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생활의 끝 날,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회사 열린게시판에 사진과 함께 글이 하나 올라왔다.
" 20대 청년이 어느덧 60대가 되었습니다.
40년 동안 고생하신 아빠의 은퇴를 축하하기 위해 자녀들이 쏩니다" 란 문구와 함께,
주인공의 젊은 시절과 현재의 사진을 배치한 현수막이 걸린 푸드트럭 사진이었다.
자녀들, 손주들과 함께한 가족사진도 한쪽에 흐뭇하게 걸려 있었다.
글은 주인공을 모르는 분이 점심 먹고 나오다가 푸드트럭을 보고 느낀 감동을 짤막하게 표현했다. 잘 모르는 분이지만 정년퇴직 인사를 이렇게 하는 모습이 멋지고, 앞으로의 인생 2막을 응원한다고. 그 밑으로 댓글이 오십여 개 달려있었다.
근무하는 곳과는 거리가 있어서 나도 직접 보지는 못했는데, 올려져 있는 사진으로만 봐도 감동이 밀려와서 일하는 내내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정년 퇴임식의 새로운 모범을 이렇게나 상큼하게 보여줄 수 있다니!
늘, 나는 회사 생활에서의 형식적인 기념을 비판적으로 바라봤지만, 단 하나 예외는 정년퇴임식이었다. 한 회사에서 30년 이상을 지낸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 날을 누릴 자격이 있다! 물론 기존의 방식은 매우 구태의연했다. 회사에서 따로 해주는 것은 없으니 각 부서에서, 혹은 대상자가 이전에 팀장이었다면 그 팀의 후배가 주도적으로 퇴임식을 준비하곤 했다. 예식장의 연회장을 빌려서 하기도 했는데, 보통은 저녁 회식의 형태로 감사 선물을 전달하고 기념사진을 찍는 것 같다. 그러다가 코로나를 맞아 이 마저도 없어졌다. 회사 발령지에 보면 꾸준히 정년퇴임 명단이 뜨는데 인사를 건넬 공식적인 통로도 없다니,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 우리는 그 날을 축제처럼 누릴 자격이 있다.
내가 다니는 회사의 장점이자 단점은 직원들이 한 회사를 너무 오래 다닌다는 것이다. 정년 퇴임 비율이 민간 회사 중엔 (아마) 가장 높다. 가족 같은 분위기와 나이 들어 다니기에 외롭지 않은 것은 정말 좋은 점이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보여주기 싫은 인생의 질곡이 모두에게 드러나는 것은 때론 참으로 쓸쓸하다. 기울기의 차이는 있지만 나이가 들 수록 회사생활은 거의 대부분 하향 곡선이다. 상향 곡선을 그리던 잘난이들도 바닥으로 떨어진다. 건강이 심하게 안 좋아졌다는 소식도 듣는다. 대부분의 우리는 박수 칠 때 떠나는 것이 아니라, 한창 때를 한참 지난 원로 배우처럼 떠나게 된다. 팀장 한번 못하고 퇴임하기도 하고, 한 때 충성심 가득한 팀장도 퇴임 몇 년 전에는 보직을 면하는 분위기이니, 나이가 가장 많은 팀원으로 정년을 맞는다.
그렇게 맞는 것이 회사의 마지막 날이다. 사실, 성실하게 약 30년의 시간을 회사를 위해 일했고, 생계를 위해 묵묵히 버텨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자존심이 무참하게 밟히고, 다 때려치우고 싶은 순간이 무시로 찾아왔던 때, 나를 바라보는 초롱초롱한 가족들의 얼굴이나 남은 학자금을 떠올리며 '자기'를 수없이 잠재우지 않았던가. 누가 뭐라든 개인과 가족과 회사를 위해 달려온 시간들은 누구에게든 존중받고 축하받아야 마땅하다. 예전엔 그냥 시간이 지나면 정년을 맞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에도 올드걸로 일하며 종종 느끼지만, 그거 정말이지, 그냥 버티는 것 아니다.
회사가 멋지게 준비해주지 않는 것은 아쉽지만, 그렇다고 그냥 넘기기엔 내 세월과 인연이 너무 아깝다. 내가 정년을 이 회사에서 맞게 된다면 (제발 그 전에 탈출했으면 하는 마음도 들지만 ㅎㅎ) 주도적으로 내 마지막 날을 축제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 게시판에 올려진 자녀분들이 준비한 푸드트럭 사진을 보니 더욱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진다. 나도 카페 트럭 하나 대여해서, 알았든 몰랐든 나와 함께 했던 공간의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따뜻한 차 한잔 건네야겠다. 근무했을 때 사진이 있다면 정리도 해보고, 내 생활을 마무리하는 글 한편 작성해서 (음악도 곁들여서) 게시판에 띄워야지. 그리고 그 날 근무하는 동료 선후배들에게 직접 눈인사와 가벼운 포옹과 악수 나누며 마무리하련다. + 이제 노동 해방이다! +