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라는 단어는 그 하나만으로도 뿌듯하고 기분이 좋아지면서 저절로 웃음 짓게 하는 감격스러운 존재였으며, 아이가 태어나던 그 순간의 감동은 이 세상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벅찬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육아의 힘은 참으로 길고 험하고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그 댓가가 ‘너무 이쁨’이라 그 어떤 고통과 시련에도 버틸 수 있지 않았을까?
아이들의 동작, 표현, 말투, 억양, 표정, 감정, 나한테 이겨보겠다고 악쓰는 그 억척스러움과 고집, 그리고 내 목소리와 눈빛하나에 폭포처럼 떨어지는 너희들의 눈물까지...
이 모든것 하나하나가 이 세상 무엇으로도 매길 수 없는 가치로 마음 깊이 파고들었다.
아이들의 존재는 그 자체로 내 삶의 이유가 되었고,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가정과 사회, 더 나아가 국가를 이루는 소중한 기반이 되어 주었다.
그토록 힘겨웠던 순간들조차 돌아보면 눈물겹도록 아쉽고 아련하다.
내 곁에 존재하는 것!
탄생! 그 이상에 대하여 무한한 가치를 인정하며, 다시 한번 느낀다.
세월이 지나 어느날 문득 뒤돌아 보니 그때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귀하디 귀한 시간들이었음을.
나는 결혼 후 1년쯤 아이를 가질 계획이었지만 예상치 못하게 두 달 만에 임신을 하게 되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며 학자금과 생활비 대출을 갚고 겨우 결혼했지만 결혼자금을 마련하느라 다시 빚이 생겼다.
남편과 나는 둘 다 가난하여 부모님의 지원도 받을 수 없었을뿐 아니라, 각자의 가정에 들어온 축의금마저 부모님께 드리고 새출발을 하였다.
다행히 남편의 직장 사장님의 배려로 저렴하게 살 집은 구했지만 생활은 빠듯했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날, 기쁨과 함께 모든 계획이 틀어지는 불안도 컸지만, 결국 우리는 아이를 선택했고, 적금을 깨고 출산을 준비했다. 출산 후 육아휴직 동안 생활은 더 팍팍해졌고, 편하게 밥을 먹고, 편하게 잠을 자고, 여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사치는 꿈도 꿀 수 없게 되었다.
본능적으로 살았다. 이름 대신 ‘엄마’로 불리며 하루 24시간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갔고, 수유 시간에 맞춰 움직이면서, 아이가 잠든 틈을 타 밥을 먹고, 빨래를 돌리고, 청소를 했다. 누군가에게 말 한마디 건넬 여유도 없이, 말라가는 모유를 짜내며 혼자 울고 웃는 날들의 반복이었다.
엄마로서의 삶은 예상보다 훨씬 외로웠고, 생각보다 훨씬 고됐다. 아이의 웃음 한 번에 모든 피로가 녹는다고들 하지만, 처음 맞이한 엄마의 삶은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밤중 수유에 지쳐 퀭한 얼굴로 하루를 시작하고, 씻지도 못한 채 하루를 끝내는 일이 다반사였으며, 휴식도, 퇴근도 없었다.
하지만 그 나름대로의 바쁨속에서도 육아를 하는 1년간은 행복했다.
복직 후 아이를 친정에 맡기면서 주말마다 지방과 지방을 오가는 생활이 2년간 이어졌고, 아이를 맡긴 친정집으로 주말마다 달려가는 차 안에서, 나는 늘 죄책감과 그리움에 시달렸다. 아이를 안아보는 시간은 짧았고, 아이는 점점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게 자랐다.
첫째만으로도 매일이 숨 가쁘던 나날,
둘째가 태어나며 내 일상은 다시 한번 송두리째 바뀌었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결정하고, 멀리 맡겨 두었던 첫째를 집으로 데려왔을 때, 나는 그제야 비로소 ‘진짜 육아’가 시작되었음을 느꼈다.
하나도 벅찼던 일상이, 이제는 두 갈래로 나뉘고 겹쳐지고 뒤엉켰다.
한 아이가 아프면 다른 아이도 아팠고, 병원을 제집처럼 매일매일 드나들며, 밤이면 열이 올라 잠자는 시간까지 마음 졸이며 아이들에게 바쳐야 했다.
아이들은 서로 자기만 봐주길 한없이 바라는데 한 아이를 보느라 다른 아이에게 소흘해지면 나는 잠든 아이들을 보며 또 자책했고, 내게 주어진 하루 하루는 살아가는게 아니라, 매 순간을 버티는 일이 되었다.
아침은 분주했고, 밤은 고요하지 않았다. 몸이 하나인 것이 원망스러웠고, 손이 두 개인 것이 불만이었다. 한쪽품에 작은 아이를 안고 젖을 물리는 동안, 다른 쪽 손으로 첫째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그래도 동생이라고 늘 양보하는 첫째가 기특하고 고마웠으며, 첫째에 대한 미안함과 아쉬움은 세월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 바쁜 와중에도 아이의 눈짓, 몸짓, 표정하나까지 놓치지 않으려고 기록하고 사진과 영상으로 남겼다. 엄마가 아니면 누가 이 아이의 모든 울음을 기억하고, 모든 성장의 순간을 마음에 새길까.
엄마라는 자리는 때론 너무 아프고 때론 너무 눈부셨다.
나는 점점, ‘엄마’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고 있었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결국, 나 자신을 다시 키우는 일이었다.
지금껏 알지 못했던 내 안의 깊이, 인내, 사랑, 그 모든 감정이 아이들을 통해 흘러나왔다.
나는 매일 실수했고, 또 매일 후회하며, 매일 미안했지만 아이들은 내 서툰 손길조차 사랑으로 받아주었고 나만을 바라보며 한없이 행복해 했다.
그로 인해 육아는 고단했지만, 나는 ‘강해지는 법’을 배웠고, 때로는 ‘서툴러도 괜찮다’는 것을 인정할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엄마가 되어가며 완벽하지 않아도 만족하려 애썼다.
아이들이 몰라주어도 괜찮았다. 누군가 인정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나는 엄마로 사는 그 시간 동안 나만의 귀한 시간들을 가졌었고 한없이 서툴러도 여전히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기에, 더 이상 아쉬워 하지도 후회하지도 않으려 한다.
다만 그 시간들이 추억이 되어 그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