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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데 몸살

남자가 필요해

by 스토리 Feb 02. 2025

나의 번듯한 새 아파트를 월세 주고 네 평이 작은 구축의 아파트로 입성하자 고장 난 오래된 비데가 눈에 가시였다.

가장 먼저 철거하고 새것을 들여야 했다.

며칠을 그것 없이 견뎌 봤지만 역시 불편하기 이를 데가 없다.

검색과 영상들을 서핑하면 할수록 선택 장애가 왔다.

겨우 용단을 내려 결재를 완료하자 고민이 사라졌다.

다음날 새벽 두 시에 잠에서 깨어 세 시부터 셀프 설치에 들어갔다.

영상들을 폭풍 검색해 보니 십오 분이면 여자도 한다고들 했기에 겁 없이 덤빈 것이다.

어찌어찌 겨우 철거를 했고 좌판을 끼우는데 아무리 해도 딸까닥 걸리지 않는 것이다.

일을 벌였으니 끝장을 봐야 하기에 브라킷 나사를 몇 번이나 풀었다 조였는지 모른다.

설치방법에서 그림이 명확하지 않아 짜증이 극에 달했다.

두 시간 반을 씨름하다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늙은이가 이걸 하겠다고 시작하다니 대단한 객기였다.

설치비 이만 원 아끼려다 그보다 더한 시간과 체력을 소모한 것이다.

이젠 이런 따위는 수고료를 지불해야 할 나이란 걸 절실하게 깨달았다.

그리고 남자가 간절히 필요함을 절감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바로 앞 동의 지랄 같은 성질머리 막내 동생에게 구조 요청을 톡으로 보내고

이대로 날을 새기는 억울하기에 첫새벽 목욕을 가기로 작정하고 나섰다.

때를 밀기엔 기운이 다 빠져 나가시를 하려고 갔지만 한 시간을 기다려도 때밀이는 나타나지 않아 새벽부터 사기당한 기분이 들어 대충 씻고 나와버렸다.

돈벌이의 수단으로  그들에게 낚인 배신감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말없이 돌아섰다.

일진이 꼬이는 날이다.

다녀오니 남동생이 뚝딱 해결해 주었다.

뒤늦은 생각이 브래킷을 거꾸로 뒤집어서 하면 걸리겠다는 판단이 뇌리를 스쳐갔다.

좀 더 끈기를 가지고 해 보았더라면 분명히 해결되었을 것이다.

어려운 수학 문제도 계속 들여다보고 시간을 충분히 주노라면 대부분은 해답을 찾는 걸 본 적이 있지 않은가.

스마트폰도 컴퓨터도 계속 만지다 보면 독학으로 마스트되는 것처럼.

역시 남자가 잘하는 분야가 분명히 있다.

이번 이사에서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두 집을 한 집으로 만들자니 버릴 것이 반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바로 앞동의 그 남동생은 늙은 누나를 도울 생각이 일도 없는 녀석이다.

그래서 난 그 성질 러븐 자식에게 시킬 생각조차 않는다.

무슨 일이든 찍자부터 내고 보는 인간이다.

가족들을 기분 상하게 하는 게 주특기다.

그놈은 그게 애정 표현이라고 급기야는 알게 된다.

나보다 열 살을 덜 먹었고 오십 중반인 저 놈은 언제 철이 들는지 알 길이 없다.

말을 하자면 입이 아프니 말을 말자.

가까이하기엔 위험만 남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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