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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화석 Oct 19. 2024

오늘은 갤러리 산책가는 날.22

김임순의 첫 개인전, '갈망과 치유의 산수화'

갤러리 라메르(1층 2전시실), 2024 10/9~10/15     


한국화가 김임순의 첫 개인전이 10월 9일(수)부터 15일(화)까지 갤러리 라메르 1층 2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김 화가의 전시를 보면서 언뜻, “갈망과 치유”라는 주제어가 떠올랐다. 정통 산수화에 가까운 작품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떠오른 것은 ‘왜’ 일까? 필자도 이유를 곧 바로 댈 만큼 알 수는 없으나, 이런 감흥을 느끼며 작품들을 관찰하듯 비교적 세심히 살펴보았다. 

김임순 작가는 강원도 영월에 거주하며 활동하는 화가인데, 참으로 복 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강원도는 ‘산천경개(山川景槪)’ 좋기로 소문난 곳이 아닌가? 어느 곳이든 화구를 펼치면 곧 그림이 나올 경치들이 부지기수이니 당연히 좋은 작품을 창작할 기회가 보다 많을 터였다. 


한편 작가들은 자신의 내면을 단련하며 성장시키고, 또 절제하면서 ‘마음의 눈’으로 자연을 이입하여 작품을 완성하려 하는데, 눈앞에 보이는 아름다운 경치라 하여 그대로 실경을 그려내지는 않는다. 자연의 모든 생물들이 온갖 풍파와 고초를 나름으로 견뎌 내면서 그 속에서 갈등과 대립, 조정과 화해를 이루어 내며 자신의 존재를 이끌며 유지하듯, 작가 역시 이러한 사고와 행동에의 접촉이나 경우가 다반사일 것은 자명한 일 아닌가? 화가는 이러한 자연 속에서 대상을 선택하고 그것들과 교감하면서 자신의 창조적 생명을 불어넣는 일을 하는 것이니, 불현듯 필자가 “갈망과 치유”를 떠올렸다는 것이 전혀 뜬금없는 일은 아닌 것이다. 

분명 화가는 균형과 조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말에 관련 없다고 할 수 없다면, 스스로 자신의 삶의 위치에서 혹시라도 비현실적인 이상향에 대한 갈망을 느끼지 않았을 리 없고, 그 갈망은 피하기도 어려운 법이다. 또한 무엇이든 마주하는 이상(理想)에 대해 내 던지거나 굴복할 수도 없는 험난한 현실을 버티면서 지나는 도중이니, 넘어 설 이상향이 내 마음속에 있다고 한다면 「몽유도원도」나 「인왕제색도」가 아니라도, 다가갈 수 있고 늘 인접해 있기도 한 그곳에서 내 마음으로 치유해 내면서 자신 안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한국화는 자연을 만물의 본성(本性)을 지닌 이상적인 대상으로 여기며 자연과의 동화(同化)를 꿈꾸는 소통의 산물이요, 자신을 내 맡기는 깊은 성찰을 필요로 한다. 또한 전통 문인산수화, 진경산수화로 대변되는 한국화의 정신이며 가치 자체는 곧 자연이라는 변치 않는 신성한 이상향으로의 귀의(歸依)나 그 행위를 대신해보는 노력을 담아내려고 한다.

우리가 기억하는 한국화의 진수는 곧 자연을 대상으로 하되 눈앞에 펼쳐진 산수를 그대로 화폭에 담거나 재현하려는 것이 아닌, 마음으로 담아낸 경치나 자연의 진경을 그려낸 것이다. 이를 통해 자신의 꿈과 이상, 그를 대신하는 정신과 사상을 시각적으로 표상하고자 한다.

현대에 와서는 과거 선비문인들이 추구했던 정신적 토대나 사상의 구현은 결을 달리할 만큼 변화가 있었다 해도, 오랜 세월 깊이 내재한 뿌리와 맥이 쉽사리 변질되거나 달라지긴 어렵다. 따라서 오늘날의 문인산수화의 정신과 구현의지는 어느 정도 맥을 유지하거나 찾아보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고 할 수 있다.

과거에 화법이나 기교에 있어서 전문 화공들의 실력이 문인선비들 보다 뛰어났다고 해도 그림이 담아내고 있는 정신적 깊이에 있어 전문 화공들이 따르기는 어려웠기에 굳이 질적 가치에 차등을 두는 것이 불가피 했다고 할 수 있었으나, 오늘날에 이르는 동안 이런 부분들이 서로 합쳐지거나 보완되었다는 측면과 더불어 시대의 변화로 인해 자연스럽게 새로운 작법과 실험적 시도들을 통해 변화를 거듭해 왔으니, 한국화를 바라보는 관점과 기대치는 달라졌다는 것은 분명할 것이다. 

필자가 이런 내용을 굳이 정리한 까닭은 김임순 화가의 첫 번째 한국화 개인전을 보면서 전통 산수화의 정신과 풍취를 엿볼 수 있으면서도 현대에 통용되거나 적절히 어울리는 화풍과 분위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즉 전통의 맛과 멋이 현대적인 채색이나 치장에도 불구하고 어느 쪽에서나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있다는 반가운 마음이 들었기에 현대적인 한국화의 바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하였다. 

김 작가의 작품들은 여류작가(굳이 이를 의식하려는 것은 아니다)임에도 자연과의 어울림이나 수용하는 품은 의젓하고 무게감이 있으며, 화려하지 않으나 세련되었고, 세밀하지만 연약하지 않은 균형감이 전해진다. 즉 문인선비들의 태도처럼 자연에의 경건함이 있으나, 따뜻하고 정감이 넘치며 안정적이고 편안한 느낌을 주고 있으니, 작품들이 대체로 여유가 있고 너그럽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화폭을 적절히 채우는 알찬 느낌과 함께 수사(修辭)의 미학에서도 소홀함이 없다. 이는 수사(修辭)를 추구하면서도 한국화의 여백의 미를 최대한 잃지 않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한편 한국화는 작화에 있어 서양화와는 달리 원근법이나 준법(皴法)에서 차이가 드러나는데, 김 작가의 작품들은 어느 정도는 서양화의 투시원근법의 기본을 따르며 구도를 설정하고 있다. 이 또한 작품들을 익숙한 듯 새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인상을 주고 있고, 이를 통해 오히려 사물들이 조화롭고 균형적으로 보여 진다. 즉 김 작가의 작품들은 투시원근법에 익숙한 오늘날의 독자들에게는 편안하고 안정감을 줄 수도 있으며, 전통 산수화의 과장과 강조를 부각하는 한국화적 구도와 달리 현대적 시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김 작가의 작품들 중 『청령포의 관음송』과 『보덕사의 겨울』등은 대담하면서 웅대하다. 대상을 대하는 시각이 예사롭지 않으며, 한편 지나치지 않고 단정하며 정갈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와인잔 폭포의 여름』은 실경(實景)의 묘한 조화가 인상적인데, 중경에 배치한 양쪽의 바위산 사이로 작은 폭포가 떨어지고 이어 흐르는 개울이 만들어내는 작지만, 산수의 조화가 있는 경치이다. 이를 작가는 안정적인 구도로 화폭에 배치하여 편안한 필묵으로 그려낸다. 『문개실의 겨울』, 『선돌』, 『문개실 가는 길』 등은 대상에 대한 관조와 자연에 어울리는 넉넉한 감성을 기백 있게 드러내는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대부분의 전시작품들은 수작이라 할 만하며, 두드러지지 않으면서도 흠 잡을 데 없이 끌리는 매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임순 화가가 이번 기회를 통해 보여준 예술세계는 조금은 조심스럽게 자신을 내려놓고 있다는 인상도 든다. 아무래도 첫 개인전이라는 부담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다음 번 전시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조금은 더 완숙해 질 것이고, 자신을 보다 더 드러내려 할 것이며, 나아가 자신의 역량을 돋보이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기량은 보다 절차탁마(切磋琢磨) 하게 될 것이다. 

자주 독자(관람자)와 만나고 상호적인 예술적 교감을 나누려는 것은 삶을 윤택하게 할 뿐 아니라 인간 세상의 어려움을 극복하거나 치유하는 데 많은 보탬이 될 수 있으니 매우 뜻이 좋은 일인 것이다. (강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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