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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Jan 10. 2020

어느 국가유공자의 아들

중환자실에는 중환자실만의 공기가 있다. 치과에 들어서며 맡게 되는 독특한 냄새가 이전의 고통스러웠던 치료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처럼, 중환자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공기는 가슴 깊은 곳에 숨겨 두었던 힘든 기억들을 강제로 소환한다. 어떻게든 살려 보려는 온갖 노력이 허사였던 수많은 환자들. 한 명 한 명 떠나 보낼 때마다 마음 속으로 울었던 아픈 기억들. 그 기억들이 스며 있는 중환자실은 환자뿐만 아니라 의사에게도 힘든 공간이다. 그래서 나는 가능한 중환자실에서 머무르는 시간을 줄이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오늘은 K를 앞에 두고 차마 중환자실을 떠날 수가 없어 십분 째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다. 내가 쳐다본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러고 있다. 환자는 담당의사의 정성을 먹고 좋아진다는 근거 없는 속설에 기대는 심정으로.


K는 일주일 전 응급수술을 받은 후 중환자실을 지키고 있는 꼬부랑 할머니다. 직장암 수술 이후 발생한 문합부협착과 이로 인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대장염으로 응급실을 몇 달에 한 번씩 드나들던 환자였다. 이러지 말고 말단 결장루로 전환하는 수술을 하자고 몇 번을 설득했지만 그 때마다 같이 온 아들은 ‘어이구 어떻게 또 수술을 해요. 좋아졌으니까 됐어요.’라며 수술을 마다하고 퇴원하곤 했었다. 그러다 결국 천공으로 범발성복막염이 생겨 다시 응급실로 왔고, 일주일째 사경을 헤매고 있다. 좀 더 강력하게 설득해서 미리 수술을 했더라면 하고 후회해 보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범발성복막염에 이은 패혈증은 할머니의 모든 장기를 망가뜨렸다. 심장이고 폐고 신장이고 간이고 뭐고 제 역할을 하고 있는 장기가 하나도 없다. 매일매일이 아슬아슬 외줄타기를 하는 것만 같다. 아직은 어찌어찌 버티고 있지만 반대편 도착 지점은 너무 멀어 보이지도 않는 외줄타기. 한 발이라도 잘못 디디는 순간 뚝 떨어져 버릴 것만 같은 팽팽한 긴장감 속의 하루하루. 조금만 더 가면 될 것도 같은데. 조금만.


“교수님, K환자 보호자가 오늘 교수님과 유선상으로라도 꼭 면담하기를 원하세요.”

중환자실 환자 보호자의 면담 신청은 드문 일이 아니다. 병동 입원 환자야 하루 한 번 회진 시간을 병실에서 기다리기만 하면 되니 담당 교수를 만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중환자실 입원 환자는 면회 시간을 제외하고는 보호자가 환자 옆에 붙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일부러 면담 신청을 하지 않으면 담당 교수를 만나기가 오히려 어렵다. 생사를 넘나드는 환자를 중환자실에 두고 하루 두 번 겨우 면회를 하는 보호자들은 얼마나 답답할 것인가. 담당 전공의를 통해 환자의 상태에 대해서 충분히 전달이 되었다 하더라도, 보호자들이 담당 교수의 설명을 다시 한 번 듣기를 원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지사였다.

“여보세요, K환자 담당 교수입니다.”

“아, 예, 교수님.”

아들이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 상태는 여전히 위독합니다. 대사성산증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여전히 승압제를 쓰고 있고 인공호흡기를 떼지 못하고 있어요. 신장 수치도 많이 올라서 조만간 투석을 시작해야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앞으로 이삼일이 고비…”

“아 교수님, 그게 아니구요.”

아들이 갑자기 내 말을 끊었다. 그게 아니라고? 중환자실 환자 보호자가 전화로 담당 교수와 상의할 일이 환자 상태 말고 또 무엇이 있을까.

“사실은 어머니를 모셔 가고 싶은데요.”

“……네?”

아직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는 어머니를 어디로 모시고 간다는 말인가? 말문이 막힌 내가 적당한 대답을 찾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아들이 말을 이었다.

“사실은 돌아가신 저희 아버지께서 국가유공자이셔서 보훈병원으로 가면 병원비가 싸거든요. 보훈병원으로 모셔 가고 싶어서요.”

안타까운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들에게는 어머니의 현재 상태보다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어머니의 생사보다도, 곧 있으면 닥쳐오게 될 현실적인 문제가 더 걱정이었던 것이었다. 이제야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이전에 수술을 권했을 때 왜 그렇게 마다했었는지, 또 면회시간에 방문해도 보호자를 만나기가 왜 그렇게 어려웠는지도. 일용직 노동자였던 아들은, 어머니 얼굴 한 번 더 보기 위해 하루치 일당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보훈 병원으로 가시는 것은 좋습니다만, 현재로서는 어머니 상태가 전원을 가시기에는 너무 위독합니다. 앰뷸런스에서 사망하시게 되실 수도 있어요. 지금은 안 됩니다. 어머니 상태가 좀 더 호전되면 그 때 다시 생각해 봅시다.”

“네 알겠습니다. 그거 말씀드리려고 면담 신청한 거였어요. 수고하세요.”

뚜뚜뚜. 전화가 급하게 끊어졌다. 할 말만 하고 서둘러 끊는 것이, 어쩌면 일터에서 전화를 받은 것인지도 몰랐다.

“삑-, 삐삑-, 삑-……“

환자의 심장박동은 여전히 불규칙하기만 했다. 엇박으로 울어대는 환자의 모니터를 멍하니 쳐다보다가 까닭 모를 한기가 들어 가운 자락을 여미고 서둘러 중환자실을 나왔다. 


K환자는 이후에도 한 달여를 더 입원해 있었다. 다행히도 생사의 고비는 넘겼지만 기대했던 만큼의 회복세를 보여주지는 못하였다. 인공호흡기를 떼긴 했지만 여전히 의식이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고, 미처 아물지 못한 장문합부위가 장피누공이 되어 소장 내용물이 하루 1리터씩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여느 환자였다면 다른 병원으로 전원 가시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을 꺼내기조차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보호자의 의지는 확고했다.

“꼭 보훈병원으로 모시고 가겠습니다.”

보훈병원 담당 선생님은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이런 환자가 어디 한둘이었겠는가. 중환자실로 가야 하는 상태만 아니라면 받아줄 터이니 소견서를 써서 보내라는 허락이 떨어졌다. A4용지 한 페이지에 달하는 그야말로 구구절절한 소견서를 작성했다. 이러저러해서 여차저차하니 환자의 지금 상태가 이렇습니다. 어려운 환자 보내드리게 되어 송구함을 금할 길이 없으며 아무쪼록 고진선처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지난 한 달간 할머니를 살리려 무던히도 애를 쓴 의료진의 노력이 소견서 한 장에 묻어나길 바라며 정성껏 썼다. 부디 잘 회복해서 퇴원하시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절절히 담았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들은 어머니를 모시고 보훈병원으로 떠났다. 뒷부분이 뜯겨져 나가 결말을 알 수 없게 된 책을 읽은 것처럼 찝찝하고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 환자는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나는 좀 더 최선을 다할 수 있는데. 아직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남았는데.


하지만 현실은 교과서에서 배운 것보다 훨씬 차가웠다. 쓸쓸한 여운을 채 느낄 새도 없이, 오후 회진을 가니 할머니의 자리는 이미 깨끗이 치워져 다른 환자로 채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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