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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갤러리 산책가는 날.7

'사로잡힌 희망(Captives of Hope)' 특별전

by 강화석

《사로잡한 희망(Captives of Hope)》 “희망과 기도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강렬한 염원”


인사동 갤러리 은(Gallery Eun)에서는 6/26부터 7/1까지 특별한 전시가 열렸다.


“사로잡힌 희망(Captives of Hope)”이라는 주제로 이스라엘 대사관이 주최하는 전시인데, 2023년 10월 하마스(Hamas,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내 저항단체)가 기습적으로 이스라엘 영토를 침입하여 민간인들을 다수 살해하고 인질로 납치해 간 사건에 대한 내용을 작품화한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들을 통하여 납치되어간 인질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국민적 애도와 그들의 안전과 무사귀환을 염원하는 한편 세계인들에게 이를 알리고 자신들의 현재 상황에 대한 이해와 동조를 이끌어 내고자 하는 바람을 담고 있는 전시라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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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보기에도 전시의 의도와 분위기가 느껴져 마음은 우울하고 무거워진다. 휑한 실내공간의 느낌이나 잔잔히 흐르며 마음을 울리는 음악소리까지 필자를 휘감듯 슬프게 하였다. 결국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에서 희생당한 민간인들, 특히 나약하고 여린 어린아이들과 여성들, 노약자들이 고스란히 당한 참상과 나아가 인질로 납치되어가기 까지 하였는데, 이러한 참혹한 현실을 화폭에 담아, 전쟁당사자들의 입장이 아닌, 민간차원에서의 해결방안은 없을 지를 예술가들이 모색해 보려는 전시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필자는 오래전, 19세기 초 프로이센의 장군, 전쟁과학연구가 『클라우제비츠』가 쓴 「전쟁론」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전쟁이란, 물리적 폭력이라는 전쟁수단을 이용하여 상대(적)의 의지를 제압하려는 목적행위이며, 이 목적을 확실하게 달성하기 위해 상대(적)를 무장해제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이론상 전쟁의 고유 목표이다.” 나아가 “인도주의자들은 지나치게 많은 사상자를 유발하지 않고 적을 교묘하게 무장해제 시키거나 타도할 수 있다고 쉽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자비로운 마음에서 생겨난 인식의 오류가 최악의 것이기 때문”이라고 덧 붙였다.

이처럼 전쟁 자체는 무자비하고 지독한 폭력이며 야만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거대한 괴물인 것이다. 그 누구라도 자비는 없으며, 오로지 자신들의 승리만을 위해 상대는 그 누구라도 제압의 대상일 뿐이다.

필자는 경험한 일은 없으나, 우리나라도 수많은 전쟁에 휘말린 적이 있다. 결국 희생당한 것은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 뿐 아니라, 애꿎은 수많은 국민들이었다. 죽음을 당하고, 심각한 부상을 입고, 또한 적국에 인질로 끌려가 제대로 된 인간의 삶을 영위할 수도 없었다. 전쟁의 비극, 참혹한 실상 그 자체이며, 이는 서로 싸운 두 나라의 모두가 겪는 참상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전쟁은 인간들에게는 불가피한 것인 듯, 인간의 역사에서 여전히 반복되며 지금껏 유지되고 있는 중이다. 자국의 입장에서는 승리를 기원하고 갈망한다. 상대국의 피해는 당연히 안중에도 없다. 이는 내가 살기위해 적을 물리쳐야 하는 전쟁의 기본구조 탓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원죄적인 잔인성과 폭력성에 기인하기도 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대승적으로 인간에 대한 존엄성과 생명의 존귀함을 부르짖는다 해도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일 뿐, 전쟁의 원리는 피해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대사관에서 주최하는 이 전시회는 우리의 마음을 울린다. 피해자들이 제각각 안고 있는 개인적인 스토리텔링(Story telling)이 전쟁의 피해당사자가 되면서 벌어진 안타까운 현실을 어찌 되돌릴 수 있는가? 이제는 그들이 무사히 살아있거나, 무슨 일이 있더라도 가족 품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그래서 그들의 남은 꿈을 이루고, 그나마 행복한 삶을 이어갈 수 있기를 바라는, 어쩌면 소박하기 만한 바람과 염원을 담아 기도할 뿐이다.

오래전 피카소가 자신의 나라 스페인에서 일어난 참상을 그림으로 그려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은 바 있었다. 그 유명한 "게르니카(Guernica)"이다. 당시 스페인의 독재자 프랑코의 승인아래 저질러진 독일군의 폭탄공격으로 스페인의 도시 “게르니카(Guernica)”가 당한 처참한 일을 기억하고 폭로하려는 의도로 그려진 이 그림은 예술가로서 세상에 자신의 힘과 역할을 발휘한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그림에 담긴 끔찍하고 처참한 장면이 오히려 예술로 승화하여 영원히 기억되고 그 의도를 되새기게 한다.

그러나 지금도 되풀이되지 말기를 바라는, 인간에 의해 저질러지는 이런 잔인하고 어리석은 행위는 반복되고 있다. 비통하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인간의 존재가 가진 본질이다. 누구의 잘,잘못도 가려지지 못한다. 공격하는 자나, 당하는 자나 모두 앞 뒤의 차이만 있을 뿐, 그 어느 입장에서도 물러서지 않으며 지지하고 승리를 기원할 뿐이다. 한편 과거에 당했던 하마스의 입장은 어떤가? 바로 선악의 구별문제가 아닌 상황이다. 또한 우리나라가 이스라엘과 보다 더 우방관계이니 어느 쪽을 더 편드는 문제에 대한 것도 아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신의 불량품이라 할 인간의 잔인한 욕망과 무분별한 당위성에 따른 결단으로 여전히 갈등을, 반목을, 대립을 극복하지 못하는 근원적인 미해결 능력에 대하여 통한의 자성기회를 가져볼 뿐, 그저 인도주의적으로, 신의 가호로 내 사랑하는 이들의 안전과 무사 귀환을 바라며 기도할 뿐인 상황에 함께 마음을 기울여보기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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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명의 이스라엘 예술가들은 비통한 심정으로 작품을 완성하여 출품하였다. 표현된 작품의 이면에 담긴 깊은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해도 작가들의 심정만 할까? 쉽사리 제목조차 붙일 수 없었던 그들의 통한(痛恨)을 간접적으로 전해 받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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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 피셔(Women want peace)

“Women want peace” 이 말은 간결하지만, 깊은 울림이 있다. 다만 여성들은 평화를 원할 뿐이다. 생명의 어머니요, 인간을 잉태한 위대한 생산자인 여성이 고통을 받고 있다. 인간의 탐욕과 더러운 정복욕이 인간을 욕되게 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平和(평화)”를 원할 뿐이다. 또한 순백의 아이들은 무슨 죄인가? 어리석은 어른들의 전쟁 놀음에 그들의 아름다운 미래와 행복한 꿈은 좌절되었다. 이를 도대체 어찌 할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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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렌 쉬필셔(사걀에 대한 헌정, ‘아비뇽의 여인들’에 대한 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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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안 부(Last d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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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웃 아시미니(이것은 모자가 아니다)


케렌 쉬필셔(Keren Shpilsher)라는 작가는 「사걀에 대한 헌정」과 「‘아비뇽의 여인들’에 대한 헌정」이라는 작품을 출품하였다. 20세기에 생존한 세계최고의 두 화가에 대한 헌정을 전제로 작품을 그렸다. 대부분 알고 있듯, 사걀은 러시아에서 출생한 유태인이며, 피카소는 전쟁의 끔찍함을 자신의 입체주의적(Cubism) 화풍으로 그려 반전과 평화를 세상에 전파하려 한 위대한 예술가이다. 이들의 예술에 대한 헌신과 인간과 생명에 대한 소중한 마음을 지금 이 순간 떠올리려한 작가의 간절한 뜻이 읽혀진다. 마리안 부(Marian Boo)의 「마지막 춤」은 보는 독자들을 눈물짓게 할 것이다. 아이를 업은 엄마, 군복을 입은 여군, 임신한 상태의 여인 등이 서로 손을 잡고 춤을 추고 있다. 온몸에 피가 흐르고 이미 고통스런 상태에 있지만, 이들은 서로 손을 잡고 춤을 추며 인간 본연의 모습을 잃지 않으며, 나아가 희망조차 포기하지 않으려는 정신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생텍쥐베리》의 「어린왕자」를 잘 알고 있으며, 그 소설에 나오는 코끼리를 잡아먹은 “보아뱀”의 이야기를 기억한다. 레웃 아시미니(Reut Asimini) 작가는 「이것은 모자가 아니다(This is not a hat)」라는 작품에서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 어린아이를 감싸고 몸을 숨긴 어머니의 모습이 담긴 모자 그림을 완성하였다. 자신의 목숨보다 아이를 생각하는 위대한 어머니를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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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당장에 이들을 구원하고 더 이상의 참화는 멈춰져야 하며, 전쟁이란 수단을 통해 얻고자 하는 목적을 또 다른 방법으로 찾을 수 있는 인간의 지혜에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하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것이 전쟁 자체가 가진 본질을 모르는 순진한(naive) 생각에 그칠지라도, 평화의 메시지는 평화로 향하는 방법을 통하여 결국은 얻어질 것이라는 결론은 어렵지 않다. 문제는 이미 수천년 동안 이런 식으로 밖에는 자신을 지킬 방법을 찾지 못한 인간의 근본적 어리석음이 문제일 뿐이다.


서울 인사동에서 7월1일까지인 이 특별한 전시를 보면서, 필자의 복잡하며 헛헛한 심정으로는 그 어떤 지혜로운 생각도 끄집어내기 어려웠다. 다만 “나는 언제나 신을 사랑하오니, 불쌍한 처지에 있는 이들을 어여삐 여겨 구원을 주소서”하는 막연한 기도를 두 손 모아 해볼 뿐이었다. (강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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