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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tuti Oct 21. 2021

나이 마흔에 셋째 임신이라니

또다시 육아 시작

"애들 다 중학교 가고 나면 이젠 엄마랑 있는 시간도 별로 안 좋아할 거고... 그럼 나 이제 뭐하지? 일할까?"

"그럼 우리 셋째 만들까?"


큰 딸이 중학생이 되고 아들도 초등학교 마지막 학년(5학년)이 되자 남편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자주 건네던 말인데 그게 현실이 돼 버렸다. 워낙 아무것도 없던 상태에서 빚으로 시작한 결혼생활이라 첫째 땐 특히 해 주고 싶어도 해 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옷도 죄다 선물이 들어오거나 다른 집에서 물려받은 옷으로 키운지라 딸아인데도 내 취향 것  한 번도 제대로 못 입혀줬었던 것이 미안했다. 지금 같은 경제상황이라면 예쁜 옷도 입히고 장난감도 이것저것 사 주며 남부럽지 않게 키울 수 있을 텐데....


둘째 낳고 바로 미레나로 피임을 하다가 작년에 나이가 들어서인지 살도 점점 찌고 몸도 점점 안 좋아지자 피임기구를 빼 보자고 남편과 상의하고 피임기구 제거 시술을 했다. 미레나를 시술하고 나서 없어졌던 생리는 제거 시술을 하고 나서도 제대로 잘 돌아오지 않고 fitbit이 알려주는 생리 주기를 짧게는 5일, 길게는 3주까지도 벗어나며 제멋대로 주기가 오고 갔다. 보통 여자 나이 만 36세가 넘으면 노산으로 보는데 40세면 임신율이 5%가 안된다.  임신율이 5% 라는 건 매달 임신될 확률이 5%라는 것이다.  

아래 영상에서는 그런 사실을 간과한 나머지 특히 미국의 유색인종 안에서 임신과 출산에 있어 의학적 도움을 받지 못하고 중요한 시기를 놓친다고 알려준다.


https://youtu.be/4kfcsOhgzRA


나 같은 경우엔 미레나를 제거할 당시 만 38이었으니 10달 동안 날짜를 아주 잘 맞춰 관계를 가지더라도 10달이 지나야 겨우 한번 임신이 될까 말까 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국 나이 마흔. 만으로 39. 자연임신으로 덜컥 애가 들어섰다.

몸이 안 좋아 채식을 시작하며 한약을 지어먹고, 코로나를 겪고 살이 한번 싹 빠졌다가 몸이 회복되나 싶었는데 생리도 없고 다시 또 소화불량에다 기운이 없고 입맛이 없어지다가 도저히 음식을 먹는 것뿐만 아니라 냄새 맡는 것조차 힘들어져서 혹시나 해서 해 본 임태기 검사에 뚜둥~ 두 줄이 나왔다. 미레나를 제거할 당시 혹시 임신이 될 수도 있으니 기형아 방지를 위해 엽산이 들어간 임산부용 비타민을 먹어줘야 한다고 하여 (또 의사 말은 잘 듣는 내가) 비타민을 꼬박꼬박 먹어줬던지라 다행이었다. 남들은 늦은 나이에 임신을 하면 남편도 함께 적어도 3개월은 몸을 만들고 금연, 금주를 하고 그런다던데 우리 남편은 말로만 셋째를 이야기했지 진심은 아니였는지 최근 1년간 코로나 음주를 꽤 많이 했던 터라 살짝 걱정이 되기도 한다.


첫째 때도 둘째 때도 그리고 두 번의 유산 때도 너무 예민한 탓에 임신이 되면 일주일 내로 몸이 먼저 알아차리고 응급실을 향했었는데 이번엔 임신 전 생리불순과 코로나로 인한 컨디션 난조 때문에 조금 늦게 새 생명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병원 약속을 잡고 2주 후. 병원에서 초음파를 하니 7주가 조금 지났단다. 쿵쾅쿵쾅 심장소리를 들었다.


큰 딸과는 13살 차이, 둘째 아들과도 11살 차이 늦둥이를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큰 딸이 대학에 들어갈 해에 막내는 유치원에 입학을 하게 되니 앞으로도 19년은 학부모 일로 바쁘겠다 싶다. 남편은 은퇴란 없단다.

주위의 늦둥이 엄마들을 보면 한국 사람이든 미국 사람이든 늦게 낳은 아이한텐 모두 쩔쩔매는 모습을 보며 나도 과연 그렇게 될까 궁금했었는데.... 내년에 닥쳐보면 알게 되겠지.


졸음과 입덧, 추위와 피곤에 범벅이 돼서 몇 주를 보내고 있다. 덕분에 자연주의 채식도 다시 일반식이 되었다. 아무것도 못 먹고  며칠을 보내다 단무지에 흰밥은 넘어가서 음식을 먹기 시작하면서 태명을 '단무지'로 할까? 했더니 남편이 "너무 태명을 함부로 짓는 거 아니야?" 하고 반문한다.


2번의 유산 경험이 있었던지라 그리고 그중 한 번은 임신 중기 유산이었어서 소파수술까지 했던 터라 아주 조심하며 몸을 아끼고 있다. 예전처럼 하루 운동을 했더니 5일가량 소량의 피가 묻어나서 중기 전 까진 운동도 조심하고 절대 무리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럴수록 남편의 집안일이 점점 늘어난다. 주말에 나에게 쉴 시간을 주려고 자동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를 돌리고 아이들을 데리고 수영 레슨과 바깥 놀이, 점심 먹이고, 장을 보고 집에 와서 바비큐를 구워 저녁 차리고 본인 도시락 반찬에 설거지까지. 밤에 애들 다 재우고 나서도 뭐가 할 일이 남았는지 방에 자러 들어오지 않아 주방에 나가봤더니 결혼 후 처음으로 일요일 밤 와인 한잔에 안주를 곁들이며 동영상을 보면서 "주말이 왜 이렇게 힘드냐? 나도 me time을 좀 가지고 싶어." 하고 털어놓는다. 약간은 안쓰러우면서도 '이제야 그걸 알았냐?' 하는 마음이 든다. 하긴 첫째와 둘째 땐 남편도 사회 초년 말단 직원인 시절이라 거기다 악명 높은 한국 회사 현지체용이라 주말도 퇴근시간도 없이 매일 야근을 했었다.


계획성이 있었던 아니던 늦게 찾아온 생명은 우리에게 복덩이다. 부디 앞으로 31주간 잘 지내다 나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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