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타요가, 사우어도우 반죽
휴직을 한지 만 3주가 됐다. 일단 7월은 무념으로 살아야지 싶어서 하루하루 계획 없이 살아갔는데, 이제 남은 시간이 8월 한 달뿐이라니, 시간이 가속화하고, 내가 이 귀한 시간을 잊을까 싶어 기록을 해봐야겠다.
보통 나는 수기로 일기를 종종 쓰는데, 되돌아 읽어 보면 '생각'이 가득하다. 이 세상은 왜 이럴까? 저 사람은 왜 그럴까? 등 나의 해석 또는 judgement 가 많은데, 휴직일기는 조금 더 관찰 위주로 기록해 보면 어떨까 한다.
8월의 첫째 날 아침, 나는 사직동 하타 요가원에 가기 위하여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다. 쉬면서 마음껏 해보고 있는 것 중 하나가 하타 요가인데, 이번에 방문해 본 하타요가원만 8 곳이 넘어가 곧 10 도장은 깨지 않을까 싶다. 사직동 하타 요가는 카카오 맵에 '하타 요가'라고 검색해서 찾던 중 우연히 발견하게 된 아주 소규모의 요가원인데, 외지고 가파른 골목길 위에 있다는 점과, 선생님과 도반님들과 한 시간씩 차담을 하는 등 그곳만의 문화가 좋아서, 한 달 등록을 했다. 거리상으로는 3km 남짓 가깝지만, 외진 곳에 있어서 door to door 40분은 잡아야 간다. 오늘은 지하철을 타고 독립문역에서 내려서 사직터널 위 굽이 굽이 가파른 길을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갔다. 지난주에도 차담 후 나의 궁둥이에는 땀자국이 남았는데, 오늘도 역시 궁둥이 땀자국 확정. 이곳은 서울의 다른 요가원들과 달리 공지되어 있는 시간에 수업을 시작하지 않고, 그때에 차담을 시작하여 1시간가량 차를 마시다가 수업을 시작한다. 첫 주에는 늦을까 봐 헐레벌떡 갔던 터라, 1시간이 넘는 차담 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졌는데, 예상을 한 오늘은, 그 시간에 현존할 수 있었다.
올해 독립을 하며, 매일 아침 혼자 찻자리를 가져오고, 최근 들어 보이차도 마시기 시작했지만, 요가원에서 선생님이 내려주시는 보이차 맛은 내가 내려 먹는 차 맛과는 다르다. 오늘은 3명의 도반님들과 수련하였는데, 4명이 마주 보고 매트를 까니 공간이 꽉 찼다. '눈을 감고, ' '천천히 천천히'를 반복하시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맴돈다. 몸을 풀고 다가오는 짜릿한 후굴 시간. 하타에는 후굴 동작이 많은데, 나 김 뻣뻣은 후굴을 할 때마다 앞 허벅지가 불타고 허리가 뻐근하다. 언제쯤 선생님이 내려오라고 할 때까지 참고 자세를 유지할 수 있을까? 오늘은 'nope' 나는 참지 못하고 미리 내려와 등 대고 누워서 숨을 고른다.
모든 운동의 클라이맥스는 운동 후 귀갓길이 아닐까? 하타 요가로 사지, 손가락, 발가락 끝까지 피를 쫙쫙 돌리고 난 후 귀갓길은 몸이 흐느적거리는 것 같이 지치지만, 마음과 머리는 개운하다. 근방 영천 시장과 서대문 일대는 어렸을 적 할머니 손 잡고 자주 오던 동네라 추억이 있고 익숙하다. 지난주 수련 후에는 영천 시장에서 짜장면 한 그릇 해치우고 갔지만, 오늘은 집에 쌓인 먹거리들이 많기에 배고픔을 참고 서둘러 집으로 왔다. 집으로 오는 길에는 무엇을 어떻게 해 먹을까 요리조리 고민하고 계획한다.
오늘의 점심메뉴는 직접 구운 사우어도우 빵 위에 참치 샐러드! 유튜브에서 기은세가 추천해 줘서 동원 참치에 몇 배나 비싼 올리브 오일 캔 참치를 먹고 있는데, 겁나 맛있다. 입에 착착 붙는다. Sourdough loaf를 얇게 슬라이스 해 굽지 않고, 마요네즈, 셀러리, 양파, 딜, 그리고 라임주를 넣은 참치 샐러드를 한가득 얹고, 반쯤 탈의 한 채로 바닥에 앉아 먹는다. 너무 맛있다. 최고. 그것으로는 약간 아쉬워서 냉장고에 남아 있는 콩나물 버섯밥을 데워 조미김에 매실 장아찌 넣고 못난이 김밥을 만든다. 이것도 대박 맛있음, 나 먹천제!
점심을 먹고 나니 나른하다. 졸린 눈을 억지로 뜨고 티브이를 좀 보다가, 이내 암막 안대를 두르고 한 시간 넘게 낮잠을 잔다. 일어나 보니 늦은 오후. 오늘 저녁에 엄마랑 집 앞 하타요가원을 가기로 한 것이 기억나지만, 나의 몸은 천근만근. 다행히 엄마도 오늘 저녁 바쁜 모양, 야호! 오늘은 이렇게 이불속에서 마무리하는 것으로...
해가지고 잘 준비를 하려고 보니 내일 엄마랑 새아빠 모시고 차려 드리기로 한 브런치 생각이 난다. 어제부터 냉장고에서 숙성 중 이신 English Muffin 반죽은 어떤 상태일지 체크 해 보니 오 마이갓... 하루 더 숙성하는 바람에 공기가 다 빠져 반쪽으로 쪼그라들어 있네. 혹시 맛은 어떨까 연습 삼아 프라이팬이 구워 보지만 복구 불가의 상태. 이렇듯 처음해 보는 요리는 trial and error의 room 이 필요하다. 괜찮다! 순간적으로는 여러 worst case scenario가 머릿속을 어지럽혔지만. 무상! 영원한 것 없다. 망한 나의 머핀 반죽 또한 영원하지 않다. 얼른 새 반죽을 만든다. 늦지 않았다. 아가 궁둥이처럼 뽀얗고 둥근 반죽을 잠재우며, 오늘 나의 하루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