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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칼립투스 Jul 14. 2021

사는 것이 너무 가혹할 때

지옥 넘어 저 편에 나를 기다리는 것은

휴일 오전, 남편이 39도 열을 보였다. 서둘러 선별 진료소에 보내고는, 안방에 있는 내 물건들을 꺼내 두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순진하게, 이전에 몇 번 그랬던 것처럼, 장염이겠거니 생각했다.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5일 전 함께 골프를 친 후배의 확진을 알게 되었고, 다음날 오전, 남편 역시 양성 통보를 받고 시설에 들어갔다. 곧바로 받은 PCR 검사에서 아들과 난 음성이 나왔고, 별 증상 없이 2주 격리가 끝나는 듯했다. 하지만 인생은 역시나 나에게 친절하지 않았고, 격리 해제를 3일 앞두고 기어이 확진이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한 달 전 일이다. 


하루아침에, 인생이 신파가 되었다. 똥 싼 놈이 성낸다고, 남편은 본인 격리 끝나기가 무섭게 술에 취해 집에 와서는 난동을 부리고, 아들은 친구들에게 따돌림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조용히 지내다 두 달 전 직원이 많은 회사로 옮긴 나하고는 비할 바가 못 되었다. 난 마치, 에이즈 환자처럼 영원한 기피 대상일 뿐 아니라, 사소한 일로 수차례 정치적인 낭자를 당해야만 했다. 격리가 끝나고 한 달이 지나도록,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공격하는 것만 같아, 마주할 용기가 서지 않는다. 


코너에 몰리면 짚 푸라 기라도 잡고 싶은 게 사람 심정이라고. 오래전 상담받던 정신과 예약을 잡았다. 반갑게 인사하고 자리에 앉으려던 차, 의사 선생님이 한 마디 던진다. "확진된 사람은 격리 해제가 되어도 PCR 음성 결과받기 전에는 치료해줄 수 없다"라고. 


나 역시도 확진이 된 후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첫 증상 후 열흘이 지나면 전염성이 없어져서 격리 해제가 되는 것이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기준이고, PCR 검사가 유전자 증폭 검사이기 때문에 바이러스의 흔적 또는 사체가 남아 격리 해제 후 3개월까지도 양성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직장도, 심지어 병원도, 기약 없는 "PCR 결과 음성"이 되기까지 나를 상대해주지 않았고, 정부에서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이를 금지한다는 사실 따위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나름 생각해서 하는 위로가 생각보다 금방 다시 PCR 검사에서 음성이 나올 수 있으니, 매일은 말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씩만 검사를 해보란다. 그나마 당시에는 지금처럼 연일 일일 확진자 수 기록이 경신되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30분 정도만 기다리면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평소에 사람 좋아하고 자주 골프를 치는 저질 체력의 남편이, 별 조심을 안 하는 건 익히 알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잔소리로 느껴지는 말을 했다가는 곧바로 버럭을 하기에, 되도록 마주치지 않으려고만 했다. 그의 오만함이 아들을 매개로 나의 면역을 뚫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이럴 때 할 수 있는 거라곤 일단 심호흡이다. 눈을 감고, 잠시나마 시끄러운 마음속에 가만히 귀 기울여본다. 살아 숨 쉬는 모든 순간이 가혹하게 느껴질 때, 차라리 죽는 것이 나아 보일 때, 나에게 일어난 일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었고, 내가 단지 운이 나빴으며, 부주의한 남편과 더 늦기 전에 이혼을 하지 못했을 뿐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때로는 정말로 예기치 못한 불행이 내 인생에 불쑥 머리를 들이밀 때도 있으니까. 그럴 땐 그저, 삶이 나에게 더 겸손하라고 이야기하는구나,라고 인정하면 되니까. 나 역시도 그렇듯,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에 대해, 대다수의 사람들은 경멸이 아닌, 짠함의 시선을 가지고 있을 테니까. 


나와 같은 지옥불에 떨어지고 있는 연일 최고치를 경신 중인 신규 확진자분들에게 건투를 비는 마음이 든다. 한 달 전보다 훨씬 열악해진 생활치료센터 환경과, 몇 배는 더 길어진 선별 진료소 대기 줄 등 모든 면에서 이전보다 확진자로 사는 것이 어떤 건지 깊이 공감할 수 있으니까. 남들보다 더 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무책임 또는 부주의가 나를 코로나의 비극으로 몰아넣을 때 명치끝을 치고 올라오는 깊은 억울함이 무언지 이해할 수 있으니까. 부디 지금도 고통받고 있을 그분들이 모두, 나보다 덜 아프고, 덜 힘들기를. 그리고 격리 동안 처절하게 외로웠던 나와 달리 함께 공감하며 이겨낼 동지들을 모두 구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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