울이면서 잠시 나를 내려놓는 듯이 여겨지면서. 곽재구는 현실의 이미지가 투사된 대합실을 안과 밖으로 구분하여 그려보며, 삶의 내적 토양을 일구고자 한다. 결국 기대한 삶의 현실은 지치고 낙심하여 쇠락하고 초라하게 드러날 지라도 인간의 내면에서 자라나고 있는 새로운 기운을 기대하면서, 혹시라도 “지난날의 그리웠던 순간들”을 오버랩하면서 삶의 본 모습을 한 번 더 기대해 볼 수 있기를 모두에게 또는 자신에게 위로와 염원을 담아보려 한다. 그가 흘리는 눈물은 연민과 슬픔의 눈물만은 아닐 것이다. 생애를 통하여 우리가 떠나야 할 삶의 여정을 향한 카타르시스의 눈물이며, 타오르는 불빛에 붓는 기름과도 같은 생기의 원천일 것이다.
젊은 시인은 자신의 가슴에 담아 두게 된 인생의 교차역에서 한 겨울, 텅 빈 간이역 대합실의 냉기를 따뜻한 온기로 채워 놓고자 하였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시간속의 고비마다 겪을 수많은 희비 속의 삶은 이렇게 구차하게 엇갈리기도 하고, 쓸쓸하고 힘겹고, 때론 절망적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또한 늘 떠나고 다시 만나고를 반복하면서 그 어느 것도 머무르게 하지는 않으면서 살아간다. 그러던 중에 기다리던 기차는 어느 순간에 나타나고, 그 기차는 곧 이곳으로부터 나를 벗어나게 해줄 것이다. 그리고 기차는 지난날을 그리워할 순간으로 돌려놓는 시간이동처럼 나를 ‘언젠가’로 데려가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