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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아내, 그리고...

by 구르미

결혼을 했다.

남편은 엄마보다 더 완벽한 사람이었다.

내가 가장 사랑해야 하고, 나를 가장 사랑해 줄 줄 알았던 두 사람—엄마와 남편.

그러나 그 둘 사이의 관계는 처음부터 팽팽한 긴장감 위에 놓여 있었다.

엄마는 더 이상 나를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에 불만이 가득했고 자신의 기대에서 벗어난 나의 선택을 마치 배신처럼 느낀 것 같았다.

그 중심에는 남편이 있었다.

엄마는 남편을 못마땅해했다. 자신의 통제권 밖에서 나를 소유하려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남편 또한 불만이 많았다. 내가 자신의 기대에 완벽히 부응하길 원했고 친정에 신경 쓰는 걸 싫어했다.

하지만 친정에 아이를 맡겨놓았던 처지라 멀리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두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까지 도맡아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살았다.

잠자는 시간과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숨 쉴 틈 없이 달려야만 했던 날들.

그때 얻은 건 변비와 수면부족으로 생긴 갖가지 질병들이었고, 숨 막히는 공간에서 살아온 시간들은 엄청난 무게로 나를 짓눌렀다.

그는 내가 모든 역할을 완벽히 수행하길 바랬다. 말로는 아니라고 했지만 행동은 늘 그랬다. 그는 나의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고 완벽한 아내, 완벽한 엄마, 완벽한 동반자로서 자신이 생각하는 모든 것을 내가 미리 예상하고 부족함 없이 해결해 나가길 바랬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만족할 만큼 맞춰주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항상 예상치 못한 나의 결점을 만들어 내어 질타했다.


경제권은 남편에게 있었고 주는 대로 살아야 했으며 생활비는 늘 부족했지만 불평하지 않았다. 함께 노력하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래도 열심히 일을 하는 남편이 안쓰러웠다.


지금 돌이켜보면, 가장 큰 잘못은 내게 있었는지도 모른다.

반항하지 않고 그가 원하는 대로 들어주려다 보니, 그는 내가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몰랐을 것이고, 그의 요구는 상황이 반복될수록 점점 더 과해졌던 것 같다.

하지만 내게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있었다. 의견이 다르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그의 충고와 설득을 들어야 했고, 1분 1초가 아쉬웠던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있는 시간이 불안했다. 반박하면 소리를 질렀고, 내가 맞서서 소리를 높이면 그는 책장을 엎거나 밥상을 뒤엎으며 물리적인 힘으로 나를 눌렀다. 그는 나보다 두 배나 더 덩치가 컸다. 나는 그가 공포스러웠고,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그런 환경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점점 소심해졌고, 누구와도 싸우지 못했으며, 힘든 일이 생기면 숨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본능적으로 힘없는 엄마는 자신을 지켜줄 수 없다는 걸 알아버린 듯했다. 부당한 일을 당해도 참았고, 나처럼 소심해져 갔고, 누구에게도 맞서지 못한 채 힘든 일이 생기면 숨었다.

상처투성이가 되어 자라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끊임없이 자책했고, 그러면서도 부모의 부재를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지치지 않으려 애썼다.

남들에게 보여지는 우리 가족은 평화로운 척, 부족함 없이 서로를 위하는 척하며 어려움을 감춘 채 살아왔고, '남편은 나와 아이들위에 군림하는 가장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가장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나를 세뇌시키며 그의 비위를 맞추려 노력했다.

당시 내게는 그것이 최선이었고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었던 것 같다.

모두가 반대하던 결혼이었기에,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싶었고, 들키지 않으려 애쓰며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나는 흔들린다. 때로는 이유도 모른 채 죄책감에 시달리고,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다시 나 자신을 의심하며 자신감은 끊임없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쳐 사회생활조차 어려워질 때가 있다.


나는 엄마이기 전에, 아내이기 전에, 딸이기 전에, 한 사람이다.

사랑받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이해받고 싶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서로의 삶을 인정하며 공존하길 바랐을 뿐이다.

하지만 현실은 사랑도, 이해도, 존중도 아니어서 힘들고 고단했다.

나를 가장 아끼고 사랑하던 엄마와 남편은, 내게 요구와 통제, 기대와 실망만을 반복했고, 서로를 향한 불편한 감정만을 내게 모두 쏟아낼 뿐 나와 아이들이 어떤 사정인지, 어떤 마음인지는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조금 자랐다.
아직 사춘기를 벗어나진 못했지만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중이다.

1년전 큰 수술을 받고 몸과 마음의 회복을 시작하게 되었고, 남편은 달라지려 애썼다. 제법 말을 아끼며, 참는 법도 조금씩 익혀가는 듯하다.

어머니 역시 약해지셨고, 나를 걱정하는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내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 노력하시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많이 나아진 삶인데도 문득문득 울분이 치민다.

그들은 내게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말을 하면서도 자신의 과오는 말도 못 꺼내게 했다. 그런 그들을 보면서 달라진 게 없다는 생각도 들고, 응어리 진 마음이 풀리지 않아 그 어떤것도 해결되지 못한 마음만 남았다.

그들은 과거를 기억하지 못했다. 지금 내가 이렇게 잘 해 주는데 왜 내가 스트레스를 받는지, 왜 내가 힘들어 하는지, 왜 내가 아파하는지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금씩 치유되어 가고 있다.

만족스럽진 않지만 우리 모두 노력 중이고 예전과는 다른 대화도 가능해졌다. 일방적인 충고와 질타가 아닌 서로 주고받는 대화만으로도 나는 내 기분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고 완전한 평화는 아닐지라도, 변화의 시작은 분명 우리 안에 스며들고 있는 듯하다.

그 변화의 방향이 따뜻하고 긍정적임을 느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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