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빙수를 좋아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팥을 무척 좋아합니다. 아이스바도 비비빅을 즐겨 찾고 빵은 주로 단팥빵을 사 옵니다. 또한 겨울이 되면 단팥죽을 찾아다닙니다. 사실 어린 시절 돌아보면 팥이나 콩은 죄다 골라내 엄마에게 혼이 난 적도 떠오릅니다. 세월이 간다는 건 그토록 싫어했던 일들이 어느새 좋아지는 경험으로 이어지는 순간을 만나는 일 같습니다.
여름입니다. 그래도 바람은 붑니다. 계절마다 바람은 그대로 공기를 흔들어 나뭇가지를 흔듭니다. 그래도 바람은 덥다. 춥다는 내색을 하지 않습니다. 흔들리다 흐르면 또 어딘가 무심해져도 시무룩하지도 않습니다. 오늘도 무심한 바람이 아른거립니다. 그 바람은 더운 공기에 마음도 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바람에 시들해지는 마음은 바깥에 있는 사람의 마음이었습니다.
더운 바람이 스쳐갈수록 절로 덥다고 말합니다. 그럴 땐 가만가만 시간을 기다려주기 쉽지 않아서 자주 들썩입니다. 조금씩 가장자리에서 서늘한 바람이 피어나기도 전에 말입니다.
바람은 그대로인데 나의 마음이 고요해지기 시작하면 조금씩 열기가 가라앉습니다. 비로소 그 바람을 맞이하는 어떤 마음에 여유가 생겼음을 알게 해 주는 것 같습니다. 고마운 바람입니다.
아침에 딸아이를 태워주고 근대 골목길을 빠져나오는데 간판이 보였습니다. 내 차를 멈춘 팥빙수. 그림. 망설임 없이 그대로 들어갔습니다. 오픈 시간이라 아무도 없는 공간이 널찍했는데 공간은 급랭된 듯 꽁꽁 차가웠습니다. 아마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급속한 온도 차이였을 겁니다.
혼자 커피 마시기는 즐겨 하지만 혼자 팥빙수 먹기는 처음이어서 약간 머쓱했지만 맛있어서 사르르 다 녹아버렸습니다. 녹을수록 나는 꽁꽁 얼어서 길게 앉아 책을 보기가 어려웠답니다.
그래서 공간을 한 바퀴 빙 돌아 구경하고 나왔습니다. 다시 여름 열기 속으로요. 어쩐지 더 더운 바람을 느낍니다. 들어가기 전과 반대의 온도차를 경험하면서 이번엔 하나도 마음 상하지 않았습니다. 야단스럽지도 않았습니다. 바람의 마음 덕분입니다.
그리고 차를 몰았습니다. 흰머리가 너무 빨리 자랍니다. 버텨도 한 달 반을 못 넘깁니다. 이것도 일입니다. 귀찮아도 하고 나면 기분이 먼저 선명해집니다. 그렇게 집 근처로 돌아와 미리 예약해둔 미용실에서 염색을 하고 있는데 옆 지기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톰 크루즈 영화 보러 가자고,
이제 염색을 마치고 영화 보러 갑니다.
비라도 오면 좋을텐데요.
근대골목빵집. 팥이 달랐어요.'건강한 느낌같았어요.
'
'
'
이 글을 쓴 사이, 그 사이 보고 나옵니다.
좋았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살짝 눈물이 났습니다. 갈수록 눈물이 많아지는 나이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