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화'가 났나요?

감정탐색 page.03

by 바다별다락방
화나다:
성이 나서 화기(火氣)가 생기다.
화:
몹시 못마땅하거나 언짢아서 나는 성.

표준국어대사전


여기 한 여성이 있다. 그녀는 설거지를 하는 도중 별안간 울컥, 화를 낸다. 남편과 자녀들의 도움은 바라지도 않았지만 밥을 먹자마자 다들 제 방으로 쏙 들어가 버리는 모습에 울화가 치민다. 여기 한 남성도 있다. 월요일 아침 출근길, 옆차선에 있던 차가 깜빡이도 켜지 않은 채 냅다 그의 앞으로 끼어든다. 괜스레 짜증이 솟구친다.


본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울컥함은 가라앉게 되어있다. 그런데 가라앉기만 하고, 흘러가지 않은 채 한 방울씩 쌓인 화는 유리컵 속의 물처럼 찰랑찰랑하다가 이내 넘쳐버린다. 그리고 넘쳐버린 물은 다시 주워 담을 방법이 없다.


화는 곧 대인관계 문제로 돌아오게 되는데 주로 "저 쿵쾅이 저거, 몹쓸 사람이야."라던지, "저 사람 그냥 무시해."와 같은 반응들을 주변에서 보게 될 것이다. 반대로 그 화를 나에게 퍼붓고 나면 그야말로 '화병' 즉 병이 생긴다. 신체의 아래로 내려가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해주어야 할 화기가 가슴에 모이고 어깨와 뒷목을 타고 올라와 머리까지 아프게 만든다.




동의보감에서 화는 간의 기능과 연관이 있다고 했다. 간이 허약해지면 우울증이 생기고, 짜증을 잘내며, 강박이나 결벽증을 보인다고 쓰여있다. 말하자면 유연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또한 자신이 생각한 것이 뜻대로 되지 않거나 예기치 않은 상황에 놓일 때에는 매우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그러나 건강한 간, 건강한 목(木)의 성질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며 변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양새를 한다.


우리는 보통 자신의 뜻과는 다른 방식으로 일이 갑작스럽게 이루어질 때, 처음에는 흠칫 놀라다 점차 그것이 화나는 감정으로 바뀌는 것을 경험한다. 또한 누군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나의 존재가 무시당한다고 느낄 때 슬그머니 화가 올라온다. 개인적으로 화는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감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화는 마치 어린아이 와도 같다. 지금 나는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하고, 몹시도 사랑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외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껍데기는 누군가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


그렇게 우리의 표면적 태도는 '나는 화가 나있어. 그러니까 네가 먼저 다가와서 내 화를 좀 풀어줘.'라는 뻣뻣한 자세를 유지한다. 그러나 마음속 어린아이는 이렇게 속삭인다. '나는 네가 내 맘을 조금만 알아줬으면 좋겠어. 왜 내 마음을 몰라주는 거야. 근데 내가 이렇게 화를 내면 떠날 거야?' 어린아이는 그 마음을 불안과 두려움으로 전환시킨다.




그렇다면 이렇게 연약하고도 두려운 화를 어떻게 다스릴까. 억눌리고 뭉쳐버려 표현하지 못하고 쌓인 화는 반드시 몸과 연결되어 있다. 화는 우리의 생각 이전에 몸의 반응이다. 화, 두려움과 같은 어둠의 감정이 올라올 때 우리의 몸은 현재의 상황에서 도망치거나 대응하기 위해 혈액을 근육으로 보낸다. 근육을 경직시키는 것이다.


그렇기에 화가 올라올 때, 우리는 우리의 몸을 찬찬히 읽어줄 필요가 있다. 우선 지금 이 순간 몸의 어디가 불편한지 알아차린다. 그리고 그곳을 향해 숨을 불어넣어 준다. 의식적으로 그곳을 향해 인공호흡을 해준다고 생각하면 한결 편하다. 심장이 빨리 뛰고 있다면 심장을 향해 숨을 불어넣어 준다고 심상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불편한 곳을 말로 표현해 본다. 틱낫한 스님은 저서 [화]에서 3단계의 소통법을 얘기한다.


하나, 나 화났어. 마음이 몹시 아파.
둘,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어.
셋, 제발 날 도와줘.


저자는 이 세 가지 말을 전하는 것이야말로 참사랑이라고 했다.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는 숙련된 사랑의 언어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비단 타인과의 관계에서만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이 방법은 나와의 관계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된다. 돌려 말하지 않고 내 진심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 타인에게도 진심으로 도움을 요청할 수 있고, 나 자신에게도 그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은 한결 편해진다.


화는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그어야 할 선을 알려주는 좋은 이정표이다. 또한 지금의 나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에 관한 힌트를 제공한다. 화가 자주 난다면 지금의 그 '불편한 상태'에 빠지기보다 "아 나는 이럴 때 화가 나는구나."하고 알아차려주면 어떨까. 더불어 화를 적절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그저 성을 내는 것이, 사랑하는 자신을 지키는 것보다 중요한 일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길 권한다. 분명 그 시작에서부터 해답을 찾게 될 것이다.





허준.(1610). 동의보감. 한국학자료원

틱낫한.(2013). 화. 명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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