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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Feb 05. 2020

넌 얼마나 절실하니?

<신이 선택한 의사>

외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여느 때와 다름 없이 학생이 다소곳이 앉아 있다. 외래 진료를 참관해서 얻을 것이 얼마나 있겠냐마는 뭐 그것도 실습의 일환이니까. 앵무새처럼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나도 힘들지만 그 광경을 몇 시간씩 뒤에서 보고 있는 학생들은 더 힘들 것이다. 병원 실습이라는 것이 그렇다.

외래 진료가 끝나갈 무렵 무심한 듯 학생에게 물었다.

“질문 있는가?”

매번 물어보지만 큰 기대를 하지는 않는다.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학생이 절반이 넘으니까. 하지만 질문이 없다고 절대 학생을 나무라지는 않는다. 나 역시 아무런 질문이 없는 학생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왜 아무런 질문이 없느냐고 학생을 다그치지도 않는다. 그래봤자 없는 질문을 억지로 만들어낼 수는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한 3초쯤 질문이 없으면 서로 뻘쭘해지기 전에 빨리 마무리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래, 학생의 본분은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이지. 수고했네, 가 보게.’ 개중 일부는 교과서를 찾아 보면 나오는 뻔한 질문을 한다. 외래가 끝나면 질문이 있는지 물어본다는 것이 족보로 전해지다 보니 억지로 만들어 온 것이 드러나는 준비된 질문이다. 그 정도는 수업시간에도 배웠고 교과서든 인터넷이든 어디든 조금만 찾아봐도 나오는 것인데 그걸 질문이라고 하고 있느냐고 쏘아주고 싶은 마음을 애써 숨기고 성의껏 대답해 준다. 나는 친절한 교수이니까. 나머지 일부 학생은 실습 마지막 날 있을 논문 발표와 관련한 질문을 한다. 참 실용적인 학생들이다. 마찬가지로 정성껏 답변해 준다. 나는 어디까지나 자상한 교수님이니까.

“저기, 아까 수술 참관 중에 궁금했던 점을 미처 여쭤보지 못했었는데 지금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학생이 조심스레 입을 연다.

“물론이지. 뭔데요?”

“오전에 LATA 수술을 참관했는데, 저희가 수업시간에 배울 때는 직장암 수술은 LAR아니면 APR 밖에 안 배웠었는데 LATA는 수술을 봤더니 anus를 살려서 항문에다가 hand-sewn anastomosis를 하던데 어떤 경우에 이런 수술을 하는 건지요?”

“좋은 질문이다.”

모든 질문은 일단 좋은 질문이다. 질문이 있다는 것 자체로 칭찬받아 마땅하다는 것이 내 지론이어서 일단은 질문을 했다는 것에 대한 칭찬으로 답변을 시작한다. 오랜만에 수술 중에 직접 고민한 흔적이 드러나는 질문이라 더욱 성의껏 답변해 주었다. 내 답이 끝나자마자 질문이 이어진다.

“교수님, 제가 보기에는 항문 내괄약근도 절제하는 것으로 보이던데 그러면 대변 조절이 되는지요? APR 수술과 비교했을 때 정말로 이득이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어라, 요것 봐라. 핵심을 꿰뚫는 질문이다. 마침 외래 진료 도중 연락을 받은 응급실 환자 기록을 살피느라 컴퓨터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대답을 하다가 호기심이 생겨 의자를 돌려 학생과 눈을 마주하였다. 언뜻 봐도 서른은 넘어 보이는, 연식이 좀 있어 보이는 학생이다. 질문을 위한 질문이 아니라, 정말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이다.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설명을 끝내고 슬쩍 물어보았다.

“그런데 학생은 나이가 어떻게 되는가?”

“올해 서른 셋입니다.”

“동기들보다 나이가 꽤 많네요. 뭐 하느라 늦었지?”

“원래 공대를 졸업하고 회사를 다녔었는데, 제가 하는 일이 과연 가치 있는 일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의대에 다시 입학했습니다.”

역시 그런 것이었다.

“그래서, 의대 와 보니 어떤가?”

“지금까지는 매우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래, 열심히 해서 훌륭한 의사 되세요. 수고했어요, 가 보세요.”


소설 <신이 선택한 의사>에서 중세시대 이발외과의였던 주인공은 정식 의학교육을 받겠다는 일념 하나로 유대인 행세를 하는 모험까지 감수하면서 페르시아의 의학교에 들어간다. 더 이상 무엇인가를 해 줄 수 없이 죽어가는 환자를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의 절망감을 견딜 수 없었던 주인공이 보여 주는 최고의 의술에 대한 의지는 그야말로 간절하다. 주인공이 당대 최고의 의사로 거듭날 수 있었던 주된 이유는, 타고난 능력을 더욱 빛나게 만들어 주었던, 바로 그 간절함이다.

내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하게 된 건 환자를 살려야겠다는 사명감이라든가 의학을 한 단계 발전시키고 싶다는 거창한 포부 때문이 아니었다. 당시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은 누구라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입학을 꿈꿨고, 나도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나는 그 좁은 문을 마침내 통과했고,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뻤다. 하지만 진로에 대한 큰 고민 없이 입학한 의과대학은 내 적성과는 거리가 있었고 나는 의과대학 재학 시절 내내 이게 과연 내 길이 맞는 것인가에 대해 뒤늦은 고민을 해야만 했다. 무사히 졸업이라도 할 수 있었던 건, 의과대학 공부에서 내 적성을 찾아서가 아니라, 학교를 뛰쳐나가 새로운 길을 찾아갈 용기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정말 이것이 내 길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된 건 외과 전공의를 시작하고 나서였다.

요즘 의과대학 학생들은 더한 것 같다. 내가 뭘 잘 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공부 좀 한다는 친구들은 전부 의과대학으로 모여들다 보니, 정말 좋아서, 궁금해서, 하나라도 더 알고 싶어서 ‘덤벼드는’ 학생들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시키니까 하고 마지못해 하는 것이 그대로 드러난다. 나도 그랬으니 그들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지만, 늦게라도 자기 길을 찾아가야 할 텐데 그러지도 못할까 싶어 걱정이 앞선다.

오늘 외래에서 만났던 서른줄의 학생에게서 느꼈던 간절함은 그래서 새로웠다. 하나라도 더 알고 배우고 싶은 의지가 절실히 전해졌다. 생각해 보면 유난히 특출났던 내 동기들도 하나같이 이런 간절함이 몸에 배어 있었던 것 같다. 그네들이 결국 각자의 자리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의사로, 의학자로 성장하고 있다. 자왈,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라고 하였다. 무릇 즐기는 자를 이길 수는 없는 법이다. 배움이 좋아서 즐기는 것이 겉으로 드러났던 그 학생은 분명히 좋은 의사가 될 것이다.


오늘 수술장에서 다시 만난 그 학생에게 물었다.

“무슨 과에 관심이 있는가?”

“외과계에 관심이 있습니다.”

외과 실습 중에 의례적으로 한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진심이라고 믿기로 했다.

“그래? 그럼 학생 외과 하게나. 외과는 자네 같은 학생은 언제든 환영이다. 진심으로 스카우트 제의하는 것이니 깊이 생각해 보도록.”

“네, 감사합니다.”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내 말 한 마디가 약간의 마음의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겠지. 3년 뒤에 외과 1년차로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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