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이야기

감정탐색 page.05 -'03에 덧붙임 글'

by 바다별다락방
분노:
분개하여 몹시 성을 냄, 또는 그렇게 내는 성.

표준국어대사전


마음 안에서 화를 만난다. 그리고 스스로 알아차릴 새도 없이 분노가 된 화를 누군가에게 들키고 만다. 얼굴이 붉어지는 까닭은 스스로의 민낯을 들켰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그 감정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남는 건 분노가 아니다. 또다시 얼굴이 붉어진다. 민낯을 들켜버린 뒤에는 분노에 대하여 분노하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분노는 부끄러움과 맞닿아있다. 나의 분노는 타인에게 전달되고, 그 후 나의 인격의 깊이는 공공연히 드러난다. 부끄러움에 못 이겨 괴로워할 때쯤 또다시 분노하는 것을 반복한다. 우리는 마음속의 분노를 줄곧 회피한다. 아니, 꽤 자주 무시한다. 그리고는 기어코 또 한 번 얼굴 붉힐 짓을 하고야 만다. 이제는 부끄러움의 붉음인지 분노의 붉음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우리에게는 분노를 만나 당당히 그 분노와 눈을 맞추는 용기가 필요하다. 왜 그림책 <괴물들이 사는 나라>가 오랫동안 어린이들에게 금서가 되었을까. '어린이들은 좋은 것을 봐야 하고, 아름다운 것만을 좋아해야 한다. 그것이 어린이다'라는 어른들의 오랜 편견과 고집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어린이를 포함한 인간 내면에 깃든 폭력성과 분노를 고스란히 인정한다. 괴물이 되는 것은 그리 나쁜 것이 아니었음을.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음을. 분노와 실컷 놀아준 주인공은 이제 더없이 평온하다. 그리고 이 작품은 금기를 깨고 베스트셀러가 된다.


다운로드.jpg 주인공 맥스의 괴물 나라로의 여행을 그린 그림책 작품 <괴물들이 사는 나라>



인간이 대대손손 전해주고자 했던 것은 여태껏 '긍정'에 국한되어 있었다. 아마도 '부정'을 전달하기에 조금은 부끄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부정을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한 긍정은 결국 사고를 치고 만다. 부정성을 인정한 긍정성이야말로 건강하고 완벽한 예술이다. 적어도 나의 붉음이 부끄러움인지, 분노인지 스스로 인지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인간 본연의 모습, 즉 살아있음의 완성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날 밤에 맥스는 제 방으로 돌아왔어.
저녁밥이 맥스를 기다리고 있었지.
저녁밥은 아직도 따뜻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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