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걸의 회사생활] 선배의 위로

후배들의 부장 승진 - 어깨 위로 올라간 그들

by 낯선여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근무했던 마케팅 부서에는 지금 생각해도 참 일 잘하고 성격도 좋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지금은 정년퇴임하신 팀장님이 신설 팀장이 되면서 욕심이 많아 각 부서의 능력있는 선후배들을 많이 데려왔다. 우리는 그 팀장님을 빼고 아직도 1~2년에 한번씩 모이고 있다. 주로 누구의 승진, 해외 발령 등이 있을 때 기회를 마련하곤 한다.


올 해는 그 모임에 있는 막내 사번을 비롯한 후배 두 명이 부장 승진을 했다고 저녁을 사겠다고 메일을 보내왔다. 회사 게시판에 진급자 명단이 뜬 날 축하인사는 이미 메신저로 건넸는데, 조만간 한 턱 내겠다고 하더니,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오늘, 메일을 보내온 것이다. 회사에서 산전수전을 겪고, 휴직도 3년이나 한 나는 승진은 내려놓았고, 나는 후배가 먼저 승진하는 것을 배아파하는 그런 옹졸한 사람이 아니다. (아니라고 생각했다.)


배가 아픈 건 아니다. 그들은 그럴 자격이 충분히 있다. 다만 조직에 있다보니 제 때 승진하지 못한 선배들을 보는 후배들의 시선이 부담스럽다. 굳이 나는 승진 대상이 아니었음을 말하는 것도 구차하다. 저 축하자리에 가면 후배들이 더 불편해 하지는 않을까. 안 가면 속좁아 보이려나, 어떻게 해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위치가 되었나 씁쓸하다. 승진을 내려놓는다고 했을 때, 어느 선배가 조직에서는 승진이 다인데 그렇게 쉽게 생각하고 얘기하는 거 아니라며 충고했던 것이 떠오른다.


조직에서 중간급 이상의 나이가 되니, 어느 새 진급을 못하면, 팀장이 되어 있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내가 차장이 되었을 때도, 친한 동료 선배 중에 과장인 사람도 있고, 10년 전부터 만년 차장인 고참 선배도 있었다. 이 놈의 호칭 문화를 계속 탓할 밖에. 조직에서 짜놓은 수많은 서열화는 조직을 운영하는 데에 필요한 장치이겠고, 누군가에는 당근이, 누군가에게는 채찍이 될 것이다.


서열화하고 호칭으로 구분 짓는 조직보다는 내가 가진 재량으로 평가 받는 곳에 있고 싶었다. (그런 곳이 있겠지). 나이가 들어도 작가는 작가고, 선생님은 선생님이고, 피아니스트는 피아니스트고, 의사는 의사인데, 뭔 놈의 회사원은 정년 퇴임하면 사라질 호칭을 따느라고 이렇게 고되고 더럽고 치사한가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아직도...) 그런데 나는 아직도 이 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아 질기고 질긴 밥벌이의 지겨움이여.


초대해줘서 고맙다고, 가서 물 따르고 수저 놓아야 겠다고 농담을 건넸다. 어떻게 해도 불편하다면 내 마음이 조금 더 편안한 쪽으로 선택하는 거다. 메일 수신인에 있던 한 선배가 답장을 보내왔다.


여유가 없는 사람은 계속 올라가려 하고

여유가 많은 사람은 여유 없는 사람이 내려올 때를 기다려 줍니다.


무슨 회사 메일에 장자 같은 답장이냐 싶어 웃음이 났다. 선배의 마음을 모를 리 없다. 다른 후배들보다 뒤쳐진 나를 위로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아픈 손가락 같은 후배이겠지.생각해보니, 회사 생활 대부분이 참 덧없고 의미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이제껏 버텨온 것은 이런 동료들 몇몇의 따스함 때문이었다. 그러니 내 회사생활도 그렇게 헛되지만은 않은 것이다.


다시 힘내보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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