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더 방황을 해야 원하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
대기업 다니는 사람들의 평균 퇴직연령이 49쯤 된다고 한다. 난생처음 '대기업'을 다니기 시작한 지 넉 달쯤 된 나로서는, 지금 그만둬도 평균에 비해 차이가 5년 미만이니, 나름 선방이다. 회사를 다니면 그만두고 싶고, 그만두고 나면 어디엔가 다시 소속되고 싶은 사이클에 중독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젠 정말 끝이다. 20여 년 전 첫 월급을 받은 후 직장인으로서 가장 싫었던 모든 것들로부터 지난 두 달간 무차별 공격당하고 있다.
물론, 나쁜 것만 있는 건 아니다. 코로나로 한 달 자리 비운 나를 괜찮냐고 걱정해주는 사람들도 많고, 자꾸 말라가는 내가 애처로워 보이는지 여기저기서 음식 선물이 넘치게 들어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부인할 수 없는 건,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이유 없는 불안과 아무도 마주할 자신이 없는 격한 감정에 속이 울렁거린다는 사실이다.
사실 지금까지 그나마 직장인 신분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물론 운이 좋아서이다. 멘토와 상사를 잘 만났고, 다행히 성격이 크게 모나거나 욕먹을 만큼 이기적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든 주어지면 열심히 잘하려고 노력했고, 생 양아치를 영접할 기회가 없어 험한 세상을 나름 아늑하게 살아오기도 했다.
장고 끝에 악수라고 했던가. 몇 번의 기회를 거절한 끝에 지난 4월 선뜻 이직하기로 결정한 건 크게 잘못된 선택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질시를 받고, 동료들의 밥그릇을 위협한다는 지탄을 받으며 일해야 하는 곳에서, 입사 후 두 달 만에 남편 덕에 코로나까지 얻고 나니, 입지가 크게 위축되고 말았다.
문제가 생겼을 때 부지런히 해결책을 찾아다니고, 과제가 있을 때 잘하려고 버둥거릴수록 오해받고 일이 꼬이는 상황. 돌이켜보면 나처럼 주변 사람들과 환경을 많이 타는 사람이, 이제 나이도 들고 예전만큼 예민하지 않으니, 과거에 말이 잘 안 통했던 상대들하고 원만하게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건, 큰 패착이었다. 이전까지 내 인생이 불행했다는 이유로, 주변 사람들과 환경이 바뀌면 어떻게든 적응하겠지 라고 생각했던 건 정말이지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잘해주는 척 선배랍시고 손 내밀고는 세게 뒤통수를 후려친 거래 상대방에게는, 감사한 마음을 갖기로 했다. 일하면서 내가 가장 미치도록 싫어하는 모든 것을 종합 선물세트로 경험하게 해 줌으로써,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내가 정말 원하는 인생을 찾아 나서게 해 주었으므로. 언젠가 홀가분하게 오늘을 되돌아보며 그분에게 마음으로 인사할 날이 올 거라 믿는다. 당신이 아니었더라면, 십 년이 지나도록 이제 더 이상 나에게 어떠한 배움도 보람도 주지 못하는 월급 주머니를 꿰차고 비참해했을 거라고.
5년 전 다시는 타인의 언어폭력과 비논리적인 따돌림에 희생되지 않겠노라고 호기롭게 사표를 던져놓고는, 여기까지 와버렸다. 유능한 사람이 되고, 명함을 가지고 있어야 남들로부터 존중받고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사람이 될 것 같아서였다. 내가 열심히 한다고 꼭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니고, 내가 회사에 속해 있어야만 사회에 보탬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바닥까지 내려가서야 비로소 인정하게 되다니.
손뼉 칠 때 떠나는 단계를 이미 한참 지나 야유를 넘어 무관심 속에 파묻힌 후라도, 여러 사람을 모아 큰 비전을 실현하거나, 큰돈을 벌어서 간지 나는 인생을 살지 않더라도, 충분히 떳떳한 삶을 살 수 있다. 마음속 깊이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지만 그에 걸맞은 인내심이나 큰 그림이 없는 나라는 사람은, '대충 살아도 괜찮아'를 끊임없이 되새김질해야, 지금처럼 어울리지 않는 샛길로 빠지지 않나 보다. 내 앞에 놓인 선택이, 패배를 인정하고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는 거라면, 그것만이 가슴 설레는 인생으로 다가가는 길이라면, 이젠 정말이지 미련을 거두고 그만둘 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